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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상작가 Mar 10. 2022

취향의 발견

2. 싸구려 입맛 주제에 취향을 논한다고?

음식의 편리함에 대해 구구절절 이야기했던 건 어쩌면 맛에 딱히 엄격하게 내세울 기준이 없었던건지도 모르겠다. 맛있는 걸 많이 먹으러다니는 미식가 친구가 제철 회의 맛, 소스의 지나친 간 그리고 커피의 미묘한 향 차이 등을 얘기하고 있노라면 나는 그렇구나 고갤끄덕이며 마구잡이로 먹는다.


그렇다. 나는 막입이자 싸구려 입맛의 소유자다. 극단적으로 맛이 없는 음식(먹지 말라고 만든 음식)을 제외하면 간이 조금 싱겁든 짜든 맵든 달든 그냥저냥 먹는 사람이다. 게다가 가격이 나가는 음식을 제쳐두고 굳이 싼 음식의 맛을 좀 더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싸서 맛있다기보다 정말 그 싼 맛을 좋아한다.


예를 들어 피자. 갖은 해산물과 스테이크까지 올라가는 요즘 피자들보다 딱 토마토소스 맛이 나는 기본 콤비네이션이 맛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하며 먹을 수 있는 사람이다. 물론 재료가 풍성하게 들어 있는 것도 좋다. 그렇지만 피자를 먹고 싶을 때 떠오르는 건 딱 그 기본의 맛이다.


커피도 마찬가지다. 바리스타 자격증 2급(그리 심도깊진 않잖아?)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지만 사실 커피를 딱히 좋아하진 않는다. 원두의 종류와 볶는 정도, 내리는 속도 등등 까다로운 조건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것이 커피의 맛이라고 배웠지만 그걸 구분한 적은 없다. 라테가 되든 캐러멜이 섞이든 그냥 마신다. 맛있어서 찾아먹는다기보단 친구와 이야기를 하기 위해 들어간 카페의 1인 1메뉴 음료 정도로 취급된다.


치킨과 돼지고기 냄새도 그렇다. 치킨이나 돼지고기를 먹을 때 냄새에 민감한 누나들은 질색팔색하지만 나는 도대체 닭 냄새와 돼지고기 냄새가 뭔지 궁금해하며 부지런히 먹는다. 전혀 맡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이 음식을 먹는데 문제가 되는 건가 하는 마음으로 끝까지 음식 앞에 남아있는 최후의 식사자가 된다.


내 입맛이 이렇게 된 이유는 직접 해 먹는 요리때문일지도 모른다. 정교하게 계량을 한다거나 순서를 철두철미하게 지키는 사람이 아니다. 요리의 전반적인 과정을 상당히 감각에 의존한다. 재료를 넣는 순서도 내 마음대로, 들어가는 조미료도 그때 그때 집에 있는 걸로 아무거나, 심지어 음식 도중 간을 보지 않는다. 맛있겠지 싶은 것들이 들어가는데 결과물이 실패할 리 없다는 무언의 믿음이 있다.


그렇지만 막상 다 된 음식을 먹어보면 참 애매하다. 색깔은 진한데 맛은 밍밍하고 어떤 재료는 너무 푹 익어서 젓가락으로 집어 지지 않는다. 또 어떨 때는 마지막에 넣은 후추향이 너무 강하고 또 어떨 땐 괜히 넣었나 싶은 참기름의 향이 음식의 맛을 방해한다. 


그럼 그 음식을 어떻게 하느냐? 그냥 먹는다. 대단히 별로인 맛이 아니다. 어쨌든 실패할 리 없는 시판용 소스들을 사용한 것이니 먹을만하다. 다음번에 좀 더 잘해 먹으면 되겠지 생각하며 한 끼를 때운다. 그렇게 단련된 입맛이 사 먹는 음식에도 적용된 것일지 모른다. 이 정도면 먹을만하다는 마음이 남들이 별로라며 투정하는 동안 젓가락을 부지런히 옮기도록 만든다.


이쯤에서 형편이 어려워 가성비를 따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 아니냐, 진짜 고급스러운 맛의 경험이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사실일지 모른다. 경험의 폭이 좁으니 진짜 맛있는 산해진미들을 먹어보지 못해서 더 맛있는 것, 더 좋은 것에 대한 미각 정보가 부족한 것일 수도 있다. 근데 그건 지금 현재 나의 취향을 이야기하는 이 시점에서 굳이 할 필요는 없는 얘기인 듯하다. 나중에 잘되면 그때 가서 먹어보고 결정하면 될 일이 아닐까.


어쨌든 현재의 나는 막입이자 싸구려 입맛이다. 근데 이런 주제에 취향을 논해도 괜찮은 걸까?

괜찮고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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