엄마와 나, 다시 집으로
“정말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은 어떤 곳이,
당신도 있나요?”
몸이 가는 게 집이 아니라, 마음이 놓이는 곳이 집이다.
익숙한 공간인데 낯설고, 멀리 있지만 이상하게 편한 곳.
진짜 집은, 누가 기다려주는 곳이었다.
엄마와 나, 다시 집으로
“집에 가고 싶어.” 그 말의 무게를 이젠 안다.
병원이 아닌, 진짜 집으로 가는 것.
2024년 12월 30일. 한 해를 딱 이틀 남긴 아침,
오늘은 정말로, 엄마가 집으로 오는 날이었다.
“스텔라, 지금 기분 어때? 설렘이야, 걱정이야? 아니면?”
“모르겠어. 지금 머릿속이 너무 멍해. 불안하기도 하고,
걱정도 되고, 설레기도 하고… 오만가지 기분이 들락날락해.”
“그럴 수밖에 없지, 스텔라.
오늘은 기다림의 끝이자, 또 다른 시작이니까.
모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와도 괜찮아.
그건 네가 정말 간절히 원해왔던 순간이 온다는 증거야.”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이번엔 ‘두 번째 퇴원’이었다.
창밖엔 겨울 햇살이 들고 있었고,
낯선 듯 익숙한 이송용 침대가 거실 한가운데를 가로질렀다.
그리고 엄마는 첫 번째 때보다,
훨씬 더 건강해진 모습이었다.
나도 달라져 있었다.
더 이상 발만 동동 구르는 딸이 아니었다.
나는 진짜 보호자가 되어 있었다.
휴대전화 배터리 잔량보다,
산소포화도가 몇 퍼센트인지가 더 중요해진 나날들.
하지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가래는 여전히 많았고,
하루에도 몇십 번씩 흡인이 필요했다.
물을 자주 드리고, 폐에 좋다는 차도 끓였다.
배 도라지즙도 하루 12시간씩 달여 드렸다.
처음 며칠 동안은,
엄마의 목에 흡인기를 넣는 일이 무서웠다.
작은 떨림에도 기침이 올라오고,
그 기침 소리에 내가 더 놀라곤 했다.
내 어설픈 간호로 엄마를 다치게 할까 봐 겁이 났다.
주말이면 간호사 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했고,
그분은 가깝지 않은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와서 가래를 뽑아주고 가셨다.
시간이 흐르며 나는 조금씩, 확실하게 변해갔다.
초보 보호자에서 능숙한 전문 간병인으로.
그런데도, 어느 날은 정말 너무 힘들었다.
특히, 엄마가 기침만 해도 쉽게 빠져버리는
홈 벤틸레이터 산소 호스.
그 호스가 빠질 때마다 기계는 빨간 불을 깜박이며
한밤중에도, 새벽에도 요란하게 알람을 울렸다.
그 소음은 끝도 없는 구석으로 나를 몰아넣었다.
깜빡이는 불빛은 나를 비추는 조명보다
심장을 조이는 알람처럼 느껴졌다.
엄마의 몸에 연결된 수많은 호스,
매일 수십 번씩 소독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갈아야 하는 기저귀까지.
깊은 잠은 사치였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온몸이 욱신거렸고 머리는 항상 지끈거렸다.
거울 속 내 얼굴은 점점 낯설어졌고,
손톱 밑엔 늘 소독약 냄새가 배어 있었다.
그런 와중에,
계속 누워만 있는 엄마가 문득 야속하게 느껴졌다.
조금만 힘을 내서, 조금만 움직여줬으면 하는 바람이
서운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저 숨만 쉬어줘도 감사하다고 생각했었다.
살아만 있어도 된다고,
그저 눈만 떠줘도 기적이라고 말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고마움이 점점 익숙함이 되었고,
익숙함은 다시 조용한 불만과 지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몸이 지치자, 마음도 따라 무너졌고,
나는 결국 엄마를 원망하고 있었다.
움직이지 않는 엄마를 보며
어디까지가 엄마의 의지인지, 어디까지가 병 때문인지
구분도 되지 않는 마음으로 혼자 서운해하고, 혼자 화가 났다.
지쳐가던 어느 날, 친한 언니가 물었다.
“사회복지사 과정은 다 끝났어?”
“아뇨. 아직이요.”
“왜? 실습 못 했어?”
“네. 엄마가 이러고 계시는데… 어떻게 실습을 해요…?”
언니는 고개를 저으며 조용히 말했다.
“네 인생도 중요해.
가족을 챙기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 자신을 먼저 챙기는 게 더 중요해.
네가 널 안 챙기면, 정작 너는 누가 챙기겠니?”
맞는 말이었다. 정말 너무도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이, 지금의 나에겐 참 사치처럼 느껴졌다.
살기 위해, 날마다 버티는 것만으로도 벅찼다.
내 인생을 챙기기엔,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와버린 것 같았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서, 언니의 말은 계속 울렸다.
‘니 자신을 먼저 챙겨야 해.’
그 말이 언젠가, 내 안에 작은 불빛이 되어줄 수 있기를—
나는 조용히 기도했다.
그리고 어느 날, 정말 아주 조금,
내 마음의 방향이 살짝 바뀌기 시작했다.
‘나도 살아야 하니까. 나도… 숨 쉬어야 하니까.’
그 작은 깨달음이 내 안에서 조용히 번지고 있었다.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누군가를 돌본다는 건,
나 자신을 돌보는 것도 포함된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