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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우먼'은 되지 않으려구요

나의 육아우울증 극복기 11

by 뚜벅초

육아를 시작하고 나서, 이런저런 육아 정보를 블로그나 '맘카페' 등 온라인 공간에서 많이 얻는 편이다. 특히 이유식을 시작하고 나서는 매일매일 아기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기 위해서 검색은 필수였다.


나와 비슷한 연령대의 아기를 키우는 다양한 엄마들의 SNS를 보면서, 때로는 동질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좀 더 자주 놀라움을 느꼈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굳이 이렇게까지 해야 해?'라는 생각. 주 5일 출퇴근을 하면서도 매 끼니 아기에게 새로운 식단의 유아식을 손수 해 먹인다든지, 한참 저지레를 하기에 바쁜 아기들 여럿을 키우면서도 집을 마치 스튜디오처럼 예쁘고 감성적으로 유지하는 엄마들이라든지.


물론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그냥 사진 찍을 때만 그렇게 하고 보통 땐 아무렇게나 할 거야'라고 말하지만, 나처럼 평범한 엄마들은 그들의 그냥 사진만을 보고도 위기감을 느끼곤 한다. 나도 나름대로 한다곤 했는데 게으른 편이었구나, 저렇게까지 하는 엄마들도 있는데 나중에 우리 아이가 다른 집 애들 보고 박탈감 느끼면 어떡하지, 워킹맘들도 저렇게 한다는데 집에 있는 나는 대체 하는 게 뭘까.


사실 생각해 보면 사회적으로 요구받는 '엄마의 역할'이 SNS의 보급, 그리고 애초에 일반인과는 '넘사벽' 급인 연예인들의 육아 예능 등과 함께 무한대로 넓어지고 있는 것도 같다. 당장 우리 어릴 때만 해도 유아식이 뭔가, 그냥 엄마 젖이나 분유 먹다가 좀 자라면 어른 밥에 국 말아서 먹고, 가끔 슈퍼에서 거버 이유식이나 사서 먹이고, 돌 지나면 그냥 밥에 된장국 말아 먹고도 잘 컸다고 한다. 엄마표 놀이? 엄마표 영어? 그런 건 어느 별나라에나 있을지.


하지만 요즘은 놀이터에 가도 아이들 노는 옆에 엄마들이 뻗치고 앉아 도시락 싸 들고 있어야 아이를 '방임'하지 않는 축에 든다. 일을 하더라도 아이의 관심분야와 발달수준에 맞춰 어린이집부터 놀이학교, 영어유치원, 각종 교구와 전집 등을 세세히 꿰고 제공해줘야 한다는 게 당연한 엄마의 역할처럼 받아들여진다. 심지어 쉬기도 바쁜 주말에는 이리저리 체험을 다니거나, 그나마 '코로나'때문에 어려워진 요즘은 매일매일 아이들의 오감을 깨우는 새로운 놀이를 개발해 아이들을 즐겁게 해 줘야 한다. 유기농 식단으로 매번 장을 봐 갓지은 밥에 맛있는 반찬과 간식을 '엄마표'로 만드는 것도 필수다.


어디 살림, 육아만 잘 하나? 육아 하라고 주는 육아휴직 기간에도 밤잠 줄여 가며 각종 고시, 자격증 시험 합격에 석박사 학위까지 딴 능력맘들이 왜이리도 흔한지. 게다가 다들 어찌나 '빡세게' 외모도 가꾸는지, 도무지 애를 낳았을 거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날씬한 몸매와 완벽한 코디를 하고 있다. 직장에서도 혹여나 워킹맘이라고 욕을 먹을까 싶어 더 열심히 일하는 선배들은 모두 아이 엄마들이었다.


Pixabay로부터 입수된 Марина Сиротинина님의 이미지 입니다.


이쯤되면 도대체 이게 사람의 노동량인지, '신'의 영역인지 헷갈릴 정도다. 심지어 이걸 다 해내도 친구 부모보다 돈을 못 벌거나 아파트 평수가 작거나 경차를 타고 다니면 또래들에게 기가 죽으니 직장 일도 열심히 해서 돈도 많이 벌어와야 한다. 어디 감히 그런 걸로 비교를 하느냐고 야단을 치는 어른은 없는 시대다. 그에 앞서 혹여나 우리 아이가 기가 죽을까봐 모두들 겁을 먹는 게 현실이다.


이런 시대에 양육자의 육체적 건강과 정신건강이 위협받지 않는 게 오히려 더 기적이 아닐까? 우울증을 겪기 가장 쉬운 성격적 특징이 바로 '완벽주의'라고 한다. 내 경우 출산하기 전에는 완벽주의와 아주 거리가 먼 성격이었다. 원체 게으른데다가, 지나치게 내성적이고 사회성이 제로에 가깝던 어린 시절에 비하면 평범한 사회생활을 하는 지금의 모습은 장족의 발전이기 때문에 사소한 성취에도 스스로를 칭찬하는 습관이 있었다. 덕분에 이런저런 시행착오를 거치면서도 정신건강 하나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하지만 엄마가 되고 보니 이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만족'이 있을 수 없는 구조였다. 일단 '평가자'인 아기는 아직 말을 못 하기 때문에 별다른 피드백을 받을 수 없었고, 직장동료도 상사도 없는 주부의 삶은 그냥 이 일을 끝내면 저 일이 보이는 악순환이었다. 게다가 온라인에는 왜 이렇게 살림의 신과 육아의 신이 넘쳐나는지. 설령 그것이 모두 연출된 것이라 하더라도 우울과 자학을 일으키기에 딱 좋았다. '인스타' 같은 걸 보면 정신건강에 좋지 않을 듯해 애초에 하지 않고 있지만, 아이를 키우다 보면 검색조차 안 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내가 살림과 육아의 신이 돼서 완벽한 집과 식단, 그리고 몸매를 유지한다고 해도 그것은 결국 나의 자기만족, 더 정확히 말하면 남들에게 나를 '증명하기' 위한 것일 뿐 나와 내 가족을 위한 것은 아니다. 내 아이는 북유럽풍으로 예쁘게 정돈된 집보다는 좋아하는 장난감과 호기심을 자극하는 물건들이 널부러진 집이 더 좋을 것이며 아무리 예쁘게 유아식을 플레이팅해봤자 순식간에 난장판이 될 것은 불보듯 뻔하다. 그리고 돌 사진을 찍으려고 헤어 메이크업을 받았더니 내가 누군지도 못 알아보고 대성통곡을 한 우리 아기의 상태를 볼 때 내가 열심히 식이조절을 해 결혼 전 몸매로 돌아간들 아기는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


어차피 모든 걸 다 잘할 수 없는 만큼, 나는 슈퍼우먼이 되지 않기로 했다. 그보다는 내 아이가 행복하고 건강하게 자라는 것을 '선택'하고 내 에너지를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온라인에는 육아와 살림, 몸매 관리와 자기 계발, 취미 생활까지 완벽하게 해내는 듯한 엄마들이 넘쳐나지만 나는 그런 삶을 목표로 하지 않기로 했다. 적어도 내게 주어진 휴직 기간에는, 그리고 아기가 어릴 땐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기로 했다. 아이의 육체적 건강과 정서적 행복감을 채우는 걸 최우선으로 삼기로 했다. 그 외의 내 기준에 덜 중요한 일, 덜 중요하지만 내 에너지를 써야만 하는 일, 아이가 좀 더 자란 후에 해도 되는 일은 잠시 후순위로 미뤄 뒀다. 어차피 아이는 자라고, 백세 시대니까.


사실 한 아이를 건강하게 키워내는 것만으로도 엄마들은 이미 충분히 중요하고도 고난이도의 노동을 하고 있다. 아기가 아프지 않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게, 월령에 맞춰 정상적으로 자랄 수 있도록 돌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세상 직업 중 몇손가락 안에 드는 어려운 일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굳이 내 아이를 위한 것도 나의 행복을 위한 것도 아닌 단지 나를 '증명하기' 위한 부차적인 일들에 에너지를 쏟을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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