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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린 아저씨의 10년간의 비밀

by 뚜벅초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어느 날 밤.


매서운 비바람이 창문을 때리고 있다.

젊은 경찰관 기린 아저씨는 그날도 밤 늦게까지 사건의 단서를 추적하다가 집에 귀가했다.

'오늘도 또 늦고 말았군... 아내랑 아이들이 기다리고 있을텐데. 면목이 없네.'

그가 현관문을 열자마자, 찢어지는 듯한 아이들의 비명 소리를 듣고 안방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모든 것이 늦은 상태였다.


바닥에는 그의 아내가 엎드려 피를 흘리고 있다.

그리고 어린 이안과 소린은 쓰러진 엄마 옆에서 비명을 지르며 울다가,

아빠가 온 것을 알고 아빠에게 달려와 안긴다.


"여보, 이게 무슨 일이야...!"

열린 창문으로 비바람이 몰아치고, 축축하게 비에 젖은 커튼이 나부끼고 있었다.

누군가가, 창문을 열고 나간 것이다.


그리고 쓰러진 아내의 등에서는 피가 흘러 나오고 있었다.

누군가에 의해 공격당한 게 틀림없다.


기린 아저씨가 잽싸게 열린 창문으로 달려나가려는 순간, 그는 보고 말았다.

쓰러진 아내 옆에 놓여 있는 한 장의 종이조각. 그리고 거기에 그려진 낯익은 문양.

그 문양은 그에게 분명히 경고하고 있었다.


더는 우리를 추적하지 말라고.

우리에 대해서 더 알려 하지 말라고.

이를 어기는 순간, 남은 아이들조차 엄마와 같은 일을 당할 수 있다는 것을-

기린 아저씨는 직감적으로 알고 말았다.


그렇게 그의 모든 수사는 자체 종결됐다.

형사로서의 양심에 앞서 아이들을 지켜야 하는 그는 어쩔 수 없는 한 명의 아버지였다.



사본 -ChatGPT Image 2025년 10월 31일 오후 08_34_24.png 사진: 챗GPT




그 날 밤, 아내의 옆에서 본 그 문양을

10년만에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다시 보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번에는 역시나, 소린이가 위험할 뻔했다.


기린 아저씨는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리고 문득 아침에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수상한 고양이가 건네준 종이에서 빛이 나서 모든 것을 일거에 물리친 일-

그렇다, 그 고양이를 찾아가보자.

무언가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 순간 숲속마을에서도 뭔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돌고 있었다.

언제나 해맑게 뛰어놀던 숲속유치원 아이들은 오늘따라 공허한 눈빛으로 노래만을 반복하고 있다.


"Lion boys.... 이제 깨어날 시간...."


언제나 눈빛을 빛내던 미미도, 친구들에게 아는체를 하며 참견하던 제이도,

자주 울먹거리지만 그래도 금방 미소를 짓던 로니도,

도토리를 모으느라 늘 바쁘던 준이도,

표정 없는 모습으로 마을을 힘없이 돌아다니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무리는 비단 아이들뿐이 아니었다.

어느샌가 몇몇 어른들도 아이들처럼 멍한 눈을 하고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찹쌀떡을 만들던 부들이 아저씨도,

온천물 온도를 재던 삼색이 할머니도,

밭에서 잡초를 뽑던 제이의 부모님도

하던 일을 모조리 손에서 놓아버린 채 노래만을 흥얼거릴 뿐이었다.


"안 돼...마을이 온통, 세뇌되고 있어..."

버미는 겁에 질린 채 엄마곰의 품에 안겨서 바들바들 떨고 있다.




포스터의 이상함을 느낀 버미가 링고의 천막으로 달려갔다.

"버미야, 어른들을 불러오렴."

얼마 지나지 않아 버미의 엄마곰과 아빠곰이 황급히 링고의 천막으로 들어왔다.


그때, 기린 아저씨도 식은땀을 닦으며 천막으로 들어왔다.

"링고, 당신의 도움이 필요해요."

링고는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는 듯이 침착하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봤다.

"오셨군요. 당신은 어느정도 알고 있겠죠. 지금 마을에 일어나는 일의...이유를."

기린 아저씨가 고개를 떨구며 말한다. "...네."

당황하여 서로의 얼굴만을 바라보는 버미의 부모.

"그 문양, 전에 본 적이 있어요."


링고의 나무 테이블 위에 사자 보이즈 포스터가 놓였다.

링고는 길고 가느다란 붓으로 그 옆의 종이에 하나의 문양을 그려넣는다. 낯익은 모습이 기린 아저씨의 눈동자가 흔들린다.

그때, 갑자기 버미의 엄마곰이 말한다. "이 문양, 어디선가 봤어요. 분명히...도서관에서..."

"뭐?"

"도서관 지하 창고에 마을의 오래된 자료를 보관해 놓는 서가가 있는데, 그곳을 정리하던 중... 오래된 기록에서 이 문양을 본 적이 있어요."

링고가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 당장, 도서관으로 갑시다."




매캐한 종이 냄새와 먼지가 뒤섞여서 재채기가 나는 도서관의 지하 창고.

자료의 변색을 막기 위해 이곳에서는 전등조차 켜지 않는다. 엄마곰이 랜턴을 든 채 앞장서고, 아빠곰과 버미(어른들은 버미를 할머니곰의 집에 보내려 했지만, 버미는 혼자 돌아가는 게 더 무섭다며 기어코 따라나섰다), 그리고 링고와 기린 아저씨가 조심스레 뒤를 따랐다.


"여기에요."

지하 창고에서도 가장 깊숙한 서가. 언제 쓰였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을 정도로 낡은 책과 기록, 두루마리들이 어지럽게 쌓여 있는 곳을 가리키며 엄마곰이 말한다.

"어디 보자...이쯤에서 본 것 같아요."

"결국 여기 있는 책들을 하나씩 다 찾는 수밖에 없겠군."


일행은 가장 단순한 수사법을 시도했다. 모두가 서가 바닥에 앉아 책장에 꽂힌 책들을 하나씩 다 꺼내어 뒤적이는 방법밖에 없다.

한참의 시간이 지났을 때쯤.

"여기에요. 바로 이 책에..여기."

엄마곰이 떨리는 손으로 오래된 책의 한 페이지를 가리킨다.


그 곳에는 알 수 없는 문자로 어지럽게 쓰여진 글자,

그리고....

링고와 버미가 포스터에서 본 수상한 문양,

기린 아저씨가 10년 전 그 밤에 본, 결코 잊을 수 없는 그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방향만 정반대로 뒤집힌 채로.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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