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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슨금 Jun 30. 2023

나에게 꼭 필요한 물건 추리는 법

영국 1년 살기 짐 싸기

해질 무렵 작은방으로 들어오는 창틀의 빛

새벽 두 시까지 짐 정리를 했다. 끝없이 나오는 잡동사니들 중 버릴 것, 보관할 것을 나누는 게 정말 어렵다. 왠지 이건 고장 난 것도 아니고 아직 쓸 수 있는데, 유통기한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1년 묵혀뒀다 다시 써도 될 것 같은 데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 거다. 아직 깎지도 않은 연필이나 사용되지 않고 새하얀 노트 같은 것들. 오히려 유통기한이 명확하게 찍혀있는 식품류는 아까워도 눈 딱 감고 버리긴 쉬웠다.      


개수가 너무 많은 경우도 처치 곤란이다. 처음엔 수건을 필요한 만큼만 사두었는데, 답례품이나 행사 기념품으로 수건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화장실 선반을 꽉 채우고도 넘칠 정도다. 둘이서 거의 40장을 쓰는 것 같다. 과하다.


또 둘 다 안경쟁이라 단골 안경원에서 갈 때마다 받아온 안경닦이가 10장은 된다. 공짜라고 다 받아오지 말고 거절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말이야. 일단은 깊게 고민할 시간이 없으니 보관할 것들은 큰 박스에 다 넣어 놓고 1년 뒤에 다시 펼쳐 재분류를 해야겠다. 1년이나 안 쓰고도 잘 살았다면 대부분이 반드시 필요하지 않은 것들이지 않을까.     

집 앞 동네에서, 뭉게구름 피어나는 화중로 거리

이별 선물로 받은 각종 물건들도 다 들고 갈 순 없으니 난감했다. 텀블러 선물만 3개를 받았는데, 사람은 2명이니 1개는 남편 친한 친구에게 나눔 했다. 세안 비누도 선물 받았다. 남의 집에 얹혀살면서 화장실을 집주인과 같이 써야 하는데, 비누를 꺼내놓을 수 있을까 싶다. 무한정 쌓아둘 수 있는 집이 있을 때는 몰랐다. 소지할 수 있는 물품이 캐리어 하나 정도로 줄어들어 버리니 고민이 많아진다. 가져갈까 말까. 이 물건이 영국에서 쓰임이 될 수 있을까. 내게 온 모든 물건을 꽉 쥐고 살지 않는 법을 연습하고, 나에게 필요한 것들을 추려내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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