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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슨금 Jun 13. 2023

영국 1년 살기 짐의 무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 짊어질 물건을 선별하는 시간


3주 뒤 7월 초면 영국에 1년 살러 떠난다. 1~2주 되는 여행도 배낭 한 개로 단출하게 싸서 다녔던 우리였기에, '1년을 살아도 필요한 물건은 배낭 한 개로 되지 않을까' 지레짐작했었다. 우리가 집에 짊어지고 살았던 짐들의 무게는 생각지 않았다. 


이제 집에 1년간 지인이 들어와 살기로 결정되고, 집 정리를 시작하니 버리지 않고 아까워 쌓아 둔 물건들, 쓰지 않고 창고에 박혀 있던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버릴 건 버리고, 멀쩡한 건 당근마켓 이웃에게 나눔 하고, 1년 뒤 돌아와서 써야 할 건 양가 부모님 댁에 맡기고. 그럼에도 남은 생활필수품들은 아무리 짜 맞춰봐도 배낭 한 개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배낭 한 개면 옷과 속옷, 세면도구면 꽉 차버린다.

아차, 여행이 아니라 살아보러 가는 거였지.
 

그래서 각자 배낭에 캐리어 하나씩 더 챙기기로 했다. 보통 유학생들 이민가방에 수화물 추가비용까지 부담하며 캐리어 2개는 기본으로 챙겨가는 것에 비하면 적다며 자기 합리화를 했다.


앞으로 3주는 삶에 꼭 필요한 물건을 선별하는 시간이다. 일단 챙겨갈 것을 한쪽에 모아두기 시작했다. 상비약, 카메라, 휴대용 선풍기, 드라이기, 수건, 변압기, 충전기 등 벌써 한가득이다. 물론 글쓰기를 위한 노트, 다이어리, 만년필 등 필기도구도 당연히 넣었다. 주변 사람들은 외국 나가면 한국음식이 먹고 싶을 거니까 고추장, 고춧가루 등 한국 양념과 조미료도 꼭 챙겨가라며 조언해 줬다. 그러고 싶지만, 그럴 수 있을까? 모아둔 걸 다 가져갈 수 없으니 빼는 게 일일 텐데. 결국 우선순위의 문제가 아닐지. 입맛이 까다로워 한국 음식을 꼭 먹어야 하는 사람에게는 식재료가 우선일 것이다.


최종적으로 짐을 다 싸고 나면 쭉 리스트업을 해봐야지 생각했다. 지금까지 맥시멀리스트로 살았지만, 삶에 꼭 필요한 물건만 걸러내 살아보는 연습을 통해 어쩌면 미니멀리스트가 될 수도 있다. 영국의 살인적인 주거비용으로, 남의 집 방 한 칸에 얹혀서 살아야 한다. 어학원 수업 중간의 방학기간은 여행을 다니려고 해서 숙소도 2~3달 주기로 바뀌어 집시처럼 돌아다녀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짐을 더 늘린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나만의 우선순위로 빼야할 물건은 빼고 필수품만 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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