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아침 도서관에 도착하면 진기한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잠 못 잔 얼굴에 부스스한 머리지만
손에는 명품 커피를 들고 있던 나의 동기, 고시생들
골목길마다 '별의 여신' 스타벅스가 나를 보고 미소 지어도
나는 그녀의 유혹에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았는데
그들은 매일 그녀와 함께 아침을 시작하고 있다니,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제 매일 아침, 커피를 마신다
세계 최고의 커피 체인점도 넘지 못한 커. 알. 못(커피를 알지 못하는) 고객인 나를
사로잡은 한 남자가 내려주는 커피는 무슨 맛인지는 구별할 수 없지만
'향' 만큼은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나는 커피를 '맛'이 아닌 '향'으로 마시는 고시생이다
다음 생에는 고시생 말고 조향사가 돼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그 남자의 가게 안을 들어가려는데, 오늘따라 첫 손님이고 싶지 않았다
사실은
멀리서 지켜보고 싶었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보고 싶었다
하나라도 그에 대해 더 알고 싶었다
보면 볼수록 궁금한 건 넘쳐나는데, 이 많은 문제를 언제 다 풀 수 있을지 걱정이다
그래도 오늘은 조금 더 보려 한다
내가 매일 같은 시간에 도서관에 도착하는 것처럼
그 남자는 매일 같은 시간에 가게 문을 연다
문을 열고 제일 먼저 재즈음악을 틀고, 청소를 시작한다
사실 나는 클래식과 재즈를 구별할 수 없지만 그가 음악에 맞춰 고개를 까딱거리는 장단과 몸짓이
'재즈스러웠기에' 그의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재즈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불의는 참지만, 궁금한 건 못 참는 나이기에
언젠간 그에게 물어볼 것이다 "재즈를 좋아하시나 봐요?"라고 말이다
휴, 한 문제를 풀 방법이 마련되었다
세상에는 담배 중독, 게임중독, 술 중독, 도박중독 등 우리 삶을 파괴하는 것들이 있다지만
요즘 내 삶을 침투하는 '커피 중독'은 그야말로 독하기 짝이 없다
아하, 나를 이렇게 만든 그 무언가를 알아냈다
도대체 커피 쿠폰은 누가 만들었단 말인가?
도장 10개를 채우면 아메리카노 1잔이 무료라는데,
왜 나는 벌써 2번의 무료 커피를 마시고도, 여전히 도장을 찍기 위해 그곳에 출근한단 말인가?
커피 쿠폰이 없었더라면 나는 아마 그렇게 매일, 자주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비자 심리를 꿰뚫어 보는 마케터는 아마도 연애 중이거나 누군가를 열렬히 사랑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커피값이 세상에서 제일 아깝다는 나에게 이 많은 커피를 마시게끔 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커피 쿠폰이건 유명 마케터 건 핑곗거리를 찾아보려 하지만
심장까지 뛰게 할 순 없지 않겠는가?
오늘의 수사는 대실패다...
터벅터벅 도서관으로 걸어오는데, 후배는 놀란 토끼 얼굴을 하고는 묻는다
"언니, 요새 너무 열공하는 거 아니야? 내년 시험에 합격하겠는데?"
앞가림하기도 벅찬데, 사랑까지 하려다 보니 요새 내 얼굴이 말이 아니게 푸석하다
이렇게 눈치 없는 후배가 있어서 한 편으로는 참 다행이다 싶다
몇 년 간 연애세포를 강제로 메말릴만큼 철저히 나를 감시했는데
움찔하던 잎사귀 하나가 얼굴을 빼꼼하고 내밀더니 온 마음에 라일락 꽃이 가득 피어있어서
공부가 손에 들어오질 않는다
온통 머릿속에는 '그 바리스타' 생각뿐이다
돌아서서 내 위치를 확인하고 취직해서 잘 나가는 친구들을 염탐하고 과거 남자 친구가 새 여자 친구와 행복하게 노는 모습을 상상하며 나 자신을 다잡아보려 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그렇게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와 나를 흔든다
아침에 사 온 커피가 점점 식어간다
내 마음도 내 머릿속도 온통 복잡하다
이럴 바엔, 고백해서 차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 같다
쪽팔려서 그 남자도 그 가게도, 커피도 찾지 않게 될 테니 말이다
나는 그와 무엇을 하고 싶은 걸까?
열렬한 사랑을 나누며 나의 남자가 돼주길 바라는 걸까?
아니면 내가 하는 공부에 방해되지 않을 만큼의 적당한 친구가 돼주길 바라는 걸까?
남자 친구를 원하는지 친구를 원하는지 결정해야 될 것 같다
식은 커피인데도 커피 향이 달달하다
나의 마음은 이렇게 정해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