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생계형 워킹맘입니다 23
부쩍 회사 일이 바빠져서 이곳에 글을 남기지 못했다. 연차가 쌓이고 직급이 높아지니 생산성이 늘어나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자연스럽게 맡겨지는 업무의 양은 많아지고 그러다 보니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아이가 잠들 때까지 눈코 뜰 새 없이 지나가는 날들이 반복됐다.
이럴 때 워킹맘이 견디는 방법은 이렇다. 일을 대충 하거나, 육아·가사 등 외주화할 수 있는 것들을 최대한 외주화하거나, 육아를 '대충'하는 것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중 두 번째를 하고 있다. 사실 일도 대충까지는 아니더라도 한 70~80% 정도의 역량을 쏟아서 회사에 민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하고 있으니 전혀 아니라곤 할 수 없겠다. 그래도 이제 복직해서 워킹맘 생활을 한 지 만 2년하고도 3개월 정도가 지났는데 아직까지 육아를 이유로 급하게 반차를 쓰거나 한 적은 한 손 안에 꼽히는 정도니(운이 좋았다고 생각한다) 그럭저럭 선방한 것 같다. 커리어에 엄청난 야심이 있는 게 아니라 돈을 더 벌어서 내 아이에게 앞으로 필요한 것들을 좀 더 무리없이 해주기 위해 일을 하는 입장이니 아무래도 괜찮다.
세 번째는, 사실 아이가 어릴 때부터 정말 많이 들었다. 내가 예민하고 불안이 많은 성격인데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는 발달이 늦었던 적도 있어서, 게다가 코로나 시기와 겹쳐 육아 우울증까지 겹쳤으니 고충을 토로하면 흔히들 하는 말이 '너무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고 적당히, 대충 키워도 된다'였다. 물론 좋은 뜻에서 하는 말인 건 알겠고 실제로 나도 일하랴, 혹은 그냥 너무 힘들어서 정말 내려놓고 대충 보게 될 때도 있으니 그 마음에 십분 공감하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대충 키워야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서는 어딘가 모르게 반감이 있다.
사실 우리 엄마는 자타 공인 '자유방임 육아주의자'셨다. 아이들이 다 자라 성인이 된 지금도 소위 치맛바람 일으키는 극성엄마들에 대해서는 '어차피 다 타고난 대로 자라는 거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하신다. 그리고 자신의 자유방임 육아관에 대해 자주 말씀하신다. 물론 정답은 없다. 나도 비록 자랄 땐 엄마의 의도 반, 상황 반으로 이렇다 할 케어를 받지 못해 늘 방치된 느낌을 받고 이런저런 심리적 문제도 겪긴 했지만, 어쨌거나 결과적으론 그럭저럭 멀쩡한 성인으로 자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타고난 대로 자라는 게 크다는 점도 상당 부분 공감한다. 나 역시 아이를 키워보니 아이는 생각 이상으로 타고난 기질의 영향을 절대적으로 받는다. 부모가 하는 건 그저 '거들 뿐'이라는 걸 매 순간 실감한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걸 '기승전 엄마탓'으로 돌리는 작금의 육아풍조에도 우려를 표하고 싶다. 생각보다, 특히 아이를 키워보지 않은, 요즘은 저출산으로 인해 '간접 육아경험'조차 없는 인구가 대부분인 시대에 아이들의 모든 문제를 그저 부모 탓, 그 중에서도 엄마 탓이라고 쉽게 재단하는건 매우 위험하며 심지어 사실도 아니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리 아이는 18개월이 되어서야 걸음마를 겨우 했으며 두 돌이 훌쩍 넘어서도 제대로 된 '단어'조차 거의 내뱉지 못하는 발달지연을 겪었는데, 당시 그것은 '내가 아이에게 충분한 자극을 주지 못했기 때문'인 취급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갑자기 아이가 문장으로 말을 하기 시작하고 지금은 또래보다 발달이 빠르다는 소리도 종종 듣는데, 이건 내가 '잘 키웠기 때문'일까? 그건 아니라고 본다.
그렇다면 내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는 '어차피 다 타고나니 내려놓고 대충 키우자'일까? 놀랍게도 그건 아니다.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최선을 다해 키우려고 노력하는 게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사실 인생사 많은 부분이 그렇다. 최선을 다하고자 목표를 정하면 다는 못 하더라도 어느 정도는 더 노력하게 된다. 하지만 처음부터 안 될 것 같으니 대충 하다 말지 뭐, 라고 마음먹어 버리면 정말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되는 걸 우리는 많이들 경험한다.
물론 일과 육아를 모두 완벽하게 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어딘가에는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그건 많은 부분 운이 작용한 결과며 모두가 노력한다고 같은 결과를 얻는 것도 아니다. 앞서 말했듯이 육아의 아웃풋이란 상당부분 아이의 선천적 기질이 좌우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야 하는 이유는 내가 내 자신에게 떳떳하기 위해서다. 나는 그래서 개인적으로 나와 아이의 이익, 회사와 나의 이익이 충돌할 때는 거의 항상 아이를 선택하려고 한다. 그게 가장 나 자신에게 후회가 적은 길이 될 거라고 믿어서다. 실제로 이전 직장에서 이런저런 눈치에도 불구하고 육아휴직을 '풀'로 내서 결국 복직 후 적응하지 못하고 좀 더 작은 직장으로 이직하게 됐지만, 한번도 그 때의 선택에 후회한 적은 없었다. 물론 코로나 시기 가정보육은 너무나도 힘겨웠지만, 다시 돌아가도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다시 아이가 발달지연 판정을 받았을 때로 돌아가 보면, 나는 그 당시 앞날에 대한 걱정으로 밤잠 못 이루긴 했지만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마음은 그리 크게 들지 않았다. 나는 그 때 그 흔한 동영상 한 번 보여준 적 없고, TV도 없이, 코로나로 문화센터고 뭐고 외출이 안되니 아이를 여러 번 씻겨가며 집에서 온갖 오감놀이를 해 줬다. 끊임없이 말을 걸어가며 설명을 해 줬고, 분기에 한 번 자유시간을 갖는 걸 제외하면 거의 항상 아이 옆에 붙어 있었다. 너무 힘들어서 우울증 약을 삼킬때도 있었지만 적어도 내게 주어진 휴직 기간에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싶어서 24시간 가정보육을 선택했다. 나는 완벽한 엄마가 아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그렇기 때문에 결과가 어떻든 아이에게 크게 부끄럽거나 미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천만 다행히도 아이는 당시 대학병원 교수님이 예측하셨던 것과 달리 '단순 늦된' 것이었고, 기관에서도 누구보다 적응을 잘하며 좋은 피드백을 받고 평균적으로 잘 성장하고 있다. 아이가 느려서 밤잠을 설치고 자주 우울에 빠지는 내게 '그렇게 과하게 걱정하면 애한테도 안 좋으니 걱정하지 말고 마음을 편히 먹으라'고 했고, '아이한테만 너무 매이지 말고 너 자신의 행복도 챙기면서 대충대충 적당히 키워라'고 조언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일을 하는 시간 외에는 거의 아이와 함께 있는 편이고 퇴근 후와 주말에도 특별한 일이 있는게 아닌 이상 아이와 함께 나들이를 가거나 집에서라도 되도록 아이 옆에 붙어서 상호작용을 하며 놀아주는 편이다.
때론 무척 고되다. 특히 아플 때도 쉬지 못하고 타이레놀을 삼키고 일을 해야 할때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현타'가 오기도 한다. 심지어 아이 아빠조차 어린이집 방학 땐 며칠이라도 그냥 등원을 시키라고 권하기도 한다. 하지만 고작(워킹맘 입장에선 7영업일은 고작이 아니지만...) 일주일뿐인 방학을, 아마도 다른 친구들은 거의 나오지 않을 어린이집에 내 아이를 맡기는 건 내키지 않는다. 그래서 내가 아플 때 쓰지 않은 연차를 아껴서 방학 때 가정보육을 한다. 평소 평일엔 시간이 나지 않아 엄두가 나지 않았던 장소로 나들이도 가고, 단 한두시간이라도 더 눈을 맞추고 아이랑 같이 있으려고 한다. 물론 힘에 부치면 방문교사 선생님을 부르거나 영상을 잠시 틀어주고 널부러져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낯선 아이들, 친구들과 어수선한 어린이집에서 엄마아빠를 기다리는 것보단 편한 집에서 쉬는 게 좀 더 방학답지 않을까, 그런 짧은 방학이라도 누릴 권리를 주는 게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아이를 매주 5일, 오전 9시 반부터 오후 4시까지 돌봐주시는 선생님들이 재충전할 수 있는 사실상 거의 유일한 휴가인 방학때도, 등원하는 원아들이 많을 경우 당직제로 출근을 해야 한다. 직장을 다니는 나 역시 만약 금쪽같은 내 연차에 불가피한 사정으로 출근해야 할 경우 그날 일을 과연 기꺼운 마음으로 즐겁게 할 수 있을지는 도저히 자신하기 어렵다. 선생님들이라고 다르지 않을까? 형편이 닿는 한 방학 기간을 보장해 드리고, 긴급보육은 여건상 도저히 가정보육이 어려운 가정의 아이들에게 양보하는 게 맞다는 생각이다. 선생님들의 휴식시간이 내 아이의 평일 하루 6시간 반을 보다 나은 시간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가정보육쯤이야.
요즘은 시국이 이렇다보니 엄마가 아이에게 최선을 다한다고 하면 자칫 '극성 맘X'으로 읽힐까봐 걱정도 된다. 하지만 나의 경우에는 평소 내가 내 깜냥것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죄책감이 줄어드는 만큼 아이의 잘못된 행동에 망설임 없이 엄격하게 훈육을 하게 되는 편인 것 같다. 물론 내 영원한 숙제는 그 훈육에 '감정'이 실리지 않도록 하는 것이지만. 개인적으로 '친구같은 엄마'가 되기를 목표로 한 적도 없고, 부모는 자식의 친구가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는 입장이라 오히려 권위를 잃는 것이 두려운 편이었다. 이제 세 돌이 지나고 어른들과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한 아이에게, 만약 위험하거나 남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을 할 때는 요즘 기준으로 다소 엄하다 싶을 정도로 단속하는 편이다. 아직 어리지만 예의 바른 아이라는 소리도 종종 들으면서 또 자기 요구사항은 주눅들지 않고 분명히 표현할 줄 아는 걸로 봐서 적어도 아직까진 대체로 큰 문제 없이 잘 자라고 있는 것 같다.
PS. 근데, 과연 육아를 '대충, 쉽게쉽게' 하는게 가능하긴 할까?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서 웬만한 신변 처리가 가능한 정도라면 모를까, 미취학 아동 수준이라면 아동 방임을 하지 않는 한 정말 글자 그대로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우고, 기관에 보내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육체적/감정적 노동이 수반된다. 그 퀄리티가 거의 '최소한'의 수준만 해도 그렇다. 나는 아무리 스스로를 '불량 엄마'라고 칭하는 분들이라도 정말로 육아를 힘들이지 않고 하는 경우를 본 적이 없는데 말이다. '그냥 하는 소리'를 나 혼자 '다큐'로 받아들인 거라면... 할 말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