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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초 Oct 05. 2023

그래도 애 낳기를 잘했다 싶을 때


보통의 부모들에게 육아가 힘드냐고 물었을 때, 십 중 팔구는 "힘들지만 행복이 더 커서 후회하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아이에게는 몹시 미안하고, 평생 비밀로 할 생각이지만, 나는 솔직히 말해 후회할 때가 많았다. 특히 코로나 초기 돌전 아이를 하루종일 아기띠로 안은 채(내려놓으면 몇 시간이고 계속 울었다. 수면교육이고 뭐고 하는 것도 다 아이 기질 따라 가능하다는 걸, 육아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른다) 지금 생각하면 헛웃음만 나오는 엄격한 방역정책 때문에 몇 달간 외출도 못하고 심지어 씻지도 잠을 제대로 자지도 용변도 제대로 못 보고 밥도 하루에 한끼 겨우 빵 쪼가리로 때우는 삶을 살다 우울증에 걸려 정신과 약을 삼킬 때는 도대체 내가 왜 이런 대 비혼 비출산 시대에 사서 고생을 하나 싶어서 스스로가 원망스러웠다. 


곧 세는나이(이제는 없어졌다지만) 5살이 되는 우리 아이는 독립적인 어린이로 거듭나서 이제 안아줄까? 해도 싫다며 저 멀리 놀러 가 버리고, 스스로 밥도 먹고 불완전하지만 옷도 입고 용변도 보고, 엄마보다 친구들이랑 더 신나게 놀기 때문에 이제는 종일 단둘이 있어도 '예전처럼' 미칠 듯이 힘겨운 수준은 아니다(물론 힘들지 않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일과 육아를 쳇바퀴처럼 반복하며 단 한나절도 제대로 된 내 시간을 갖기가 하늘의 별따기이며, 건강검진 올 A를 자랑하던 내가 출산을 기점으로 이상징후가 속속 나오고 있으며, 그런 상황에도 취미와 운동과 자기관리는 저 멀리 날려보낸 채 실시간으로 건강이 나빠지고 있지만 속수무책인 삶을 몇 년째 살고 있다보니, 아이를 낳기로 한 결정이 과연 정말 잘 한 결정이었다고 단번에 대답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따르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돌전에는 예민함으로, 두돌 무렵에는 발달 지연으로 애를 먹였던 아이가 이제는 발달도 정상 수준으로 따라잡고 성격도 세상 무던하고 씩씩한 아이로(물론 자식 문제라는 게 이렇게 입방정을 떨면 꼭 역변을 하고 만다는 징크스가 있지만) 자라나는 모습을 보니 후회보다는 점점 긍정적인 감정이 커지는 것도 사실이다. 무엇보다 아이를 낳기를 잘했다 싶은 순간이 들 때는, 정말 뜬금없게도 아이를 데리고 양가 부모님을 만날 때다.


사진출처: pexels


양가 부모님은 모두 넉넉지 않은 경제상황 속에서 녹록치 않은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 여전히 힘든 육체노동을 하고 있으며 다행히 모두 큰 병은 없으시지만 곧 칠순을 내다보는 마당에 체력이 예전같지 않음을 토로하신다. 하지만 간혹 아이를 데리고 방문을 하면 세상 밝은 '할머니 웃음'을 지으면서 뭐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챙겨주신다. 과일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는 볼이 터지게 과일을 넣고 할머니들에게 애교를 부린다. 가족이 다 같이 모이는 자리에서도 아무래도 아이가 있다보니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된다. 조용한 걸 좋아하는 나의 취향과는 별개로 어르신들은 떠들썩하고, 다복한 분위기를 좋아하시니 딱 봐도 어르신들에게 행복함이 느껴진다.


독일의 정신분석학자 에릭슨은 노년의 인간에게 중요한 요소로 '완성감(integrity, 자아통합감이라고도 번역함)'를 제시했다고 한다. 완성감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여러가지가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그 요소 중 하나로 자신이 삶에서 이뤄온 성과들을 자식과 손주 등 후손에게 전승할 수 있다는 점도 큰 영향을 준다고 한다. 또 자식과 손주들이 어르신의 삶을 인정하고 지지하면서 노인의 완성감은 더욱 강화된다 한다. 손주의 존재가 어르신에게는 자신의 삶을 열심히 살아 온 하나의 결실이기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춘을 바쳐 열심히 자녀를 키워내고, 성인이 된 자녀가 짝을 찾아 일가를 이루고 또 후손을 낳았으니 그 자체로도 성취감이 들 수도 있겠다는 뜻이다. 물론 나는 내 자식이 먼 훗날 비혼이나 딩크를 선택하더라도 이래라 저래라 할 생각은 없지만(애초에 성인자식이 부모 말을 듣던가?) 이왕 자식을 낳은 내 입장에서는 내 아이가 우리 부모님에게도 뿌듯함을 주는 존재임이 참 다행스럽다는 생각은 든다.


물론 아이를 전적으로 맡기면 부모님에게는 너무 큰 부담이 될 것이다. 오죽하면 황혼육아 때문에 어르신들이 육아우울증에 걸릴 정도라니. 다행히도 우리는 여건이 되어 맞벌이를 하면서도 필요시를 제외하면 양가 부모님에게 전적으로 육아를 맡긴 적은 없어서, 양가 어머니들도 가끔 보는 손주를 맘껏 반갑게 맞을 수 있을 듯하다. 


나 역시 자라면서 부모님께 이런저런 힘듦도 슬픔도 드렸고 뿌듯함도 나름대로 드렸을 것이다. 늘 반장을 도맡았던 우리 엄마와는 달리 내성적인 성격으로 조용히 뒤에서 구경만 하는 아이여서 엄마를 속 답답하게 만들었을 것이고 어릴 적 영재 소리를 들었지만 기대에 못 미치는 학교 성적과 입시 결과, 비록 부모님께 손을 따로 벌린적은 없지만 길어진 취업준비 시간과 어디에 '자랑' 할만한 직장은 아닌 그저 평범한 직장을 다니는 자식인만큼 우리 부모님은 내게 실망감을 숨기지도 않고 드러내 왔다. 그럼에도 결국은 너밖에 없다며 평범하게 잘 살고 있는 자식에 대한 감사함을 내비치기도 하셨고 나 역시 부모님을 원망할 때도 있었지만 나 역시 엄마가 되어보니 이제는 원망보다는 감사함이 더 크다. 그렇기에 손주를 만나면 진심으로 웃는 양가 부모님을 볼때마다 효도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생각해보면 나 역시 결혼하고 아이를 낳기로 결정하게 된 큰 계기는 바로 조부모님과 부모님의 늙어감과 돌아가심을 목격하면서였다. 노년의 과정에서는 부모님도 직장 동료도 커리어도 친구 관계도 심지어 돈보다도 결국 자기가 꾸린 가정과 자녀가 거의 전부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아무리 부모봉양의 개념이 약해진 시대라고는 하나 그래도 늙고 병들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이나 요양원이라도 가고 장례라도 치뤄주는 건 결국 자식과 손주들인 게 대부분이었다. 물론 우리 세대는 또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살면 살수록 그래도 진짜로 믿을만한 건 가족들이라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건 자식에게 '키워준 값'을 받아내겠다는 심보가 아니다. 내 핏줄이 그래도 어딘가에 살아 숨쉬는 것만으로도 노인들은 정신적으로 많은 의지가 된다는 것을 현직 요양보호사인 우리 엄마에게 숱하게 들었다. 당장은 힘들더라도 인생의 겨울이 찾아오는 시기 내 곁에 누군가가 있어주길 기대하는 것조차 욕심이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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