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이야기-미움받을 용기 편 5>
어릴 때부터 나의 중요한 삶의 이슈는 어떻게 하면 부모님을 기쁘게 해 드릴까였다.
그게 왜 그렇게 중요할까 싶지만 어린아이가 자기에게 가장 소중한 부모라는 존재에게 잘 보이고 싶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리라. 그러나 문제는 그것이 중고등학교를 지나 대학생이 되어도 그리 달라지지 않았다는 거다.
어떤 친구들은 부모님이 본인이 원하는 것과 너무 다르게 나오면 '그냥 배 째!!'라고 말하곤 하던데,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참 말 쉽게 한다. 누구는 그러고 싶지 않아서 못하나!'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사실 난 감히 무서워서 그럴 엄두도 못 내었던 것 같아.
이렇게 말하고 보니 우리 부모님이 되게 무서운 분들인 것 같지만, 실상은 큰소리로 혼내거나 매 한번 제대로 안 드시는 분들인데 어린 나는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되돌아보면 '부모님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아니었나 싶다. 부모로부터 멀어지는 두려움.. 어린아이는 그럴 수 있지만 중고등 학생 때도? 대학생 때도?
차마 거역하지 못하고 늘 순종적이고 부모님 기뻐하시는 대로 살았던 것 같다.
그러던 내가 유일하게 처음으로 부모님을 거역하는 일이 대학생 때 있었다. 아버지는 난리가 났었다. 결국은 내 뜻대로 하지 못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이 3년 후에 나는 내가 원하던 대로 일을 벌였다. 그때도 반항한 것이 아니라 조용히 버틴 것 같다. 부모님은 어떤 마음으로 허락하셨을까 궁금하다. 자식 이길 부모가 없는 걸까.
암튼 그 이후 나는 부모님과 별개로 나의 삶에 대해 고민하고 계획하고 독립적으로 살아내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여전히 부모님의 기대에 부합하는 나 자신이 되지 못한 모습에 늘 죄인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 지금의 내가 보기에도 참 안쓰럽고 답답하지만, 현재의 내가 그걸 알고 있고 그런 나를 인정할 수 있게 되니 이젠 살만하다.
이런 과정들을 보면 부모님의 의도는 늘 자녀를 위한 것이지만 자녀가 신체적인 성장과 함께 심리적으로 독립을 이루는 것은 자녀 본인에게도 자녀의 독립을 지원해야 하는 부모에게도 중요한 과제로 보인다. 이러한 의미에서 아들러가 말한 '과제의 분리'가 마음이 와닿는다.
상대방의 과제와 나의 과제를 분리하라는 것인데, 문화적으로 서로 밀착되어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의도치 않게 서로의 삶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서로 연합하고 공동체의 삶을 누리는 것은 좋지만 관계에 있어야 할 적절한 경계가 다소 모호해질 때가 많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너는 너의 삶을 살고, 나는 나의 삶을 살면 된다는 말과 일맥상통하지 않나 싶다. 상대방의 삶에 너무 무관심한 것도 그리 아름답지 않지만, 내가 어떻게 할 수 없고 어떻게 해서도 안 되는 상대방이 치러내야 할 과제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것도 그리 아름답지는 않다. 마치 학교에서 자녀에게 내 준 숙제를 부모가 대신해 주려는 것과 비슷한 양상이다.
숙제는 제출하는 행위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아이가 숙제를 통해 배운 것을 복습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가기 위한 것이다. 스스로 해내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우린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친구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 성적을 잘 받기 위해, 학생부에 좋은 기록을 남기기 위해 부모가 그 숙제를 대신해 주고, 심지어 대학교 수강신청, 입사해서도 부모가 회사에 전화해서 대신 항의하는 일도 있다는 기사들을 보게 된다.
결국 이러한 모습은 당장의 결과는 좋을지 모르지만 아이에게 '난 부족해.', '더 잘해야 해',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해', '보이는 것이 중요해' 등의 메시지를 주게 되고 더 잘해야 하는 기준이 내가 아니라 타인에게 있기에 경쟁의 중심에 떠밀리게 된다. 요즘 젊은이들이 수동적이 되고 인간관계를 불편하게 여겨 혼자 하는 삶을 추구하는 것 안에는 경쟁적인 관계로 인한 피로감, 지나치게 타인을 의식하고 내가 어떻게 보일까 하는 자의식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아들러도 경쟁이 내가 나로서 사는 것을 방해하고 다른 사람의 행복을 축하할 수 없게 한다고 말한다. 차라리 잘못했을 땐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땐 사과하고, 해결되지 않는 갈등의 쳇바퀴에 있을 때는 한걸음 물러서는 것이 진정한 승리라고 말하면서 서로 권력을 쥐려는 싸움에 휘말리지 말고 서로 협력할 것을 말한다. 건강한 공동체를 세워가는 것을 중요한 목표로 삼는다.
과제를 분리하라는 말도 공동체를 구성하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하게 서기 위해 서로의 건강한 경계가 있어야 함을 말하고 있고, 결혼의 경우 각자가 홀로서기가 되어야 둘이 하나로 연합하여 사는 결혼 생활도 건강하고 만족도가 높은 것도 같은 원리일 것이다. 과제의 분리를 통해 한 사람 한 사람이 건강하게 설 때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과제를 해낼 수 있다. 이 인생의 과제는 곧 관계이고 관계는 곧 공동체로 이어진다.
내가 부모의 기대에 미치지 못해 늘 죄인같이 느껴지던 삶에서 진정한 자녀로서 당당함을 찾을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과제의 분리를 어느 정도 이행했을 때였던 것 같다. 부모가 자녀에게 기대하는 삶은 부모 나름대로 자녀의 행복을 바라면서 제시하는 것일 테지만, 자녀가 그것에 부응하지 못했다고 죄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부모는 나름 자녀를 위해 최선을 다했고 결국 그 삶을 선택하고 살고 꾸려가야 하는 것은 자녀 본인이기에 부모 눈에 조금은 부족해 보여도 자녀의 선택을 격려하고 인정해 줄 수 있어야 하고 자녀 또한 미안함이 아닌 감사로 자신의 삶을 살아가면 되는 것이 아닐까.
수업하는 중학생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무엇을 잘하니?"
"저는 잘하는 것이 없어요."
"그래??"
그래서 다른 친구들에게 대신 물었다.
"너네들이 보기에 이 친구는 무엇을 잘하니?"
여러 아이들이 한 소리로 말했다.
"기타요!"
"친구들이 다 기타를 잘 친다고 하는데 왜 너는 없다고 해?"
"제일 잘하지 않으니까요. 그냥 잘하는 건 잘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 말에 마음이 아팠다.
1등만 인정받는 세상이라는 말 같아서.
모두가 프리 마돈나만 꿈꾸는 세상인 것 같아서.
"그럼 세상에 1등만 있으면 오케스트라는 어떻게 만들어?"
"..."
그 아이는 아무 말을 못 했다.
세상에는 1등이 아니라 2등 3등 4등.. 많은 다양한 사람이 필요하고 모두가 자기 역할이 있다는 말에 아이들 모두가 숙연해짐을 느꼈다. 내 말에 다 수긍하지는 않지만 그런 발상을 해본 적도 없는 것 같았다.
우리의 자녀들이 서로 밟고 올라가는 경쟁이 아니라 자기 나름의 독특성을 가지고 자신의 자리를 잡아가고 향유할 수 있도록 인정해 주고 격려해 주면 좋겠다. 그것이 1등이든 꼴등이든 그 아이의 역할이 있을 것이기에 넌 특별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말고 너의 길을 가라고 말이다.
자녀의 과제는 자녀가 스스로 해결해 갈 수 있도록..
자신의 과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을 통해 자기 다움을 발견할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