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도시를 떠날 때가 아닌가보다
최근 몇 달간 나는 난데없는 '시골병'을 앓고 있었다. 아이가 발달이 좀 느리다는 진단을 받고 관련 카페에서 한참 살던 시기였다. 아이를 데리고 시골 한달살이, 혹은 아예 이주를 해서 하루 종일 자연속에 뛰놀게 했더니 이상 증상도 사라지고 무발화 아이는 갑자기 말이 트이고, 운동 능력도 좋아졌다는 후기를 심심찮게 본 영향이었다. 아이 문제가 아니라도 맑은 공기, '코로나' 걱정이 상대적으로 적어 사람이 없는 산속에선 마스크 없이 자유롭게 산책을 할 수 있는 환경, 바쁜 생활 속 어쩔 수 없이 식사를 때우기 위해 먹는 인스턴트 대신 직접 재배한 혹은 오일장에서 사온 채소로 만든 건강한 식사들....나 역시 시골 생활을 하면 건강해지고 평온한 삶을 살 것만 같았다.
나이가 들면 사람은 자연을 동경하게 된다고 하던가, 30대 초반까지만 해도 나는 도시를 너무 사랑했다. 편리하고 깔끔한 시설에서 누리는 문명의 이기가 너무 좋았다. 산이 좋고 자연이 좋아 귀향을 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이를 좀 더 먹고 세파에 찌들려 살아서인지 자연이 좋고 풀 냄새가 그리워졌다. 더군다나 코로나 때문에 종일 집 혹은 정해진 곳만 왔다갔다하는 아기의 발달도 더 느려지는 것 같아 마음이 답답했다.
요즘 사람들이 많이들 도전한다는 '특정 지역 한달살기'를 계획하기도 했다. 후보지는 자연환경이 뛰어난 제주나 강릉 같은 곳들이었다. 만약 직장을 그만두면 남편이 육아휴직 중이기 때문에 복직 전에 온 가족이 한 달 정도는 살아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한달간 바닷가 근처에 살면서 아기와 함께 모래사장을 걷고 파도에 몸을 담그고 야트막한 산을 찾아 등산을 즐기고 싶었다. 저녁이 되면 시장에서 사 온 야채로 찌개랑 반찬을 만들어 건강한 밥을 해 먹고, 밤이 되면 쏟아져내릴 것 같은 별들을 보며 산책하고 싶었다.
하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생계를 때려친다는 건 이렇다할 '빽' 없는 소시민에겐 너무 많은 용기를 필요로 했다. 아쉬운대로 남은 연차를 최대한 써서 2주살이라도 해볼까 싶었다. 10월엔 공휴일이 많으니 얼추 연차를 잘 쓰면 2주 남짓의 시간이 날 것도 같았다. 물론 눈치가 좀 보이겠지만... 제주도까지 날아갈 용기가 안 생기는 날엔 가까운 양평이나 가평의 전원주택에서 머물면서 아이랑 아이 아빠는 집에 있고 나는 서울로 가끔씩 출퇴근을 할까 하는 무모한(?) 계획을 짜기도 했다. 어차피 근무 특성상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회사에 가면 되니까.
아무튼 그렇게 매일같이 에어비앤비 전원주택만 검색하고 있던 어느날, 남편이 주말에 벌초가 있어서 충북에 있는 시할머니 댁에 내려갔다 오겠다고 했다. 거리가 머니 나와 아기는 집에 있고 자신이 잠시 짬을 내서 다녀오겠다는 것이다. 시골병에 빠져있던 나는 평소답지 않게 시할머니댁 벌초에 따라가겠다고 선언했다. 어차피 매주 아이 발달을 위해 어디로든 나들이를 하고 있던 터라, 이왕 가는 것 온 가족이 같이 가서 1박 정도 아기에게 시골체험을 해주자고 제안했다. 안 될 이유가 없던 남편도 오케이했다.
아기는 이제 제법 커서 분유포트나 젖병도 필요없고, 밥에 곁들여 먹을 간단한 덮밥소스 같은 것만 챙겨가면 돼 돌전에 비해선 훨씬 나았다. 여전히 어른끼리의 외출에 비해선 많은 짐이지만 작년 이맘때 조부모상이 있어 아기를 데리고 지방에 내려가던 때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그때는 고작 1박을 다녀오는데도 28인치 캐리어를 꽉꽉 채우다 못해 짐가방을 두어개 더 챙겨가야 했다.
오전에 아이 센터 치료를 갔다 출발한 뒤 중간에 휴게소를 몇 번 들르니 저녁때가 다 돼서야 시할머니댁에 도착했다. 할머니는 평소엔 수도권에 있는 아들 집에서 거주하시기 때문에 평소 시골집은 거의 빈집 상태로 방치돼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냉장고에는 딱히 먹을 거리가 없었다. 당장 식구들이 먹을 저녁을 해야 하는데 난감했다. 마침 도착하기 전 마트에 들러 먹을 거리를 사 왔기에 망정이지. 남편이 고기를 굽고 작은아버님이 아기랑 놀아주는 동안 나는 냉장고를 탈탈털어 찌개를 끓였다. 남편이 냉장고를 뒤져 된장을 찾아냈다. 맛을 보니....아무맛도 나지 않았다. 별 수 없이 유통기한이 2년 지나 딱딱하게 굳은 미원과 설탕을 넣고 언제 뜯었는지 모를 간장과 다진마늘을 넣어 겨우겨우 찌개를 만들었다.
아기는 낯선 장소가 불편했는지 시종일관 칭얼댔다. 결국 저녁을 먹고 치운 뒤 남편과 아기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어릴적 시골에서 보던, 별이 가득한 밤하늘을 볼 수 있을까 기대하면서. 아쉽게도 날이 흐린 탓인지 별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우리 동네에서 보는 밤하늘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가로등이 하나도 없는 탓에 휴대폰 플래쉬에 의지해 앞으로 나아갔다. 차도와 인도의 구분이 없어 상당히 아슬아슬한 산책이었다.
지친몸을 이끌고 방으로 돌아왔다. 아기와 함께 잘 준비를 하는데 오랫동안 쓰지 않던 방이라 곳곳에 곰팡이가 심하게 들고 퀘퀘한 냄새도 심했다. 게다가 각종 짐이 어지럽게 쌓여 있어서 한참을 치우고서야 겨우 세 식구가 몸을 누일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 아기는 처음보는 공간이 새로워서 마구 수납장을 헤집고 먼지가 가득이 쌓인 물건들을 던지며 놀기 시작했다. 오래된 상자 하나를 입에 가져가려는 순간 "안 돼!"하고 뺏어서 제 자리에 두려는 순간 상자 안에 있던 말라비틀어진 벌레 사체가 이불 위에 뒹굴었다. "으아악!!!" 휴지로 재빨리 치워 버렸지만 불쾌감은 내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꾸역꾸역 잠자리에 들었지만 아기는 자리가 낯설어 잠에 도통 들지 못했다. 결국 새벽 서너시가 되어서야 잠에 들어 늦은 오전까지 늦잠을 자고 일어났다. 남편과 나는 집 안에 젊은이가 우리밖에 없기 때문에 먼저 일어나 아침을 준비했다. 다행히 어제 마트에서 사온 반찬과 고기가 있었기에 식사를 준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밭에서 따온 푸성귀를 무쳐서 반찬을 만들기도 했지만 조미료가 없어서인지 내 솜씨 부족인지 맛은 그닥이었다. 아침을 먹고 아기를 유모차에 태워 동네 산책을 나섰다. 논이 보였다. 논이네~ 그 옆에 밭이 보였다. 밭이네~ 길가에 꽃이 피었고 벌과 나비가 날아다녔다. 우와. 벌이랑 나비네~ 그리고 또 논이 보였다. 밭도 있었다. 논. 밭. 논. 밭..... 논이랑 밭밖에 없었다. 차도와 인도 구분도 없고 안전장치도 없어서 마냥 아이를 풀어놓기도 곤란했다. 결국 유모차를 끌고 구경시키는 수밖에 없었다. 아기가 맘껏 자연 속에서 뛰어노는 특별한 체험......대신 내 머릿속에는 장기하의 '아무 것도 없잖어'가 재생됐다.
그렇게 성묘와 친척 인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날의 녹록치 않았던 이틀간의 시골행 이후, 나는 더 이상 에어비앤비 전원주택이나 시골 한달살이를 검색하지 않게 됐다. 물론 체험용으로 만들어둔 전원주택은 우리가 묵었던 시골의 빈집보단 훨씬 쾌적하겠지만, 왜일까. 결국 시골에 살아도 '온 몸이 도시 생활에 익숙해질대로 익숙해진' 나에겐 딱히 즐겁지만은 않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내가 원하는 건 사실 도시에서 온 관광객들을 위해 만들어진, 뛰어놀기 좋도록 예쁘게 조성된 바닷가와 숲속 산책로, 전원 풍경을 적당하게 감상하고 즐길 수 있는 다분히 인공적인 공간들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것 없이 정말 삶의 터전으로서의 시골은 나의 상상과는 많이 다르다는 걸 새삼스럽게 실감했다.
비수도권, 시골을 비하하려는 것으로 읽힐까봐 걱정이 된다. 그보단 어딜 가나 '낙원'은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실제로 아이들의 교육이나 발달 때문에 시골행을 결심했으나 도시보다 부족한 치료 인프라, 의술, 보육시설, 체험공간으로 인해 결국 다시 도시로 올라온 사연도 제법 많았다. 막상 시골에서 느린아이를 키우는 분들은 '빅3' 명의를 만나기 어렵고 제대로 된 발달센터 하나 찾기 어려워 큰맘먹고 서울로의 이사를 결심하기도 한다.
어쨌거나 더이상 시골 한달살이를 찾아보지 않는 나는 우리 아파트 단지 옆에 있는 근린공원을 좀 더 사랑하게(?) 됐다. 인공적이지만 아이들이 뛰어놀고 어른들이 산책하기 편한 길, 쾌적한 시설, 무엇보다 도보 3분거리로 가깝다! 이곳에서도 아기는 매 계절 달라지는 나무와 풀과 꽃을 보고 길고양이과 산책나온 강아지들을 보며 자연을 배우고 있다. 어차피 세상에 태어난 지 2년도 안 된 아기는 모든 것이 다 새롭기 그지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