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부모님의 사랑을 가리켜 '내리사랑'이라고 부른다.
나 역시 부모님이 손주들을 바라보는 눈빛과 말투, 행동이 내 눈앞에 펼쳐지는 걸 바라볼 때 그들이 얼마나 많은 사랑을 가슴에 품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는 것 같다. 눈에는 꿀이 그득하고 입안에는 사탕이 한 움큼 들어있으며 볼과 볼이 자석처럼 착 달라붙어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내 자식에게 그들이 온몸으로 사랑한다고 아우성치는데 내 마음 한 구석에는 '나 어릴 때도 저렇게 사랑해 줬을까?'라는 의심이 비집고 들어온다. 하지만 입 밖으로 내뱉진 못한다. 사실이 아닐까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건 말 이상의 무언가가 녹아져 있는 문장이기 때문이다.
질투? 아니다. 내 나이 40에 할 수 없는 유치한 행동이다 그건.
원망? 그것도 아니다. 우리 부모님 세대가 다 그랬듯, 자식들에게 삼시세끼 배불리 먹게 해주고 싶던 목표 하나로 아빠도 엄마도 열심히 살던 모습을 보고 자랐으니까.
가끔은 살다가 내가 풀지 못하는 문제하나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다. 신의 게시처럼 그냥 우연히 나에게만 떨어지는 아름다운 문제. 가슴언저리에서 맴도는 혀 끝의 쓰디쓴 말의 맛을 느끼며 꿀꺽 삼켜버린다.
제기랄,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다. 그 말은 뱉어졌다. 그것도 엄마와 마주하며 밥을 먹는 도중에 말이다.
"엄마, 나 어릴 때도 그렇게 예뻐해 줬어?"
엄마는, 입안에 쌀알의 단맛을 느꼈을 거다. 아주 깊게 어금니로 짓눌렀을 테니까.
하지만 대답은 없다.
용기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것인가 보다. 나는 한 번 더 묻는다. 아름다운 문제는 그 답을 알아야 더 빛이 나는 법이니까 말이다.
두 번의 질문으로 엄마도 알게 되었다. 딸인 내가 얼마나 이걸 갈구하고 있는지.
그리고 그녀는 진득한 밥의 단맛을 느끼며 이렇게 말한다.
"너 어릴 때 진짜 예뻤지."
내가 예쁜지 안 예쁜지를 물어본 건 아닌데...
희한하게 진짜라고 말해주니, 진짜 좋다.
사랑의 수를 셀 수 없어서 그 양을 볼 수 없어서 우린 이렇게 말하나 보다. '내리사랑'이라고.
적어도 오늘하루의 답은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