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닐라 라떼 전편 보기
며칠 뒤 남성은 여느 때와 비슷한 시간에 매장 안으로 들어왔다. 민경은 혹시나 하고 남성의 등 뒤를 살펴보지만 오늘은 혼자인 듯 보였다. '역시 오늘의 커피를 시키겠지?' 마음의 준비하고 그의 앞에 섰다. 그러나 그의 주문을 예상을 빗나갔다.
"바닐라 라떼 한 잔 주세요."
"네? 바닐라 라떼요?"
"네."
'어라 이 남자 수수한 얼굴로 훅 치고 들어오는 설렘이 있네. 아니지? 그때 그 여자를 생각하며 라떼를 주문하는 건가?' 복잡한 생각이 민경의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 계산을 하고 라떼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남자는 자리를 찾지 않고 멀뚱히 서서 구경을 하고 있다.
"앉아서 기다리세요. 제가 가져다 드릴게요."
"아니에요. 기다렸다가 가지고 갈게요."
'쳐다보고 있으면 부담스러운데.' 커피를 내리는 손에 살며시 떨림이 느껴진다. 이제 제법 능숙하게 커피를 만들지만 오늘은 처음 만들 때의 그 기분으로 커피 위에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부었다.
"우와. 정말 멋있어요. 그렇게 만드는 거였구나."
"처음 보세요?"
"네, 지난번에 일행이 마시는 걸 봤는데 너무 예뻐서 어떻게 만드는지 궁금했거든요. 맛도 궁금하고. 달달한 커피는 잘 안 마시는데 오늘은 조금 당기네요."
"여기 있습니다."
"고마워요. 잘 마실게요."
남성은 친절한 인사와 함께 커피를 들고 늘 앉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 민경은 힐끔 계산대 너머로 남성의 표정을 살폈다. 스마트폰으로 뭔가를 바쁘게 검색하더니 라떼를 마시고는 입맛을 다신다. 표정이 궁금하던 순간, 고개를 돌려 카운터를 쳐다보는 남성의 시선을 느끼고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하는 수 없이 민경은 남성에게 자신의 정수리를 보여주고 말았다.
'이런, 오늘 머리 안 감았는데......'
사장님이 들어오셨다. 민경에게는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더 큰 위기가 될지 모르겠다. 가방과 재킷을 정리하고 카운터에 나란히 서신 사장님이 창가에 앉은 남성을 보고 또 장난을 치신다.
"둘이 무슨 일 있었어? 왜 이렇게 분위기가 달달해?"
"아니 왜 또 그러세요. 아무 일도 없었어요."
잠시 후 남자는 테이블을 정리하고 빈 잔을 카운터로 가지고 왔다. 연륜이 넘치는 사장님은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말을 건다.
"항상 이 시간에 오시네요. 커피는 괜찮으세요?"
"네. 오늘 처음으로 바닐라 라떼를 먹어 봤는데 정말 맛있네요. 잘 먹었습니다."
발을 옮기려던 남성은 민경을 향해 몸을 돌렸다. 그리고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 나간다.
"제가 여기 건물 뒤 편에 있는 편의점 매니저를 하고 있거든요. 오후 근무 시간 전에 종종 들리는데 커피가 항상 맛있어요. 잘 마셨습니다."
"어머나, 그래요? 가까운 이웃이었네. 왜 몰랐지? 편의점 갈 일 있으면 들릴게요."
사장님의 대답이 끝나자마자 민경은 돌아서려는 남성을 향해 용기를 내어 질문을 던졌다.
"지난번에는 여자분이랑 오셨던데......"
어디서 이런 용기가 생겼는지 스스로도 놀라울 따름이다. 끝을 흐린 질문 속에는 그 여자와의 관계에 대한 미묘한 감정이 담겨있었다. 민경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남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아, 그 여자분이요? 우리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하기로 한 대학생인데요. 면접 겸 커피 한 잔 사준 거예요. 요즘에는 아르바이트하는 분들도 잘 챙겨야 해서요."
사장님이 민경을 힐끔 쳐다보며 대화 중간에 끼어들었다.
"맞아요. 맞아. 요즘 알바들은 자기 맘대로라니까? 그런데 여자 친구는 없고?"
사장님은 민경이 가장 궁금해하는 질문까지 대신해주셨다. 방금 본인을 향한 사장님의 힐난은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민경은 동공이 확장되고 심장마저 멈춰 선 기분으로 귀를 기울였다. 세상에서 가장 긴 3초, 그리고 남성은 조심스럽게 대답을 이어갔다.
"부끄럽게 뭘 그런 걸 물어보시고...... 아직 없어요. 좋은 사람 있으면 사장님이 소개 좀 시켜 주세요."
남성의 소박한 미소를 보고 민경은 함박웃음으로 대답했다. 이 평화로운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사장님은 묵직한 돌 직구를 날렸다.
"그러시구나. 잘 됐네. 여기 얘가 있잖아요. 일은 못해도 참 착해. 아무리 구박해도 웃기만 해."
"아, 사장님!!!"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가 나온 민경은 빨갛게 달아 오른 자신의 얼굴을 느꼈는지 웃음 반, 울음 반의 표정으로 사장님을 노려 봤다.
"아이고 알았어 그냥 해 본 말이야. 착하다고 해 줬는데 화를 내면 어떡하니?"
과하게 반응한 것 같아 민망한 마음에 어색한 미소가 자연스럽게 번졌다. 남성도 부끄러운 표정이다. 옅은 미소와 함께 달래듯 분위기를 바꾸려 애쓰는 마음이 보인다.
"어휴, 제게 너무 과분하신 걸요?"
민경은 이미 이성의 끊을 놓아 버린 듯하다. 필터링을 거치지 않은 말이 쏟아져 나온다.
"아니 왜요? 혹시 제가 마음에 안 드시나요?"
"아니요. 저는 좋은데 그쪽이......"
"네?"
"아, 죄송합니다..... 제가 근무 시간이 돼서.... 다음에 또 뵐게요. 그럼 수고하세요."
결국에는 민경보다 남성이 더 당황한 모습으로 서둘러 돌아갔다. 카운터의 두 사람은 한 참을 멍한 표정으로 남성의 사라진 뒷모습에 시선을 고정하고 서있었다. 그리고 적막을 깨는 사장님의 영업 지시에 비로소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됐어. 일이나 해. 내가 내일 심부름시킬 테니까 편의점이나 갔다 와."
우울감이 밀려올 때 가장 행복했던, 혹은 행복할만한 일을 상상해 봅니다.
응원 팀이 우승할 때? 대학 합격? 아이가 태어났을 때?
내 마음속에 떠오른 하나의 생각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사랑할 때'였습니다.
제가 경험한 일을 그려낸 이야기는 아닙니다.
라떼를 마시며 상상으로 그려낸 단편 소설입니다.
아, 물론 그런 일이 전혀 없었다는 건 아닙니다.
딱히 잘난 외모는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애정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모든 사랑이 끝까지 아름다울 수는 없더라도
사랑의 시작은 그 어떤 행복감보다 큽니다.
행복한 이야기를 써 보고 싶었습니다.
즐거우셨기를 바랍니다.
많은 청춘들이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사랑을 배우고 사랑을 동경해야 할 때,
사랑을 포기하고 살아내는 삶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세상은 청춘들에게 너무 먼 미래까지 걱정하게 합니다.
이런 세상을 사는 건 그들의 잘못이 아닌데 말입니다.
세상을 변화시킬 용기가 없는 무능한 어른이지만
조금씩 기성세대의 유행어를 남발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살아야지!", "최선을 다해!"
너무 열심히 살지 마세요.
그저 오늘 하루 행복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사랑을 꿈꾸고, 사랑을 즐기며,
사랑으로 많은 것을 견디어 내는 청춘들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것보다 아름다운 모습은 없다고 믿습니다.
'사랑해서 사랑을 잃는 것이 전혀 사랑하지 않는 것보다 낫다.'
영국의 시인 알프레드 테니슨의 말로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