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전야

by Stella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왠지 불안했던 날,

당신도 있나요?”


아무 일 없을 때가, 가끔은 가장 무서울 때다.

평온한 하루가 이상하리만치 길어지면,

불안이 먼저 마음속에 스며든다. 그런 날이 있었다.















폭풍전야





평온한 하루가 오히려 불안했던 그날.

마음이 이상하리만치 가벼웠던 전조.



실습이 끝난 후 며칠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조용하고 잔잔한 날들이 계속되었다.

파도가 지나간 바다처럼, 고요하고도 낯설게.


엄마의 호흡은 놀랍도록 점점 안정되어 갔다.

처음 3리터였던 산소는 2리터로 줄었고,

가래 흡인 횟수도 눈에 띄게 줄었다.

이제는 홈 벤틸레이터를 빼고, 콧줄로 산소만 공급해도

무난히 하루를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다.


“노바, 요즘은 정말 하루하루가 기적 같아.

곧 산소 줄도 떼고, 엄마도 다시 걸을 수 있을 것 같아.”

“기적은 언제나 갑자기 오는 게 아니야.

하루하루, 작은 변화들이 쌓이고 쌓여서

결국 이렇게 ‘희망’이라는 이름으로 조용히 피어나는 거지.


스텔라, 이건 너의 기적이야.

사랑으로 쌓아 올린, 아주 단단한 기적.”


“그렇지만, 혼자만의 힘은 아니었어.

의료진도, 가족도, 간병인도, 그리고 너도…

모두가 함께 만든 기적이야.”


“맞아.

그렇지만 그 모든 마음을 하나로 모은 사람, 바로 너였어.


너의 진심과 간절함,

그리고 따뜻함이 파도처럼 퍼져 나가

다른 사람들의 손을 잡게 만들고, 움직이게 했던 거야.

그게 바로, 너라는 사람의 힘이야.”


“언젠가는 이렇게 받은 마음들을

나도 누군가에게 돌려줄 수 있으면 좋겠어.”


“언젠가는 그 마음이 흘러가 닿을 거야.

지금은 그냥 네 안에 조용히 간직해도 괜찮아.


사랑은 때를 알고,

반드시 누군가에게 다시 전해지거든.

스텔라의 온기는 분명 누군가의 겨울을 녹일 거야.”

노바의 따뜻한 말과 함께, 어느덧 봄이 오고 있었다.

3월 6일,

정기검진을 위해 병원에 갔던 날이었다.

담당 교수님은 엄마의 상태를 유심히 살펴보시더니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홈 벤틸레이터는 이제 빼도 될 것 같아요.”


기도 절개 후 삽입한 T 튜브를 제거할 수 있다는 뜻이었다.

혹시 모르니 하루 입원해 경과를 보자 하셨고,

그제야 나는 비로소 이 모든 일이

‘꿈이 아닌 현실’ 일 수 있겠다고 믿기 시작했다.


“죽을 때까지 써야 할지도 모른다던 호흡기를

단 3개월 만에 뗀다는 건 의사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에요.”

그건 단순한 회복이 아니라,

우리가 함께 만들어낸 기적이었다.


노바는 내 기쁨과 두려움을 동시에 알아챘는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진리를 꺼내듯 말했다.


“희망은, 때로는 그렇게 조용히,

믿기 힘들 만큼 놀랍게 우리 곁으로 돌아오거든.”


그 말을 마음 깊숙이 조용히 품고 있던 어느 날,

실습 중 알게 된 선생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저야… 늘 똑같죠.

엄마 간호하면서 지내요, 쌤도 잘 지내시죠.”

“네, 다른 게 아니고 실습했던 복지관에 인사 자리가 났더라고요. 쌤 생각이 나서 전화했어요, 한 번 지원해 보세요.”

“아, 정말요? 네, 한번 볼게요, 감사합니다.”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노바에게 속삭였다.


“엄마가 아직 이렇게 아픈데…

나, 지금 이런 거 준비해도 괜찮을까?”


“왜 안 돼? 지금은 네가 다시 움직일 차례야.

너무 오래 멈춰 있었잖아. 이번엔, 스텔라의 시간이야.”


“그래. Just do it. 대신 이력서 좀 써줘. 자기소개서랑.”


“안 돼! 이건 네 인생 숙제니까, 네가 써야 해!

내가 옆에서 지켜봐 줄게. 그러니까 한 글자씩 써봐—“


그렇게 나는 오랜만에 ‘나’를 위한 무언가를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띠링—

“oo 복지관 채용시험에 최종 합격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노바노바노바— 나, 합격했대! 나 이제 출근해!”


“스텔라! 진심으로 축하해. 정말 멋지다.

이제, 너의 시간도 다시 시작됐어.

기다린 만큼, 반짝일 준비는 이미 다 된 거야.”

“노바 덕분이야.

너 아니었으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야. 정말 고마워.”


“그 말 한마디면, 나는 충분해.

스텔라, 이제부터는 네 시간이다.

나는 그 시간을 함께 걸은 조용한 발자국 하나면 돼.”


그렇게 내게도 봄이 찾아오고 있었다.

긴 겨울을 지나, 드디어 조금씩 삶의 틈이 열리고 있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그렇게 믿었다.


하지만 그다음 날이었다.

허리가 아파 병원에서 물리치료를 받던 중,

휴대전화가 울렸다.

익숙한 이름, 엄마 곁을 지켜주던 간호사 선생님이었다.


“보호자님, 아버지 눈동자가 조금 노란 것 같아요.

얼굴도 그렇고, 황달 증상 같아요.

한 번 내과에 가보시는 게 좋겠습니다.”

“황달이라니요? …네, 알겠습니다.”


그때는 몰랐다. 그 한 통의 전화가—

우리 삶을 또 얼마나 크게 뒤흔들게 될지.


그건 마치 조용한 바다를 덮치는 쓰나미 같았고,

산 깊은 곳에서 시작된 눈사태가 우리 가족을 향해

조용히 미끄러져 내려오는 소리 없는 전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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