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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시간은 멈춰 있는 게 아니다

나의 육아우울증 극복기 13

by 뚜벅초

육아휴직을 내고 아기와 한참 집에 갇혀 씨름을 하고 있던 지난 여름, SNS에서 화제가 되던 한 기사에서 낯익은 이름을 봤다. 언론사 입사를 위해 같이 스터디를 하던 친한 기자가 낸 단독 기사였다. 기사는 이리저리 공유가 되며 독자들에게, 그리고 사회 전반으로 화제를 낳고 있었다. 나에게 제법 친숙한 사람이 낸 업적이 무척 놀랍고 반가우면서도 웬지 모를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지금 반 년 넘게 '전업주부', '엄마'로 지내며 기존 직업인으로서의 자아가 점차 흐려져 가던 시기였다. 마치 '전생'처럼 여겨질 정도로 멀어져갔던 사회생활의 감각이, 단독 거리를 놓치면 피말려했던 시간들이 벌써 낯설게 머릿속에서 재생되고 있었다.


낮은 출생률을 반영하듯이, 이미 적지 않은 나이인 내 또래의 동료들은 상당수가 결혼을 하지 않았거나 결혼을 했더라도 출산을 미루고 있었다. 특히 여자들의 경우 더욱,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는 순간 최소 '출산휴가 3개월'의 기간만큼은 일을 접어야 하는 현실이고, 매 순간 트렌드를 따라가야 하는 업계에서 몇 달의 '멈춤'은 그 자체로 감각을 잃어버리기 쉬운 이벤트다. 여성 직업인으로서 임신·출산은 전력투구로 지켜 오던 커리어를 일정 내려놓아야 하는 중대한 사안이다. 그만큼 쉬이 결정하지 못하고, 때로는 아이를 낳고 싶은 마음이 있더라도 미룰 수밖에 없기도 하다.


어쨌거나 나는 엄마가 되는 길을 선택했고, 한 아이를 당사자의 의지와 관계없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책임을 할 수 있는 한 다하고 싶다는 생각에 내가 낼 수 있는 최장기간의 휴직계를 냈다. 당연히 부담이 가는 일이었고 복귀 이후가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당장 내가 할 일 중 우선순위는 아이에게 좋은 엄마가 되어주는 일이라고 판단했다. 어떤 동료들은 육아휴직을 낸 나에게 '푹 쉬다 오라'고 말하기도 했고, '휴직 기간을 즐기라'고 부러워(?)하기도 했다. 사기업치고 긴 휴직기간 탓에 퇴사를 준비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기도 했다. 아직까지 우리 사회에서 육아를 보는 시선들을 간접적으로 체감한 순간이었다.


많은 엄마들은 말한다. 집에서 말도 못하는 아기의 수발을 들며 아기가 저지레한 것들을 닦고, '밥이나' 차리고, 똥오줌이나 치우는 일은 아무리 해봤자 누가 알아주지도 않고 이력서에 한 줄도 남지 않는 그냥 단순노동일 뿐이라 자괴감이 든다고. 나 또한 그 심정을 십분 이해한다. 엄마가 되기 전엔 다른 이들과 동등하게 공부하고 노력하고 전문성을 가진 각자의 분야에서 일했던 이들이 엄마가 되면 그 전에는 손도 댄 적 없던 '3D' 업무에 종일 시달려야 하니까. 여간 자존감이 손상되는 일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가 거기서 끝나야 할까. 엄마들을 육아노동에서 해방시키는 것만이 진정 우리가 가야 할 길의 전부일까. 지난 1년간 다른 직업인이 아닌 오롯이 엄마로 살아오면서, 엄마라는 일이 정말 단순하고 지루한 노동일 뿐이며 가치없고 자아를 파먹기만 하는 일이라는 말들에 반박을 하고 싶어졌다. 물론 육아 노동은 몇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고강도의 노동이 맞다. 정신적으로도 매우 취약해지기 쉬워 나처럼 육아우울증을 겪는 엄마들도 매우 흔하다. 여기에 출산 후 신체적 손상까지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실제로 나는 지난 30몇년간 해 본 다양한 일과 경험들 중에 육아는 단연 나를 가장 많이 변화시키고, 자라게 한 일로 꼽는다. 단 한 번도 돌봄노동에 종사해본 적 없는 내가, 나라는 존재가 없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누군가를 종일 수발들면서 나 역시 어느 때보다 내적으로 성장하는 경험을 했다.


출처: 픽사베이


우선,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을 연습했다. 화가 날 때 심호흡을 하고 일단 자리를 피하거나 다정한 말투로 말하며 감정을 추스르는 방법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아이를 낳기 전에는 막상 하지 못했다. 하지만 아이 앞에서는 완벽하진 않아도, 어떻게든 분노와 짜증을 다스리려고 노력하는 나를 발견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방식도 배웠다. 출산 전에는 게으름을 피우는 습관 때문에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침대에서 뒹굴대며 스마트폰이나 보다가 정해진 시간에 닥쳐 서두르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한 '게으름'이란 세 글자는 내 사전에서 지워야만 했다. 아이가 잠시 혼자 노는 시간, 잠에 든 시간을 쪼개 이런저런 일을 재빠르고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습관이 붙었다.


비록 육아 때문에 힘들고 지치고 우울한 날이 많았지만, 가장 좋은 점은 '질투하는 마음'이 줄어들었다는 점이다. 왜일까. 나에게는 이미 나 자신보다 더 중요하고 소중한 사람이 생겼기 때문일까. 우리 집에 보물이 있는데 남의 집 푼돈이 부러울 필요가 없었다. 행여 밖에서 마음 상할 일이 생긴 날도, 아이의 행복한 모습을 보면 모든 것이 부질없게 느껴져 금방 잊을 수 있게 된 것도 좋다.


휴직 전 나는 무척이나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7년차가 되니 그저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찾아왔고, 이 일과 타고난 적성이 맞지 않는다는 생각에 나날이 괴로웠다. 후배들과 동료 기자들의 앞서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자괴감과 조바심에 찌들어 있었다. 그 돌파구(?)로 엄마가 된 측면이 없잖아 있다. 일보다 더 힘든 육아라는 책무에 육아우울증 진단까지 받았고 때로는 후회도 했다.


그래도 돌이켜 생각해 보면 지난 1년간 엄마로서의 시간은 나를 단지 멈추게 한 게 아니라 넓어지고, 깊어지게 만들었다. 내가 휴직 중에도 단독 기사를 쓰며 앞서나가는 동료들에게 나는 더 이상 질투만이 나지 않는다. 대신 이전보다 더욱 가벼운 마음으로 그들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낼 수 있었다. 나에게는 '정말 소중한 것'이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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