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커피는 식어가는데, 마실 줄 몰라요

#1. 커피셔틀

by 생쥐양

까톡

"언니, 도서관 앞 커피가게 오픈! 10시 고고"

고시생 3년 차인 나와 같이 밥 먹어주는 후배는 오늘도 나를 부른다


“나 커피 안 마시는 거 모르니? 잠깐 머리도 식힐 겸 바람 쐬러 나온거야

후딱 들어가자. 오늘 들을 강의 장난 아니다. 에휴“

“오늘부터 3일 간 오픈기념 아메리카노 공짜래, 우리 오빠가 좋아하잖아. 언니꺼 받아서 오빠 주려구. 같이 가줄거지? 응?”

애교 많고 능청스러운 후배 옆구리에 내 팔이 감긴 채 나는 삼색 슬리퍼를 질질 끌고 까페로 향했다.

‘커피마을? 무슨 이름이 이렇게 촌스러워.’

화려하고 세련된 분위기의 요즘 까페와는 다른 그 곳은 이미 공짜 커피를 마시겠다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30분은 족히 기다려야겠는데?”

“어, 오빠. 지금 커피 사 가려구. 연주 언니랑, 으힛, 뭐가 미안해. 이따가”


‘하, 내 나이 스물여섯에 이젠 커피셔틀까지 하냐.’

주머니 속 영어단어수첩을 꺼내어 중얼중얼 외워본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내 자신이 너무 한심하고 불쌍해 보였기에, 하버드생 버금가는 ‘시간 관리 능력자’가 된 것 마냥 열심히 시간을 떼우는 중이다


힐끗 보니, 이제 내 앞에 남은 사람은 단 두 명, 고지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고 다짐해본다. 내일부턴 ‘혼밥’에 도전해보겠노라고!

커피셔틀 때문이 아니라 나의 합격을 위해서 후배와는 거리를 둬야 할 것 같다

그 간 후배와의 사이에서 서운했고 불편했던 감정들을 모으며 나 혼자 이별 준비를 하고 있는데,

“주문하시겠어요?” 낯설지만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

“저희도 아메리카노 두 잔 주세요, 1인당 한 잔 맞죠?” 후배는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 주문도 시원하게 잘했다.

내 시력은 렌즈를 끼고도 0.3,

아침에 일어나 안경을 쓰지 않으면 벽에 걸린 시계도 보지 못해 엄마에게 물어보곤 한다.


그런데 보였다.

검고 짙은 안경테 너머로 흐르는 땀방울, 한겨울인데도 목폴라를 입지 않아 보이는 목젖, 앞치마 뒤로 삐죽 튀어나온 셔츠, 카키색 크록스를 빛내주는 야광 지비츠들.


주문한 커피를 받아 나오는데,

“여기 바리스타 진짜 잘생겼네. 그래도 우리 오빠만큼은 아니다. 그치 언니?”

"니네 오빠 내 스타일 아닌데."

취향이 다른 우리는 앞으로 적이 되진 않을 것 같다.


하지만 난 나의 촌스러운 삼색 슬리퍼를 보며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다.

고시생과 바리스타는 어울려보이지도 않을뿐더러, 나는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세상에서 제일 아까운 돈이 커피 값이고, 제일 아까운 시간이 까페에서 수다를 떠는 것이기에 오늘 내가 본 남자는 세상에서 제일 나와 안 맞는 남자임에 틀림없다


그런데도 내일 또 오고 싶은 마음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미 옷과 신발을 고르고 있는 내 모습은 누구란 말인가?

아무래도 오늘 공부는 틀린 모양이다

얼른 집에 가서 옷장이나 뒤져 봐야겠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입이 없는 나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