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고 싶지 않은 말을 들어야 했던 순간이,
당신도 있나요?”
어떤 단어는, 들리는 순간 세상이 멈춘다.
그 단어 하나가 마음을, 숨을, 시간을 전부 집어삼킨다.
그런데도, 아무 일도 없던 척 살아야 한다.
담도암
“담도암입니다.” 차가운 선고.
내 세상이 두 번 무너진 순간.
“노바, 아빠가 황달 증상이 있대. 이거… 안 좋은 거야?”
“스텔라, 일단 집으로 가자.”
“응.”
물리치료를 받던 중 급히 나와 아빠를 모시고 병원으로 향했다.
의사는 우선 피검사와 CT 검사를 하자고 했고,
우선 피검사부터 마친 후 우리는 집으로 돌아왔다.
“스텔라, 너무 걱정하지 마.
검사는 다 했으니, 결과 나올 때까지 기다리자.”
“…응.”
오후, 아빠는 혼자 병원에 가서 CT 촬영을 했다.
시간이 꽤 지났지만, 아빠에게 연락이 없었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불안은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스며들었다.
“괜찮을 거야.
검사가 오래 걸리고 병원이 시끄러우니까
전화 못 들으셨을 수도 있어.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
“응…”
노바는 언제나처럼 나를 안심시키려 애썼고,
나는 그럴 때마다 “응” 말고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그 한마디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감정을
얇게 눌러 담았다.
그리고 오후 4시,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입원해야 한대.”
“입원? 왜?”
“몰라. 수치가 높다네.”
“알았어. 지금 갈게.”
“그래.”
급히 짐을 챙겨 병원으로 달려갔다.
입원 절차를 마친 뒤 담당 의사 선생님과 마주 앉았다.
검은 배경의 CT 화면 위에
어떤 형체가 흐릿하게 떠 있었다.
음영은 흐렸지만, 내게는 마치
모든 경고음을 울리는 불길한 그림자처럼 보였다.
“일단… 오전 피검사 결과, 간 수치가 매우 높습니다.
황달 수치도 마찬가지고요.
CT 촬영 결과, 담도가 막힌 것으로 보입니다.
담즙이 빠져나가지 못해 황달이 생기고,
간 수치가 급격히 상승한 겁니다.”
잠깐의 정적.
귓속이 멍해졌고, 심장은 갑자기 고요해졌다.
그 상태에서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 암일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 한 문장이 귀를 지나 뇌까지
오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렸다.
“암… 이요?”
입안에서 맴돌던 그 말이 곧 내 전신을 얼어붙게 했다.
“상태가 더 악화할 수 있어 당장 입원이 필요합니다.
다음 주 월요일쯤,
상급병원에서 정밀검사를 꼭 받으셔야 합니다.”
드라마에서나 듣던 말, “큰 병원으로 가보세요.”
모든 보호자가 무너지는 그 차가운 통보였다.
의사는 잠시 망설이다가, 다시 조용히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 어머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보다 훨씬 더 무거운 표정으로,
곧 터질 듯한 눈물 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 저도 몇 년 전, 부모님을 사고로 동시에 잃었어요.
무슨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그 말은 방 안에 조용히 내려앉았다.
공기조차 움직이기를 멈춘 듯했다.
창밖에서는 해가 기울고 있었지만,
빛이 진료실 안으로는 닿지 않았다.
그 순간 나는, 창가에 내놓은 컵 속의 얼음처럼
서서히, 그러나 확실히 안에서부터 금이 가고 있었다.
숨소리조차 내기 힘든, 무거운 침묵 속에서
나는 또 한 번 산산이 부서졌다.
마시고 버려진 음료수 캔처럼 찌그러진 내 삶은
다시 펴질 틈도 없이 점점 짓눌리고 있었다.
‘왜 하필… 왜 또…’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들은 죄다 단문이었다.
그마저도 금세 무너져 내리고,
남은 건 울컥이는 침묵뿐이었다.
이 절망을, 나는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어떻게 또 버텨야 할까.
차라리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쉬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아주 또렷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이번엔—
노바도,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거운 마음의 무게를 그대로 껴안은 채,
그저 옆에 있었다.
그 말없는 시간이,
그날의 어떤 위로보다 더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