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부반장 여자애가 자기 생일에 철우를 초대했다.
딱히 철우가 좋아서는 아니었을 거다.
전학 온 지 2주가 지난 친구를 위한 배려였을 거라 생각되었다.
친절한 그 애는 귀여운 데다 공부도 잘하는 딱 부반장스러운 친구였다.
집 근처에 살아서 하교할 때마다 철우와 서로 거리를 두고
같이 오곤 했는데 제법 으리으리한 2층 단독주택에 살았다.
그 아이에 비한다면 철우는 반 지하에 세 들어 사는 어려운 형편의 아이였다.
부모님은 일을 하시느라 언제나 집을 비워두셨고
철우도 저녁 끼니를 스스로 때워야 하는 상황이 지긋해지기 시작한 나이였다.
그럴 때 저녁 식사 시간 친구의 생일 초대는 반가울 수밖에 없는 소식이다.
초대를 받고 가겠다는 약속까지 해 두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장애물이 급히 떠올랐다.
생일선물이었다.
당연히 철우에게는 부반장에게 생일 선물을 사줄 돈이 없었다.
용돈을 달라고 조르기도 어려운 형편, 그간 모아 놓은 저금통을 털고
형에게 300원을 빌렸지만 손에 쥔 돈은 천 원을 조금 넘을 뿐이었다.
약속 시간도 다가오고 마냥 넉 놓고 있을 수도 없었던 철우는 일단 동네 문방구로 향했다.
주머니는 넉넉하지 않았지만 이것저것 오래간만에 쇼핑을 하는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가격표를 확인하는 순간에는 여지없이 풀이 죽어버리는 감정을 버리지 못했다.
여자 아이들이 쓰는 지갑 하나도 3천 원이 넘는데
내 돈으로는 남학생들이나 가지고 놀 만한 딱지나 구슬 종류밖에는 없었다.
그냥 나갈까 하는 순간 눈에 띄는 물건이 있었다.
영롱하게 빛나는 투명한 유리로 된 연필꽂이였다.
이리저리 빛을 비추어보니 무지개 색이 아름답게 반사되어 시선을 사로잡았다.
부반장 여자애에게 어울릴 만한 선물이라 여겨졌다.
그러나 뒤집어 본 밑바닥에 써 붙여 있는 가격표에는 5천 원이라는 거금이 적혀 있었다.
철우는 조심스럽게 연필꽂이를 내려놓으려고 했다.
아쉬운 마음으로 문방구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는데
파리채를 겨드랑이에 꽂은 채 조용히 잠들어 계셨다.
아마 철우가 들어오는 소리도 듣지 못했던 것 같았다.
철우는 그 순간 멈춰 선 채로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생각의 끈을 붙잡기도 전에 문방구를 뛰쳐나왔다.
그리고 뒤를 돌아보지도 않은 채 있는 힘껏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기에는 자신 있는터라 금세 문방구가 보이지 않는 골목을 돌아 한참을 달려갔다.
아무 소리도 나질 않는 걸 보니 문방구 할아버지는 철우가 자신의 가게에서
물건을 가지고 달아난 이 엄청난 사건을 모르고 계시는 게 분명하다.
철우는 연필꽂이를 들고 부반장 친구의 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부반장이 선물을 받고 기뻐할 모습에 마음에 꽃이 피는 듯했다.
그러나 문방구에서 멀어질수록 알 수 없는 무거운 마음으로 발걸음을 어둡게 만들었다.
이렇게 가야만 하는 건가?
생각해보니 선물은 포장도 하지 못했다.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와 내 이름도 없으니 자신이 선물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면 어떡하나 염려도 생겼다.
부반장 집 현관 앞에 도착했다.
아이들의 시끄러운 소리가 문 밖으로 새어 나왔다. 벌써 많은 친구들이 모여 있는 듯했다.
초인종을 누르면 철우는 선물을 주어야 한다.
그리고 도둑질을 완성하게 될 것이다.
그때 현관 앞에서 철우는 왜 주춤하게 되었는지 시간이 흐른 지금도 잘 모른다.
그러나 초인종을 누르기 직전, 철우는 발걸음을 돌려 문방구로 향했다.
다행히 문방구 할아버지는 여전히 졸고 계셨다.
연필꽂이는 제 자리에 가져다 두고 종이 딱지 두 장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형과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신나게 딱지 치기를 했다.
즐겁게 놀다 보면 마음에 다른 생각은 들지 않을 거라 생각했던 것 같다.
철우는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도 이따금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마침 여자 친구의 생일날, 제법 근사한 목걸이를 선물로 사들고 예약한 식당을 향했다.
식사를 마친 후 선물을 내민 철우는 여자 친구에게서 감탄과 감사의 말을 쉴 새 없이 들었다.
그러나 철우는 누구에게든 선물을 할 때마다 그날의 일이 루틴처럼 머릿속에서 튀어나온다.
그리고 자기 자신만 아는 비밀에 혼자 웃음이 나올 때도 부끄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었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도둑질은 하지 않았다.
그날 돌린 발걸음이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울 것 까지는 없을지라도
어린 날 자신의 선택이 지금 자신에게 어떻게든 영향을 끼쳤을 거라 생각해보면
아찔한 마음일 들 때도 있다. 혹시 아나? 레미제라블의 장발장이 현실이 되어 있을지?
순간의 선택이 10년을 좌우합니다.
그 시절 tv만 틀면 나오던 멘트가 유독 머리에서 잊히질 않는다.
어릴 적 너무 가난 한 형편에 친구 생일 초대를 못 간 적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때의 기억을 떠올려 추억의 소설을 써 봤습니다. 도둑질을 한 적은 없었지만 친구 생일 선물을 사들고 가고 싶어서 아버지 주머니를 뒤진 적은 있었네요. 아무것도 건지지 못해 결국 도둑놈은 되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부모님도 얼마나 어려운 형편이을까 이제야 죄송한 마음이 잔잔히 밀려옵니다.
전학을 하도 많이 다녀서 친구들과 제대로 사귈 겨를이 없었다는 게 오히려 득이 되었던 것 같아요. 아무튼 저는 힘들었지만 추억도 많이 남긴 유년 생활을 보냈습니다. 가난이 딱히 슬프지만은 않았다는 기억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재밌게 읽어 주셨길 바라며, 여유가 된다면 종종 소설 한 편씩 써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