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인류에게 속았다!

임산부의 신체적 변화

by 이백칠호

술 먹고 새벽 3시에 집에 기어 들어와 2시간 자고 멀쩡하게 출근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나다. 3.8kg의 우량아로 태어나 4살엔 풋고추를 된장에 찍어 먹을 만큼 먹성이 좋았다. 보약 한 번 먹은 적 없지만 입원은커녕 자잘한 병치레도, 발목 한 번 접질려 본 적도 없다. 그렇다. 나는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다.

그런데 임신 이후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 힘도 없고 의욕도 없고 만사가 다 귀찮다. 누워있고만 싶다. 어쩐지 반건조 오징어처럼 흐물거리며 소파 흡착생활을 즐기게 된다. (반건조 오징어를 비하하려는 발언은 아니다. 나는 반건조 오징어를 매우 좋아한다.) 전 인류에게 속은 기분이다. 임신을 하면 이토록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는데, 어째서 아무도 내게 말해주지 않은걸까. 그 이유를 다음의 보기 중 골라보자.


1. 나만 겪는 게 억울하다. 너도 한번 겪어봐라.

2. 겪어 보기 전까지는 절대 모른다. 굳이 공감 못 얻을 이야기를 할 필요 있나?

3. 엄마가 되려면 이 정도는 감수해야지. 유난 떨지 말자. 쉿!


정답은 모두 다! 다. 물론 임신 증상은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그러나 기본적인 것은 비슷할 터, 내가 가장 힘들었던 신체적 변화 몇 가지만 꼽아보려 한다. Tip이 없는 증상은 해결책이 딱히 없거나 내가 해결하지 못하고 지나간 것들이다.



입덧 대신 먹덧

퇴근길 허기짐을 참지 못하고 회사 앞 설렁탕집으로 내달렸다. 막 숟가락을 들려는데, 식당 문이 열리며 직장 동료가 들어왔다. 바로 10분 전, 다급한 목소리로 “저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 내일 봐요!” 외치며 도망치듯 후다닥 나왔건만. 그에게 나는 설렁탕 못 먹어서 환장한 여자로 보였을 것이다. 땅속으로 꺼지고 싶었지만 ‘괜찮다’, ‘조금 뻔뻔해도 된다’라고 되뇌었다. 나는 지금 먹덧 중이니까. 속에 무엇이라도 쑤셔 넣어야 했다. 남들은 입덧을 안 해서 좋겠다고 했지만 실은 먹을 것으로 입덧을 찍어 누르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냄새에도 예민해졌다. 그중 냉장고 냄새는 최악이었다. 남편이 냉장고 문을 열면 나는 지옥 문이 열린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방으로 뛰어 들어가곤 했다. 양치질을 하면 구역질이 났다.

Tip. 먹덧도 입덧의 일종이다. 아침에 입덧이 가장 심하므로 눈을 뜨자마자 과일과 물로 속을 달랬다. 가능한 속이 비어있지 않도록 하고 수시로 매실차와 탄산수, 아이셔를 공급하며 시원상큼한 기운을 불어넣어줬다. ‘입덧’이라는 단어 자체를 떠올리지 않는 것도 어느 정도 도움이 된다. 임산부 치약도 여러 가지 써봤는데, 나의 경우 맘스튼튼 자몽향이 그나마 제일 나았다. (광고 아님.) 이 모든 민간요법이 역부족이라면 디클렉틴이라는 입덧 약을 처방받자. 끙끙 앓을 바에야 약을 먹는 게 낫다.


역대급 몸무게 갱신, 갱신, 또 갱신

임신 중 평균 체중 증가는 10~16kg라고 한다. 나는 입덧 대신 먹덧, 붓기도 엄청나서 약 23kg가량 증가했다. 임신 당뇨, 임신중독이 아닐까 살짝 걱정도 했지만 다행히 괜찮았다. 그래서 마음 놓고 더 먹게 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사실 그때로 돌아간다면 실컷 먹고 더 운동하고 더 놀아버릴 것이다. (6개월 차 모유수유 아기 엄마가 되어 보니 이제 알겠다. 그때가 좋을 때임을.) 후기부터는 이게 살이 아니라 확실히 붓기라는 게 느껴졌다. 배가 불러올수록 하체에 압력이 가해지고, 혈류량이 늘어나기 때문에 하체가 부을 수밖에 없다. 8개월 이후에는 신던 신발에 발이 안 들어가고 손가락조차 구부리기 힘들었다. 새벽엔 다리에 쥐가 나기도 했다. 소리 지르고 울고 싶은 나날의 연속이었다.

(Tip) 테바 샌들로 그나마 여름을 편하게 났다. 임산부 요가와 의료용 압박밴드도 붓기를 줄이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발을 베개에 올리고 잤던 것도. 그래도 제일 효과가 좋았던 것은 남편의 마사지! 추천합니다.


잠 못드는 나날

깊게 잠들기가 어려웠다. 호르몬 때문인지 얕은 수면이 계속되면서 야리꾸리한 꿈도 많이 꿨다. 어떤 날엔 남편이 외도하는 꿈을 꾸고는 아무 잘못 없는 남편을 쥐 잡듯이 잡기도 했다. 6개월 이후부터는 배가 많이 나와서 천장을 보는 자세로 누울 수가 없어서 편한 자세를 찾아 밤새 뒤척여야 했다.

Tip. 버티다 버티다 6개월쯤 해피테일즈 바디필로우를 구매하여 사용했다. (막달까지 솜을 조금씩 빼가며 높낮이 조절할 수 있어서 좋았음) 바디필로우에 다리 한쪽을 올리고 배도 살짝 걸쳤더니 통잠을 잘 수 있었다. 집에서 쓰는 기다란 베개도 바디필로우처럼 활용할 수 있겠다.


오줌소태, 야뇨증, 요실금?

소변이 정말 자주 마렵다. 처음엔 내가 오줌소태, 야뇨증, 요실금에 걸린 줄 알았다. 태아가 점점 내려오면서 방광을 압박하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임신 중 강화도로 꽃게 먹으러 가는 날, 오며 가며 화장실엘 6번이나 들렸다. 맙소사! 막상 가면 별 소득도 없었다. 알면서도 꼭 화장실에 가야만 하는 임산부의 심정이란.


얼룩이 덜룩이

임신 5개월 차에 화장실 거울을 보고 비명을 질렀다. 겨드랑이가 얼룩덜룩한 거다. 거기서 끝이면 다행이다. 목 주름이 진해지고 배에는 보라보라한 임신선도 있었다. 유륜은 이미 빅파이로 변해 있었다. 왜 엄마의 배 가운데 선이 있었는지, 왜 배에 논바닥 갈라지듯 지글지글한 줄이 있었는지 이제야 알게 됐다.


겨터 파크 개장

찜질방에서도 땀이 잘 나지 않던 나였다. 놀랍게도 임신 중엔 몸에서 홍수가 터졌다. 특히 겨드랑이 땀샘이 폭발했는지 늘 그쪽이 흥건했다. 매번 한 번 입은 옷을 세탁기에 던져 놓는 남편을 구박했었는데, 내가 그 신세가 되니 왠지 미안했다. 팬티는 하루에 2~3번 정도 갈아입어야 해서 속옷을 따로 챙겨 출근했다. 초반엔 몹시 당황하기도 했다. 혹시 양수가 새는 것은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걱정이 되어 병원까지 갔지만 땀과 분비물이 섞인 것으로 판명되었다. 양수라면 물 같은 질감에 락스 냄새가 난다고 한다. 어쨌든 양수가 의심된다면 바로 병원에 가는 게 상책이다.


숨 쉬는 것조차 힘들어

태아가 커지면서 장기를 압박하는 탓에 숨 쉬는 것조차 불편했다. 조금만 먹어도 체한 것처럼 숨이 턱턱 막혔다. 사람이 많은 곳에 가면 증상이 더 심해졌다.

Tip. 9호선 지옥철로 출퇴근하며 가방에 휴대용 산소호흡기를 넣어 다녔다. 붐비는 사람들 틈에 끼여 호흡이 가빠질 때면 산소호흡기를 꺼냈다. 꺼내자마자 내 앞으로 길이 열리는 모세의 기적을 볼 수 있었다. 약간의 용기를 필요로 하는 방법이다.


종합병원의 탄생

코피가 자주 나고, 귀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리며, 두드러기까지 났다. 코피가 나는 건 혈류량이 늘어서라고 했다. 높은 곳에 올라간 것처럼 귀가 멍멍하고 말할 때 자꾸 내 목소리가 울려 신경 쓰였던 이명증은 혈류량 증가로 발생하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까진 확실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고 한다. 임신소양증은 심한 편은 아니었으나 복부와 허벅지, 목 아랫부분이 때때로 엄청나게 가려웠고 두드러기 같은 것이 올라왔다.



담당 의사 선생님에게 위의 고통을 차례로 호소했다.

“출산하면 다 괜찮아질 거예요.”


대학 가면 살 빠지고 남친 생긴다는 말과 다를 바 없었다. 희망고문 같은 저 말을 믿고 모든 증상이 사라질 날을 위해 달려야 하나? 그런데 왠걸, 출산하고 나니 정말로 다 괜찮아졌다. 하지만 임산부가 되면 겪게 되는 증상에 대해 시시콜콜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졌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며 안도의 숨을 내쉬는 그대를, 미리 차근차근 해결책을 마련하고 있을 그대를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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