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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녹슨금 Sep 10. 2023

더프타운 맥켈란 디스틸러리로 향하는 길

대중교통 타지 마세요, 위험합니다! 위스키 여행기

엘긴 > 더프타운 행 36번 버스

걱정했던 것보다 스코틀랜드의 작은 동네를 대중교통으로 이동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렌트 없이 어떻게 제때 투어에 갈 수 있을까 싶었는데, 구글맵이 생각보다 버스 도착 예정 시간을 정확하게 잘 알려준다. 엘긴에서 더프타운으로 향하는 36번 버스는 1시간에 1대만 운영하지만, 시간 맞춰 서있고 수신호로 버스에게 탈 거라고 알리기만 하면 문제없다.(런던에서 한번 수신호 안 하고 멀뚱멀뚱 서 있으니 십분 넘게 기다린 버스가 쌩하고 지나갔던 경험이 있다.)

위험천만, 겨우 맥켈란에 도착!

우리가 기다리던 정류장에서 우연히 글렌피딕 디스틸러리 기프트숍에서 일하고 있는 여자 직원분을 만났다. 자기는 버스를 놓치면 출근시간에 늦기 때문에 꼭 10분 전쯤 미리 나와 있는다고 했다. 하지만 버스는 정시에 오는 일이 없도 꼭 조금 늦게 온다고. 남편은 버스 타고 가는 내내 직원분과 즐겁게 수다를 떨었고, 나는 아름다운 바깥 풍경을 즐겼다. 양들이 풀을 뜯는 목가적인 풍경이 이어졌고 마음이 평안해졌다. 주의할 점! 맥켈란 양조장까지 대중교통으로 가려면 버스 정류장에서부터 30분 정도를 차도로 위험하게 걸어가야만 한다. 켈란에서는 도보로 오는 걸 추천하지 않는다고 메일로 안내했지만, 최대한 돈을 아껴가며 여행하는 우리에겐 방법이 없다. 비싼 돈 주고 택시를 탈 순 없었다. 그 돈 주고 위스키를 사 마시지!

유리창 안으로 들여다보이는 양조 기기

마침 아일랜드에서 1년간 어학연수를 마치고 여행 중이던 일본인 여성분 한분이 같은 정류장에 내려 멕켈란까지 가는 길에 동행하게 되었다. 같은 투어를 예약한 도보 여행객이었던 것. 이전 직장에서 회계 업무를 했었는데 1년간 아일랜드 더블린에서 어학연수를 받았고 이제  일본으로 돌아가면 일본의 위스키 회사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했다. 타국에서의 경험이 관심사의 깊이를 확장시켜 주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도쿄에 가면 연락하겠다며 인스타그램 친구가 된 유키코. 일본 음식 맛집을 데려가 주겠다고 한다.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벌써부터 일본에 갈 생각에 설렌다. 이 인연이 또 어디에선가 이어져갈 수 있다면 좋겠다.

맥켈란 디스틸러리 바

맥켈란 건물에 도착했는데 입구를 찾지 못하고 한참을 헤매었다. 땀을 뻘뻘 흘리며 빙빙 돌았다. 도보로 오는 방문객을 위한 표지판이라도 해놨으면 좋지 않았을까. 건물을 멋들어지게 지어놨고 위스키도 맛있었지만, 기본 투어에는 디스틸러리 내부를 돌아다니며 구경할 수는 없어 아쉬웠다. 투어는 2층에 있는 바에서 직원의 설명과 함께 3종 시음을 하는 게 전부였다. 여러 곳 투어를 다녀보고 비교해 보니 가장 대기업다운 느낌의 정형화된 경험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결론, 맥켈란은 렌터카 있거나 택시로 이동가능하신 분들께만 추천드린다.


비프파이

더프타운에서 예약한 숙소는 'whisky capital inn'이라는 곳인데, 바와 레스토랑도 운영하는 숙박시설이다. 몇 분에게 더프타운에서 저녁 먹을 만한 곳을 물어봤는데 우연찮게도 다들 동일하게 whisky capital inn을 추천해 주는 거다. 마침 점심도 못 먹고 위스키만 마시느라 배고팠어서 증류소 투어를 모두 마친 뒤 바로 체크인하고 밥을 먹기로 했다. 우리는 꼭대기 다락방에 배정되었고, 푹신한 침대에 살포시 누우니 까무룩 잠들어버렸다. 역시 하루에 위스키 양조장 투어 2곳은 좀 힘들다. 한 곳에서 평균 3잔의 시음주를 제공하니 아침, 낮부터 고도수 술을 먹었으니 힘들 수밖에! 1시간 정도 자다 깨서 헤롱거리다가 내려가서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오늘의 수프와 피시 앤 칩스, 비프파이를 골랐다. 따끈한 수프가 노곤한 몸을 녹여주었다. 전형적인 영국식 식사 메뉴다. 감자튀김과 매쉬드 포테이토 양이 넉넉해서 정말 배부르게 먹었다. 런던에서는 레스토랑 안에서 먹으면 보통 메뉴판에 기재된 가격에서 12.5% 정도 서비스차지가 따로 붙는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스코틀랜드에서는 이미 다 포함해서 기재했는지 추가로 붙지 않는 경우가 많더라. 그러다 보니 실질적인 외식물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한국에 비하면 비싸긴 하지만, 이제 고물가에 적응해 버렸다.

부른 배를 부여잡고 동네 산책에 나섰다. 토요일 저녁인데도 이렇게 한적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조용했다. 그나마도 가장 시끌벅적한 곳은 우리 숙소 1층의 바뿐이었다. 이렇게 고요하고 한적한 동네 살면 뭐 하고 무슨 재미로 살까? 낚시? 산책? 펍에서 맥주 마시기? 그래서 이곳 사람들이 정원 가꾸기에 더 몰두하는 거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시골 동네는 방문객으로 지내기에는 너무나도 평화롭고 좋지만, 살 수 있을까는 아직 잘 모르겠다. 나는 북적거리고 새로운 즐길거리가 많은 곳을 선호하나 보다. 산책을 마친 뒤 숙소의 아늑한 다락방에서 단잠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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