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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린이의 위험한 도시 나들이

by 뚜벅초

(이번 에피소드는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일부 설정을 약간 패러디했습니다.)


베테랑 형사인 기린 아저씨는 요즘 은근히 신경쓰이는 일이 있다.

바로 사춘기 초입에 들어선 둘째, 딸 소린이가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아이돌에 빠져 있기 때문이다.


"꺄악! 사자 보이즈 오빠들이닷..!!!!"

오늘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니,

소린이 녀석은 TV 앞에 앉아서 사자인지, 호랑이인지 하는 녀석들만 보고 있다.


저, 저 녀석...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 들어갈 건데. 숙제는 다 하고 저러는 건가?

게다가 사자 보이즈라니, 제법 잘 생긴 사자들이긴 하지만 어딘가 모르게 눈빛이 무섭다.

하필 좋아해도 육식동물들이라니? 역시 남자는 나처럼 초식동물이어야 하지. 몸에서 고기 냄새도 안 나고 말야.

아니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소린이 너, 숙제는 다 했어?"

"헉 아빠, 언제 들어왔어?"

"언제 들어왔긴 이 녀석아, 너 TV에 빠져서 아빠가 들어오는지도 모르고 말이야-"


그때 현관문이 열리고 땀 냄새를 풍기며 한 녀석이 더 들어온다.

소린이의 오빠 이안. 이 녀석은 둘째보다는 훨씬 의젓하다. 오늘도 종일 운동장에서 공 차다 들어온 모양이다.

"어, 아빠 일찍 오셨네요."

"그래. 대신 내일은 당직 근무야. 소린이 잘 챙겨야 한다. 얼른 밥 먹자."




"아빠, 오늘 학교 끝나고 친구들이랑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올게요."

오늘따라 일찍 일어난 소린이가 책가방을 메고 현관으로 나가며 말한다.

"그래? 언제쯤 들어오니?"

"저녁 먹고 바로 들어올게요. 걱정마세요 아빠."


그 순간, 베테랑 형사인 기린 아저씨의 촉이 오기 시작했다.

잠꾸러기인 소린이는 아빠나 오빠가 깨우기 전까진 좀체 먼저 일어나는 법이 없다. 그런 녀석이 새벽같이 일찍 일어나서 스스로 준비도 잘 하고, 뭔가 물어봐도 "몰라요" "알아서 할게"라고 퉁명스럽게 대꾸하던 녀석이 저렇게 상냥하게 말할 리가 없다. 그러고 보니 책가방도 평소보다 지나치게 불룩한 것 같다.

아무래도 뭔가 수상하다. 녀석을 따라가 봐야겠어!



역시나 그의 촉이 맞았다.

소린이가 향한 곳은 학교가 아닌 기차역이었다.

소린이는 지금 막 도시행 열차에 오르고 있다. 그걸 멀리서 기린 아저씨는 차에 탄 채, 자신의 긴 목을 활용해 모든 것을 보고 있었다.



그 때였다. 누군가가 기린 아저씨 차창 문을 똑똑 노크했다.

"누구쇼?"

하필 이 타이밍에 대체 누구야. 딱지라도 끊으려는 겐가. 난 이래봬도 공무수행중(?) 이라고-

창문을 내려보니 에메랄드 빛의 날카로운 눈동자 두 개가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회색 털이 우아하게 난 러시안블루 고양이 한 마리, 항상 알록달록한 문양의 옷을 입고 다니는 그녀는 바로- 링고.

숲속마을 외곽의 한 천막에서 수정구슬과 타로카드로 점을 치는 점성술사다.

"따님이 지금 도시로 가고 있군요."

"헉? 아..아니 어떻게 아셨죠?"

"이걸 가져가는 게 좋을 듯합니다."

링고는 조용히 그에게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종이에는 동그라미에 꽉 찬 별 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건 뭐...뭔가요? 부적..인가?"

"대충 그런 거라고 보면 됩니다. 가져가 보면 알 거에요. 따님 잘 지켜 보시고요."

그때 기차가 도시를 향해 내달리고, 기린 아저씨도 엑셀을 밟아 부지런히 기차를 따라갔다.


소린이는 기차에서 내려 한참을 걸었다.

그리고 멈춘 곳은 바로 한 경기장. 이미 또래 소녀들이 바글바글 모여 줄을 서 있었다.

그곳은 바로 인기 아이돌 사자 보이즈의 콘서트가 열리는 곳이었다.

"녀석, 도서관 간다더니 결국 사자 오빠들 보러 왔구만!"

콘서트 시간이 다 되어 소린이는 다른 소녀팬들과 함께 줄을 맞춰 콘서트장 안으로 들어갔다. 기린 아저씨에게는 사자 보이즈 콘서트 공연 표 따윈 없었지만- 베테랑 형사의 노하우를 살려 콘서트장 안으로 잠입하는 데 성공했다(※따라하지 마세요).


사진: 챗GPT


"Lion Boys! 우리는 이제 깨어나고 있다! 자, 이제 너도 깨어날 차례! ♬"

강한 비트와 조명이 가득 찬 콘서트장에는 음악 소리보다 더 시끄러운 팬들의 함성 소리로 가득찼다.

베테랑 형사 기린 아저씨는-어마어마한 팬들의 열기 속에서 그만 딸이 어디 있는지 놓쳐 버리고 말았다.

"으...이 녀석, 대체 어디 있는 거야"


그 순간,

갑자기 팬들의 함성 소리가 어딘가 모르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열광적으로 노래를 따라부르던 소녀들이 갑자기 하나씩 쓰러지기 시작했다.

"헉...왜들 이래? 소린이? 소린이 어딨니!"

그때 저 멀리서 고개를 아래로 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는 기린 소녀가 보였다. 소린이다.

"소린아!!!!"

"아빠...?"

"소린아 괜찮아? 일단 밖으로 나가자, 빨리!"

"아...하지만 사자 보이즈 오빠들이..."

"지금 사자보이즈고 뭐고! 그런 거 찾을 때냐! 빨리 나와!"

소린이를 일으켜 세우려는 순간 뭔가 밑에서 소린이를 잡아끄는 것처럼 강한 힘이 느껴졌다. 힘이 제법 센 기린 아저씨임에도 딸의 몸을 도저히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아니, 왜 이러지?"



그 순간, 기린 아저씨의 바지 주머니에 아무렇게나 구겨 넣어뒀던 그 종이에서 환한 빛이 쏟아져 나왔다. 아침에 만난 점성술사 링고가 준 부적이었다.

빛은 소린이를 감싸더니 점점 소린이가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고, 이윽고 다른 소녀들도 조금씩 깨어났다.

하지만 무대 위 사자 보이즈는 보이지 않았다.

그 순간-기린 아저씨는 보고 말았다. 사자 보이즈가 떠난 무대 위, 낯익은 문양의 모습을.

'저...저건...!'


"소린아, 잘 들어. 콘서트장 앞에 아빠 차가 있어. 넌 일단 거기 타서 좀 쉬고 있어. 아빠는 잠시 다녀올 데가 있다."

"아빠?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그리고 아빠가 왜 여기 있어?"

"설명은 나중에 하자."

기린 아저씨는 딸을 끌고 나와 차에 태우고, 다시 공연장 안으로 들어갔다.


공연장 건물 안을 돌아다니다 보니 복도 맨 끝에 '아티스트 대기실'이 보였다.

그리고 문의 틈으로...아까 공연장에서 본 수상한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졌다.

기린 아저씨는 침을 꿀꺽 삼키고, 문을 열었다. 그 순간.....

사자 보이즈 대신, 망토를 두른 네 마리의 수상한 동물들이 의식을 치르고 있었다. 곰, 여우, 너구리, 다람쥐였다. 그들은 둥글게 모여 앉아 바닥에 문양을 그리고 주문을 외우고 있다.

그 순간,

곰의 눈이 번쩍 빛나며 기린 아저씨와 눈을 마주쳤다.

"크르르르..... 넌 누구냐."

"설마 지난번의 그..?"

기린 아저씨는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문을 닫고 나와 차를 타고 숲속마을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도시 뉴스에서는 그날 콘서트장에서의 소동을 '가스 폭발 사고로 추정'된다고 얼버무렸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어떤 이유로 관람객들은 무사히 가스 중독에서 벗어나 귀가했다고.

사자 보이즈는 아무렇지 않게 활동을 계속했다.

소린이가 조금씩 그 날의 충격에서 벗어나려던 무렵

숲속마을에는 웬 포스터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사자 보이즈, 첫 숲속마을 투어! 0월 00일 숲속마을 광장 무대에서 만나요!"


"아니, 사자 보이즈가 우리 동네에 온다고?"

"우리 엄마가 그러는데, 엄청 유명한 가수래."

"근데 우리 동네는 엄청 시골이잖아? 여기서 어떻게 공연을 해?"

마을 사람들은 신기해하면서도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반응이었다.


"어? 나 이 가수 알아. 소린이 누나가 엄청 좋아하는 가수잖아."

여우 제이가 말했다.

"그럼 우리 이 포스터 갖다가 누나한테 갖다줄까?" 버미가 말했다.

"좋아! 근데 너무 높은데 어떻게 하지"

"내가 이렇게 몸을 둥글게 하고 있을테니까 우리 중에 제일 작은 준이가 내 등 위로 올라가서 떼자!"


결국 다섯 마리 중 가장 몸이 큰 버미가 몸을 둥글게 말고, 그 위에 다람쥐 준이가 올라탔다.

그러나 아무리 큰 불곰이어도 결국 어린아이일 뿐. 준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버미가 넘어졌다.

"아앗!"

준이의 손에 잡혀 있던 포스터가 주욱- 찢어지면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아얏! 준이야, 버미야 괜찮아?"

"응..괜찮아. 근데 이 포스터 좀 이상한 것 같아!"

준이의 손에 들려 있는 포스터가 바람에 살랑 흔들렸다. 그 순간, 포스터에서 아주 작은 소리로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Lion Boys.....우리는 이제 깨어나고 있다...자, 이제 너도 깨어날 차례....!"


"으아아아악!!!!! 포스터에서 노래가 나와!!! 이거 뭐야!!!!"

아이들은 사방팔방으로 흩어졌다. 오직 버미가 뛰어가려다 잠시 멈춰 포스터 조각을 주워 바지 주머니에 넣고 다시 도망갔을 뿐.




"링고!! 이것 좀 보세요!!!"

그날따라 링고는 웬지 모르는 수상한 예감에 수정구슬로 점을 치고 있었다. 그 순간 천막 문을 요란하게 젖히고 들어오는 이는, 바로 버미였다. 손에는 종이 조각을 든 채.

"음? 버미 아니니?"

"유치원에 호랑이 보이즈(버미는 아직 사자와 호랑이를 종종 헷갈린다) 포스터가 붙어 있어서 찢었는데 여기서 막 노래가 나와요!"

그리고 링고의 푸른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이건...보통 포스터가 아니야.

엄청난 마법의 힘을 담고 있는 포스터야. 그것도 아주 위험한 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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