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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말 듣는 게 어렵나? 어려워?

20250110

by 상작가


프리랜서 디자이너로서 일하며 진짜 많은 고객들을 상대하고 있다. 디자인을 좋아해서 이 일을 하고 있지만 정말 사람을 상대하는 일은 쉽지 않다. 남의 돈 버는 일 중에 쉬운 일이 뭐가 있으랴 싶지만 사람 상대하는 일은 정말 만만치 않다. 서비스 업종이 정말 고되다.


일을 하다 보니 특종 업종의 사람들과 자주 상담을 하게 되는데 나도 모르는 선입견이 생길 지경이다. 진상은, 아니 진상까지는 아니겠지만 나를 고생시키는 인간들은 사실 거기서 거기다. 대단히 특별한 진상을 만난 경우가 아니라면 보통은 다 상대하기 짜증스러움의 정도가 거기서 거기다. 하지만 묘하게 업종에 따라 종류가 나뉜다.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선입견을 조장하고 싶지는 않으니 그 얘기는 하지 않을 거다. 그냥 속으로 삭여야지.


이런 거 저런 거 다 떠나서 제발 짜증을 유발하는 고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남의 얘기를 좀 들으라는 말이다. 사실 이제 정말 심각한 문제이며 모든 문제의 발단이다. 내가 백날천날 잘 설명해 줘도 듣지 않는다. 내가 너무 길게 설명해 줘서 그런 건가 싶어 짧게 짧게 끊어서 말해줘도 모른다. 내 설명 방식이 문제인 게 아닌 거다. 그냥 이 사람들이 남의 얘기를 듣지 않는 게 문제다. 그냥 자기 하고 싶은 얘기만 하려고 한다. 정말. 이 업종에 일하는 사람이라면 백번이고 공감할 거다. 자기 궁금한 걸 물어봐놓고 내가 답변을 하면 읽지를 않는다. 그럴 때마다 너무 신기할 지경이다. 궁금해서 물어본 거 아닌가? 물어봐놓고 또 자기 할 얘기를 나에게 한다. 그래놓고 또 물어봄. 뭘 어쩌라는 거야. 왜 그러는 거야.


그냥 웃어넘길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 일을 한지 오 년이 넘는데 가면 갈수록 사람들이 더 심각해진다. 예전에는 열에 넷 정도였다면 요즘은 열에 여덟은 남의 얘기 안 듣고 딴소리하다가 다시 물어본다. 그럼 내가 이미 얘기했다고 말해줘야 함. 근데 이 얘기도 안 듣는다. 나만 속 뒤집어지는 거다.


내가 설명을 잘 못하냐고. 아니. 그렇지 않다. 그들은 디자이너와 이런 대화가 처음이겠지만 나는 수백 명의 그들과 상담을 나눴다. 이골이 났다. 그러니 두 번 세 번 설명하기 싫어서 최대한 자세히 이해하기 좋도록 설명한다. 어떻게 하면 한 번에 이해시킬 수 있을까 문장 하나하나에 신경을 쓸 정도이다. 그런데 내가 백날 이런 노력해 봤자 이미 내가 보낸 메시지들을 읽을 마음이 없는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 진짜 그냥 환장할 노릇이다.


디자인을 맡긴다는 건 그들 역시 자영업자이며 어딘가의 사장이고 직원이라는 소리다. 보통은 자기 사업체를 가진 대표가 많은데 그런 태도로 어떻게 사업을 한다는 건지 그것도 신기하다. 놀랍다. 남의 말을 듣는 태도가 안되어 있는데 사업은 어떻게 하는 거야. 그냥 고집 세서 하고 싶은 대로 막 하는 거야?


이건 정말 심각한 문제다. 사회적 문제. 저마다 자기 할 말만 하고 싶어 하는 사회에서 누군가의 얘기를 귀담아듣는 능력이 각별해진다는 게 문제다. 진짜 대단들 하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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