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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입이 없는 나무입니다

- 눈과 귀는 밝지만 입은 무거워요. 그러니,,, 괜찮아요

by 생쥐양

어릴 적, 나의 유일한 여행은 외할머니가 계시는 시골집에 가는 거였다

외할아버지는 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돌아가셨는데, 집안의 큰 어른도 조그마한 시골집 문패도 외할아버지였지만 나에겐 그저 '외할머니 댁'에 가는 길로 기억되었다


내가 태어난 곳은 도시고, 줄곧 도시에서만 살았어도 시골이 좋았던 이유는

'그 나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좁고 구불구불하며 밤에 운전했다가는 논두렁이 옆으로 빠지기 쉬운 그 탈 많은 골목길을 지나고나면 어림잡아 100년은 넘은 커다란 나무가 나를 반겨주었다

거기서부터 나의 차멀미는 서서히 멈춰진다

2시간이 넘게 엄마 무릎에 얼굴을 파묻히고 한 손에 오징어 다리를 물고 뜯어도 멈춰지지 않던 나의 차멀미가 그렇게 없어지는 걸 보면 '그 나무'는 나에겐 살아숨쉬는 그 무언가였다


사실 처음부터 그 나무가 좋았던 건 아니었다

"거시기 있잖아요, 거기서 목매달아 죽었다네 그랴" 옆집에 사시는 할머니가 오셔서 전해주는 이야기를 몰래 듣게 되었다.

아니, 어린 꼬마가 있는데도 나에 대한 배려없이 가족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전하는 옆집 할머니는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 보다는 '그저 만담꾼' 같아 보였다.

손으로는 메주를 엮어 묶으면서 입으로는 마을 이야기를 하는 모습이, 내 눈에는 그렇게 비춰졌던 것 같다

나는 그 분 덕분에, 한 동안 '그 나무'를 피해서 동네아이들과 놀고 밤에는 혼자서 '칠성이네(동네 유명 슈퍼)'에 과자를 사러 가지도 않았다


하지만 우리의 인연은 그렇게 타인에 의해 끝날 사이가 아니었나보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 시절 친했던 친구로부터 괴롭힘을 당했다

그 당시, 사회적으로 '왕따'라는 단어도 존재 하지 않았고 선생님들조차 "그래도 친구끼리 친하게 지내야지"하며 나를 다독이는 분위기라서 부모님께도 알리지 못했다

'큰 딸의 소명' 이라고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린 나이였음에도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내 스스로 해결해 보려 했었다

그 어린 꼬맹이의 해결책이란, 친구에게 더 잘하고 더 친해지도록 노력하는 것이였다

그러나 내가 100원짜리 떡볶이를 사줘도, 천원 짜리 삼색펜을 살 수 있는 아이라서 나의 노력은 별 효과가 없었다


그렇게 여름방학이 다가오고, 무거운 마음으로 나의 유일한 여행길에 올랐을 때 '그 나무'가 그렇게 커다랗게 보였던 적이 없었다

나는 살며시 기대보았다

등이 딱딱할 줄 알았는데, 바닥이 차가울지 알았는데,,,

몸의 감각은 느껴지지 않았고 마음 속에 쌓였던 서러움이 터져나와서 심장만 뜨겁게 느껴졌다

'그 나무'에서 돌아가신 분이 '욕쟁이 할머니'였는지, 아님 내가 원래 욕을 잘 하는 아이였던지 알 수는 없지만

내 입에서 수 많은 험한 말들이 튀어나왔다


심한 욕을 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욕에 '화' 보다 '웃음'이 새어나온다는 것을...

고작 11살 짜리 아이에게 '화'가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웃음'은 또 얼마나 많겠는가

분명 나의 눈물을 보았고, 나의 욕을 들었을 '그 나무' 였지만 그는 그저 나의 웃음을 기억하는 것 같았다

그는 눈과 귀는 밝지만 입은 무거웠기에, 그 후로도 나는 친구 흉을 마음껏 볼 수 있었지만 어느 누구도 듣지 못했다


공황장애, 우울증, 마음 속 불치병을 앓고 있는 그 누군가에게 나는 자신있게 말 할 수 있다

우리 집 앞 마당에, 뒷 산에 '입이 없는 나무'가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임금니 귀는 당나귀 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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