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이 동네 커피숍에서 일한 지 두 달이 지났다.
지인의 소개로 일하게 된 터라 커피에 대해 알지도 못했던 민경은 신세계를 경험하고 있다. 한 번은 손님이 우유 크림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하트를 화살표냐고 묻는 바람에 사장님이 옆에서 주저앉아 흐느껴 웃으셨던 적도 있었다. 커피가 검은 액체에 카페인만 들어 있으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던 민경에게 커피숍 알바는 녹록지 않은 일이다. 모양이야 한 모금 마시면 모두 일그러지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민경은 늘지 않는 라떼 모양 만들기에 크게 개의치 않아하면서도 조금씩 그럴싸한 커피를 만들어가고 있다.
민경에게 신경 쓰이는 일은 따로 있었다. 처음 일 할 때부터 이틀에 한 번 정도 찾아오는 젊은 남성이었다. 점심시간이 한 참 지난 시간인지라 매장 안이 한산해서 기억에 남을 수밖에 없다. 남성은 항상 오늘의 커피만 주문했다. 2500원에 드립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기는 하지만 매번 그렇게 자기 취향도 없이 저렴한 커피만 찾는 남성이 신경에 거슬린다. 수수하게 차려 입고 창가 자리에 앉아 30분 정도 커피를 마시고는 빈 컵을 카운터에 반납한 후 "수고하세요."라는 인사를 빠지지도 않고 남기는 그다.
돌아서서 문을 열고 나서는 남성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사장님이 한 마디 건네신다.
"인사나 하지 뭘 그리 쳐다보고 있어?"
"아. 네......"
"왜? 저 남자가 맘에 드나 보네?"
"아. 아. 아니요? 제가 왜요?"
"아닌데 뭘 그렇게 멍한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어? 손님한테 인사나 할 것이지."
쏘아붙이는 것 같지만 사장님은 유쾌하고 농담을 잘하시는 정말 좋은 분이다. 이번에도 민경에게 뭔가 놀릴 거리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하셨는지 꼬치꼬치 캐묻는다. 왠지 또 사장님께 말려들 것 같은 민경은 괜히 분주한 척 딴청을 부린다.
며칠 뒤, 남성은 평소보다 조금 이른 시간에 커피숍으로 들어왔다. 민경은 오늘도 오늘의 커피를 주문할 거라 예상하며 평소와 다름없는 마음으로 카운터에 서서 그의 어깨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만요."
오늘은 평소와 달리 뜸을 들이는 그가 낯설게 느껴진다. 민경은 눈을 치켜뜨고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진한 외모는 아니지만 편안함이 느껴지는 표정이 부담스럽지가 않다. 그 순간 시간 차로 젊은 여성이 따라 들어오더니 남성의 옆에 나란히 섰다.
"뭐 드실래요?"
남성이 여성에게 건네는 말이다. 민경은 묘한 기분이다. 생각의 루틴을 깨고 갑자기 훅 들어온 두 사람의 관계가 복잡하게 느껴진다. 두 사람을 빠르게 훑어보는 눈동자의 흔들림이 느껴질 정도다.
'뭐지? 이 남자는?'
딱히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도 없었는데 본인을 속인 것 같은 불쾌함이 밀려온다.
'여자가 있었어?'
머릿속에서 3류 연애소설 속의 유치한 한마디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래서 다들 그런 드라마에 정신줄 놓고 보는 건가 싶다. 괜한 섭섭함이 밀려오는 걸 보니 사장님의 농담이 괜한 말은 아니었나 보다.
"저는 바닐라 라떼 마실게요."
"바닐라 라떼 한 잔이랑 오늘의 커피 한 잔이요."
오늘의 커피를 제외한 다른 음료를 시키는 건 처음이었다. 그것도 다른 여성을 위해 시키다니...... 얼마나 특별한 여성일까 관계의 깊이에 대한 궁금증이 머리 끝에서 떠나질 않는다.
대충 만들었는데 실수로 너무 이쁜 하트가 나와버렸다. '이렇게 힘 빼고 아무 생각 없이 스팀우유를 부으면 되는 거였군.' 새로운 사실을 알았지만 그게 오늘이라는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 표면에 그려진 완벽한 하트가 신경에 거슬렸는데 역시 여자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어머 이거 봐요. 너무 예쁘다. 저 사진 찍어도 되죠?"
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한 건 했다고 생각하니 민경은 자신의 발등에 뭐라도 내리치고 싶은 기분이 든다. 하는 일마다 망치는 똥 손이지만 남 좋은 일은 참 잘도 찾아서 채워 넣는 민경이다. 두 사람이 앉은 창가의 햇살이 오늘따라 더욱 화사해 보인다. '그래 하늘도 내 편인적은 한 번도 없었어.'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은 묘한 긴장감 속에서 밝은 분위기를 유지했다. 남성은 커피의 찌꺼기만 남은 빈 잔을 카운터에 올려 두고는 언제나 그렇듯 상냥하게 인사를 하고 나갔다.
"안녕히 가세 효."
급하게 내뱉은 인사의 끝에 살짝 쉰 목소리가 나와버렸다. 남성은 목례를 남겼는데 여성은 신경이 쓰였는지 힐끔 돌아보고는 휑하니 나가버렸다. '내 최고의 작품을 마셔놓고 너는 인사도 안 하냐?'라는 마음의 소리가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지 살며시 혀를 날름거렸다.
섭섭한 마음을 지우지 못했나 보다. 뒤늦게 출근하신 사장님이 '표정이 왜 그러냐'고 민경에게 물으신다. 별일 아니라고 대답했지만 민경은 그 날 자신에게 별일이 생겼음을 깨달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도 씁쓸함이 지워지지 않는 걸 보니 정말 그 남성이 마음에 들었나 보다. 민경은 그 날 너무 늦게 깨달은 마음속 진심이 야속하게 느껴졌다.
두 번째 써 본 단편 소설입니다.
달달한 커피를 좋아하지 않는데 어느 날 갑자기 마시고 싶어 졌습니다. 그리고 바리스타가 추천해준 바닐라 라떼를 마셨습니다. 정말 달콤했습니다. 혀 끝에 퍼지는 바닐라 향이 참 좋았습니다. 입 안에 남은 크림과 커피의 씁쓸한 맛이 묘하게 어울렸습니다. 달콤 쌉쌀한 맛의 커피, 정 반대의 두 가지 맛이 하나가 되어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바닐라 라떼를 마시며 처음 만나는 남녀의 설레는 마음이 떠올랐습니다. 가장 행복한 이야기가 뭔가 생각해 봤는데 결국 달달한 사랑 이야기 같네요. 그리고 적어 내려갔습니다.
한 편에 끝내려 했는데 단순한 이야기도 이렇게 저렇게 생각이 붙다 보니 늘어지는 감이 있어서 상, 하로 나누었습니다. 지루한 글이 너무 늘어지면 실례가 될 것 같았습니다. 별로 재밌지도 않은 글을 오래 기다리게 하기도 죄송스럽습니다. 마무리는 금방 올리겠습니다.
결말은 아직 제 머릿속에 있습니다. 궁금하시면 세이 '예~~~~'
ps. 제가 요즘 제정신이 아닙니다.
바닐라 라떼 후편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