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산부의 '안 되나요' 라이프

넘쳐나는 임산부 금지 항목

by 이백칠호
임산부, 꿀 먹어도 되나요?


얼른 핸드폰을 꺼내 맘카페에 접속해 “임산부, 꿀 먹어도 되나요?”를 검색했다. 가장 위에 올라온 글을 클릭, 꿀에 있는 보툴리누스균이 아기에겐 치명적인 식중독을 일으킨다는 내용이었다. 꿀 뚜껑을 닫았다. 아쉬운 마음에 다시 검색, 성인의 위장에선 보톨리누스균도 분해되기 때문에 태아에게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했다. 비슷한 내용의 글을 몇 편 더 보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따듯하게 데운 우유에 꿀 두 스푼을 넣었다. 아차차! 동물성 단백질 유제품도 안 좋다고 하던데? 다시 맘카페에 접속했다. 누군가는 임신했을 때 우유를 많이 마셨더니 아기가 아토피 피부염이 있었다 했다. 또 누군가는 매일 우유를 마셔서 아기 피부가 우유빛깔이라고 했다.


불안한 마음에 검색 포탈에 ‘임산부 금지 음식’ 검색어를 넣어본다. 생각도 못 한 것이 줄줄이 낚여 올라온다. 맙소사! 못 먹는 음식이 이렇게나 많단 말인가.


커피, 술, 초콜릿, 콜라, 허브티, 알로에, 팥, 율무, 생강, 매운 음식, 회…


저것들 없이 어떻게 살라는 건지. 주저앉아 울고 싶다. 나는 카페인 중독이다. 원고 마감과, 클라이언트와, 매출 압박에 번갈아 가며 시달리는 중에 커피 한 잔은 보약이다. 매일 출근하면 한 잔, 점심 먹고 졸리면 한 잔, 본격적인 야근 돌입 전에 또 한 잔. 커피를 들이키지 않은 날엔 왠지 머리가 띵하기까지 하다. 미팅이 끝난 뒤 자리로 돌아와선 서랍 속 초콜릿을 꺼내 먹었다. 사실 손가락 운동만 실컷 했을 뿐인 날에도 초콜릿을 먹었다. 일이 마음대로 풀리지 않거나 답답한 날에는 시원한 콜라를 찾았다. 조금 더 깔끔한 입가심이 필요한 날엔 녹차를 마셨다. 카페인의 노예였다.


미국 산부인과학회에서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임산부의 하루 카페인 허용량은 300ml 내외라고 한다. 커피 한 잔 정도(150ml)는 태아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다고. 하지만 ‘허용량’이란 용어 자체가 '카페인은 태아에게 좋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러니 딱 한 잔의 커피를 마시면서도 죄책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임신을 하면 자연스럽게 커피와 술에 대한 욕구가 사라진다고들 하던데 이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이성으로 욕구를 억누르는 것 뿐이다. 모성애가 부족한 인간인 건지 본래 좋아하던 것들을 단번에 외면하기가 쉽지 않았다. 억울하게 죽어 구천을 떠도는 귀신처럼 내 영혼은 매일 커피와 주류 냉장고 근처를 맴돌았다.


결국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가 행복하다는 생각으로 먹고 싶은 걸 적당히 먹기로 했다. 먹고 마시는 것을 즐기는 사람에게 제한된 음식이 생긴 것 자체가 스트레스였다. 스트레스를 받느니 (신경 써서 제대로) 먹기로 했다. 매운 음식과 우유가 아토피 피부염을 일으킬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 담당 의사 선생님께 문의해보니 크게 상관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회도 마찬가지. 싱싱한 것으로 잘 먹었고 별 문제없었다.




다음 날 나는 또 다른 검색어를 입력하고 있었다.

임산부, 노래방에 가도 되나요?


절대 안 된다는 사람, 배에 두꺼운 담요를 두르라는 사람, 볼륨을 줄여서 발라드만 부르라는 사람... 의견도 가지각색이었다. 케바케, 애바애, 엄바엄! 며칠 후 나는 노래방에서 최대한 절제하며 몸을 흔들었다. 단, 음악과 마이크 볼륨은 평소보다 작게 조절했다.

하지 말라는 건 더 하고 싶은 법이다. 굶는 다이어트가 망하는 이유도 지나치게 욕구를 억누르다 결국엔 억눌린 식욕이 콘트롤 불가능할 정도로 폭발하기 때문이리라. 나 역시 폭발할 정도로 하고 싶은 걸 참는 삶은 원치 않는다. 그래서 가능한 하고 싶은 건 다 했다. 대신 책임질 수 있을 만큼의 자유만 허락했다. 치맥 아닌 ‘치콜’을 먹은 것도, 세 잔 아닌 ‘한 잔’의 커피를 마신 것도 모두 책임질 수 있는 범위 내 스스로에게 허락한 자유였다. 최소한의 책임을 다하며 하고 싶은 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안 되나요' 라이프를 열 달 동안 살아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열 달 내내 여전히 무엇을 먹기 전에, 어디를 가기 전에 임산부 금지 항목부터 검색하는 데에 열을 올렸다. 매번 엄마나 지인들한테 연락해서 물어보는 것도, 맘카페에 들어가서 여러 사람의 글을 읽고 댓글까지 일일이 확인하는 것도 에너지가 꽤 필요하다. 그러니 임산부 관련 금지 항목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잘 정리한 앱이 있다면 참 좋겠다. 앱 이름하야 '안 되나요'. 앱 개발자분들 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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