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 초반에 가방 하나 매고 떠났던 무계획 호주 여행에서 부족한 숙박비를 감당하기 위해 '우프(WWOOF)'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원시적이었는데, 우프에서 나온 책자에 나온 우프 호스트 가정의 자기소개와 간단한 연락처(대개 전화번호와 메일 주소)를 보고 무작정 컨택해서 언제부터 언제까지 머물고 싶다고 요청하고, 호스트 가정에서 오케이를 하면 알아서 찾아가면 된다(대략 역까지는 픽업을 해주는 분들이 많긴 하다). 숙박비와 세 끼 식사에 대한 비용을 따로 지불할 필요는 없다. 물론, 진짜로 무료는 아닌데, 그 시간 만큼 그 가정의 일을 도와야 했다. 대개는 농사일이었지만 개 산책이나 청소 같은 일도 해야 했다. 극내향인 내가 지금 생각해보면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이런 일을 하게 된 이유는 아마도 돈이 없었지만 그만큼 무모한 청춘이였기 때문이리라.
세 번째로 묵은 우프 가정은 숲 속의 단독주택이었다. 차를 타고 한참을 들어가야 나오는 조용한 숲 속에 위치한 그 집에는, 아들과 둘이 사는 우리 엄마 또래의 호스트 아주머니와 큰 리트리버 두 마리가 있었다. 리트리버들은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웠지만 그만큼 힘이 너무 셌다. 따라서 힘이 별로 강하지 않은 여성인 내가 혼자 개 두 마리를 산책시키는 것은 때로 매우 위험했다. 강아지들은 내 소지품을 물어뜯어서 필통과 그 안에 있던 것들을 모조리 박살내기도 했는데, 호스트 아주머니는 "그러게 조심시켜야 한다니까~"같은 말만 남긴 채 별다른 보상 없이 그냥 웃어넘기셨다. 아무튼 이제와서 보면 다 추억이긴 하다.
그 집에서 무슨 일을 했는지 이제 와선 구체적으로 잘 생각도 안 나지만, 딱 하나 인상깊었던 건 거실에 있는 '진짜' 벽난로와 잠들기 전 산속에서 들리는 낯선 새들의 아름다운 울음소리였다. 거실은 평상시 잘 사용하지 않았는데, 우프 자원봉사자(우리를 정식 명칭으론 자원봉사자라고 했다)들은 별관 같은 건물에, 가족들은 별도의 방에서 거주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무토막을 던져 넣으면 화르륵 불이 옮겨붙는 모습을 처음 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아궁이조차 때본 적 없는 나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우와, 그림책에서만 보던 벽난로라는 걸 실제로 보다니. 여기가 정말 지구 반대편이긴 하구나.
온돌방 난방에 익숙한 한국인인 나는 그 집이 무척 추웠다. 벽난로고 히터고 효과적인 난방장치는 되지 못했다. 뜨끈한 바닥이 없으니 이것저것 틀고 옷을 껴입어도 으슬으슬한 느낌이 계속 들었다.
귀국을 하고 아파트를 비롯한 한국식 공동주택 생활만 계속하면서 벽난로는 완전히 내 일상 속에서 사라졌다.
지금 바로 작가의 멤버십 구독자가 되어
멤버십 특별 연재 콘텐츠를 모두 만나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