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녹슨금 Sep 11. 2023

일요일엔 버스도 쉽니다. 운행 안 해요!

Whisky Train을 타다, 더프타운에서 인버네스까지 여정

어제 올 때 탔던 36번 버스가 일요일에는 운행을 안 할 것이라고 감히 상상이나 했을까? 버스회사 홈페이지에 들어가 타임테이블을 다운로드하여 읽어보고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시간이나 확인했지, 운행하지 않는 요일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버스를 기다리다 하도 안 와서 운행하지 않는 요일이란 걸 알아차리는 순간 멘붕이 왔다. 어쩔 수 없이 비싸더라도 엘긴까지 택시를 타고 가야 하나 순간 고민했다. 아니면 히치하이킹이라도 해서 남의 차를 얻어 타볼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는데, 히치하이킹이라니! 전전긍긍하며 구글맵으로 검색해 보니 인버네스까지 갈 수 있는 다른 대중교통 경로를 찾을 수 있었다. 많이 돌아가서 시간이 훨씬 오래 걸리긴 하지만 선택권이 없었다. 먼저 하루 단 3번만 운행하는 완행열차 whisky train을 타고 일단 keith라는 동네로 다. 그리고 거기서 시간 맞춰 쾌속기차로 갈아타면 목적지인 inverness로 갈 수 있다.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

돌발 상황으로 다른 경로를 택한 덕분에 더프타운(Dufftown)에서 역사가 오래된 완행열차를 타볼 기회가 생긴 거다. 일단 편도 티켓을 끊고 무거운 백팩을 역무원에게 맡겨두었다. 역사에 위치한 카페에 갔는데 위스키 아이스크림이 있어 하나 사 먹었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에서 느껴지는 위스키의 풍미! 따스한 햇살과 사르르 녹는 시원한 아이스크림. 걱정도 함께 순식간에 녹아내렸다.

시간이 좀 남아 바로 근처의 발베니 디스틸러리도 찬찬히 둘러봤다. 자연 속에 파묻힌 위스키 빚는 디스틸러리들, 그곳에서만 나는 달큼한 곡물과 알코올의 향기는 잊을 수 없다. 눈 감고 걸어도 이 냄새를 맡으면 근처에 디스틸러리가 있구나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키스(keith)에 도착해서는 그 유명한 시바스리갈을 생산하는 Strathisla Distillery's Bar에서 새로운 위스키 2종도 시음해 볼 수 있었다. 일요일에 버스가 운행했더라면, 정해진 경로대로 무사히 갔더라면 모르고 지나쳤을 소중한 경험이었다.

행열차 안에서는 역무원 할아버지께서 스코틀랜드 전통음악을 불러주셨다. 칼레도니아(Caledonia)라는 단어가 반복되는 정겨운 음악이었는데, 단어 뜻을 몰라 찾아보니 고대 브리튼어로 '거친, 강인한 민족'을 뜻하고 스코틀랜드를 의미한다고 한다. 갑자기 웬 노래인고하니, 역무원 할아버지께서 뭐에 다치셨는지 팔에서 피가 났는데 우리 칸에 있는 아주머니가 가지고 있던 밴드를 손수 붙여주셨다. 그 친절에 대한 답례라고 특별히 우리 칸에서 솔로 공연을 해주신 거다. 천천히 가는 열차와 바깥으로 보이는 자연환경 어우러져 시간도 느리게 흐르는 듯한 느낌을 받은 순간이었다. 도착지 기차역에 내려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도 한 장 함께 찍었다. 다시 봐도 참 인상 좋으신 할아버지다.


인버네스의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다. 여행을 거듭할수록 숙소 퀄리티가 좋아지는 중이다. 가정집인데 방이며 화장실이며 공용 부엌, 복도까지 깔끔하고 센스 있게 잘 꾸며놓으셨다. 곳곳마다 눈길이 가는 액자가 있고, 식물과 꽃들로 가득하다. 부엌의 큰 창문으로 가든이 보이는 게 매력 포인트. 호스트는 마당의 자두나무에서 잘 익은 자두들을 따놓고 게스트들에게 무료로 제공했다. 마트에서 사 온 거라면 과일이 꽤나 비싼데, 자급자족으로 수확한 거라고 하니 아침마다 양껏 먹었다. 뿐만 아니라 식빵, 잼, 우유, 시리얼까지 조식 풀세트를 제공해 주었다. 진정한 Bed&Breakfast! 우리나라 아파트는 공동주택이다 보니 에어비앤비를 운영하기가 쉽지 않은데, 단독주택은 확실히 에어비앤비가 용이하다. 이렇게 또 남는 공간으로 수입원을 늘려나가는 거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걸 좋아하고 정리와 청소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 같다. 역시 정년 없는 에어비앤비가 답인가?


이전 12화 더프타운 맥켈란 디스틸러리로 향하는 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