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식어가는데,마실 줄 몰라요
#6. 그녀의 마법주문
엄마에게 지겹게 듣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만큼 오래되진 않았지만 들을 때마다 기분 좋아지는 이야기,
바로 나의 탄생 스토리이다.
바야흐로 28년 전 새벽 2시, 진통이 시작되고 4시간 만에 작고 하얀 딸아이가 태어났다
산부인과 절차에 따라 아이가 간호사 손에 맡겨져 씻겨지고 새하얀 배냇저고리를 입고선 더 하얀 피부를 뿜어내며 엄마의 품에 전해졌다
그 순간, 창문 밖에서는 웅장한 소리와 함성들이 퍼져 나왔고
머나먼 전라남도 광주 이곳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행차하셨다고 한다.
내가 태어났던 그 순간은 광주 역사의 한 페이지에 살포시 얹어도 될 만큼의 이슈이긴 했을 것 같다
나의 탄생을 함께 축하해준 그분의 은혜에 따라 나도 천주교 세례명 하나는 가져볼 즘 하지만 안타깝게도 나는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인이다
물론 지금은 매주 냈던 헌금을 꼬박꼬박 나의 커피값으로 쓰고 있지만 마음 한편에 죄책감이 일어날 때마다 '주기도문'을 외운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를 시작으로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으로 마칠 때면 가벼운 마음이 드는 걸 보니 그분도 내 처지를 이해해주시는 것 같기도 하다
어쩃든, 엄마는
가느다란 두 팔로 나를 안으며 두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두 귀로 교황의 행차 소리를 듣고
가슴으로는 딸아이의 미래를 활기차게 점쳐보며 즐거운 상상을 했을 것이다
'이렇게 귀한 날에 태어난 아이가 앞으로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 삶을 살게 될는지,,,'하며 제2의 누군가를 떠올렸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느 자식이 다 그러하듯 나는 엄마의 바람대로 커드리질 못했다
적당한 사춘기를 보내고, 적당한 성적을 유지하며, 적당한 외모로 학창 시절을 보내고 내 이름 석자 한번 학교 정문 앞 플래카드에 걸리지 못하며 여전히 취업의 거대한 문 앞에 낙담하고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옆집 자식도 쉽게 열고 들어가는 회사문, 우리 집 자식은 회전문도 아닌데 들어가질 못하고 있다며 전화 너머로 우스갯소리를 하고 계실는지도 모르겠다
어느 하루는, 내가 공부하느라 지쳐 보였는지 "힘내, 넌 할 수 있어"와 같은 고리타분한 응원 대신
"네가 태어났을 때 요한 바오로 2세가 광주에 왔었어, 엄마는 다 알아"라며 주문을 건다
이렇게 앞 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로 나의 가슴에 단비를 내려주는데, 희한하게 그 소리를 듣는 순간 힘이 난다
겉으로는 "아휴, 또 그 이야기야? 그럼 나랑 똑같은 시간에 태어난 세상 아이들 모두 성공했겠네? 그거 다 미신이야"하면서 툴툴거리지만,
나라는 존재가 이 땅에 태어났는지도 모른 채 나의 운명을 까먹고 있을 하늘 저편 누군가에게 알려주고 싶다
'이젠 내 차례'라고 말이다
그나저나, 엄마는 이렇게 나를 위해 마법의 주문을 시도 때도 없이 외치고 다니는데
딸내미는 '아메리카노 한잔' 주문만 외치고 있으니 불효녀가 따로 없다
좋아하는 그와 데이트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예쁜 장소를 거닐 때면 엄마 생각이 난다
'우리 엄마는 이런 거 못 먹어 봤을 텐데'
'여기 엄마가 좋아할 만한 곳인데'
우심방은 그를 향하고 있는데 좌심방은 엄마를 향하고 있으니 하나밖에 없는 심장이 쿵쾅거리며 맥박이 빨리지는 듯하다
이런 심장을 가지고 있지만 나의 주민등록증 뒤편에 붙어있는 '장기기증' 스티커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는 힘이 될 거라 믿으며 엄마를 향해 뛰는 심장을 가만히 들어본다
24살의 꽃다운 나이에 아빠에게 시집와서 결혼식도 올리지 못한 채, 흔한 결혼반지 하나 없이 신혼을 시작했다. 그때는 정말 '사랑'하나만 보고 결혼했던 시절이었나 보다
나이, 키, 외모, 직업, 집안, 건강상태 등을 따지며 미혼자가 늘어난 요즘 시대에 태어났다면 우리 부모님은 그 어느 것 하나 충족되지 못한 채 골드미스, 골드미스터로 남아있을 것이다. 대신 이름 석자를 대한민국에 알리며 자신만의 싱글라이프를 즐기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두 분은 내 나이 5살, 동생이 3살이던 해에 결혼식을 올렸다
어릴 때에는 부모님의 결혼사진이 너무 이상해 보였다
왜 우리 남매가 부모님 결혼식 사진에 버젓이 찍혀있는지, 나는 그 사실을 친구들 앞에서 발표하고 이해하지 못한 친구들에게 수업 후 교실 뒤편에서 왜 설명해야 하는지, 학교에서는 왜 자꾸 그걸 숙제라고 내주는지, 모든 게 싫었다
그렇게 22년의 결혼생활을 유지한 채 일만 하느라 바쁜 아빠와 홀로 육아하느라 정신없는 엄마는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불과 몇 년 전에 이혼하셨다. 자식들 다 커서 무슨 이혼일까? 싶었지만 가족 넷이서 여행 한 번 가 본 적 없었다는 사실이 나로서는 두 분의 이혼에 대한 납득이었다.
그래서일까?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대화할 시간이 없어서 어색했던 아빠보다는 집안일과 온갖 잡다한 일들로 큰소리치는 일이 많았던 엄마 곁에 머물기로 했다. 어릴 때는 누군가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물어보면 의젓한 큰 딸 인양 "둘 다 좋아요"라고 대답하곤 했는데, 성인이 돼서 부모님이 이혼하고 나니 "엄마가 좋아요, 엄마랑 살게요"라며 그동안 숨겨왔던 진심을 털어놓게 되었다
사회생활 한 번 안 해보다가 고시생인 딸, 명문대 다니는 아들 뒷바라지해보겠다고 홀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엄마가 나에게 들려주는 '탄생 스토리'는 어쩌면 나를 위한 것만은 아니겠다 싶어진다
그녀 스스로 용기를 내고 강해지고자 하는 마법의 주문 아니었을까?
엄마에 대한 생각이 깊어지자 커피 맛이 쓰다. 별로 마시고 싶지 않은 걸 보니 원래의 내 모습으로 돌아온 듯싶다
"엄마, 오늘 일 끝내고 갈매기살 먹으러 가자. 나 지금 출발해. 엄마도 마무리하고 있어"
문자를 보낸 뒤, 답장도 확인하지 않고 가방을 챙겨 도서관을 나왔다
그 남자에게는 미안하지만 오늘은 나의 좌심방이 더 커져있다
때때로 '피는 커피보다 진하니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