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이건 신의 저주야!!"
언덕 위에서 소리 지르는 남자를 발견한 클로이는 조심스럽게 그에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그가 힘든 일 때문에 격정적인 감정을 털어낼 거라 기대했지만
그는 절망에 빠진 눈 빛으로 싸늘하게 외면하고 있었다.
"괜찮아요. 저는 당신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클로이는 괜스레 걱정되는 마음이 들어 온전히 이해할 수 없음에도 이해할 수 있다고 대답해버렸다.
"음... 그게 진심입니까?"
"네, 그럼요. 우리는 누구나 그렇게 분노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다면 제 이야기를 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이죠. 신은 우리에게 서로를 돌아보게 하셨으니까요."
머뭇 거리는 듯하던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천천히 풀어 나갔다.
듣지 않아도 괜찮을만한 자신의 어린 시절 이야기부터 가족의 이야기까지
그의 삶을 다 들어야 마침내 그가 말한 저주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대화 중간 그는 본론을 이야기하기에 앞서 충격적인 고백을 먼저 뱉어 냈다.
"사실 저는 특별한 능력이 있습니다."
"네? 그게 뭔데요?"
"저는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있어요."
"말도 안 돼요. 사람에게 그런 능력이 있을 수 없어요."
"맞습니다. 엄밀히 말하면 사람을 살리는 능력이라 부를 수도 없습니다."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하신 거죠?"
"제가 사람을 살리기 위해서는 다른 한 명을 죽여야 하거든요."
클로이는 충격적인 남성의 고백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갑자기 그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고백이 거짓이어도 무섭지만, 사실이라면 더욱 무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클로이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남성은 자신의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저는 이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려 했습니다. 지금껏 한 번도 사용하지 않았어요.
부모님이 돌아가실 때도 편안하게 가시는 길을 눈물로 보내 드렸지요.
그러나 지금은 정말 어찌할 수가 없네요."
더 이상 듣기 어려운 이야기임에도 불쾌한 호기심이 클로이를 자극했다.
"무슨 일이지요? 어찌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제 아들이, 하나밖에 없는 제 아들이 죽어가고 있어요.
아들은 언덕 너머의 병원에 입원해 있습니다.
의사는 오늘을 넘기기 어렵다는 이야기를 해주더군요.
너무 괴롭습니다. 아이를 살리고 싶은데,
아이 대신 누군가의 희생이 필요합니다.
저는 어떡해야 하나요?"
클로이는 차분하게 그에게 조언을 남겼다.
"아이가 죽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같을 것입니다.
그러나 삶과 죽음은 분명히 신의 영역입니다.
누군가의 삶을 이어가기 위해 타인의 희생을 강요할 수는 없는 것이지요.
지금은 차분하게 아드님 곁에 있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행동이 아닐까요?"
클로이는 남성의 말을 믿지 않았다.
가족의 아픔이 그에게 충격을 주었고 헛소리가 나오게 만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럼에도 진지하게 듣고 대답해주다 보면 그의 감정이 조금은 누그러질 것이라 기대했다.
"하지만 내 아들이 이렇게 어린 나이에 죽음 앞에 서야 하는 이유를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도 그래요. 아드님이 어린 나이에 죽음을 맞이하는 상황이 억울하고 이해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의 계획은 인간의 영역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 불가항력적인 상황 속에서도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 생각해요."
남성은 그의 말을 듣고는 한결 편해진 모습으로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렇겠지요? 듣고보니 마음이 한 결 평온해지는 것 같네요.
덕분에 이제 편안한 마음으로 아들 곁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클로이는 자신이 남성을 위로해 주었다는 안도감과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실의에 빠진 그에게 조금 더 선의를 베풀고 싶어 졌다.
"함께 가시죠. 제가 아드님이 계신 병원까지 함께 동행하겠습니다."
"정말 감사드려요. 끝까지 함께 해 주신다니 이보다 감사할 수가 없네요."
짧은 거리지만 두 사람은 참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병원에 가까워질 무렵,
클로이는 무심결에 궁금했던 질문 하나를 건넸다.
"그런데 본인에게 그런 능력이 있다면 사형을 앞둔 사형수나
다른 시한부 판정을 받은 사람을 대신 희생하게 할 수는 없는 건가요?"
"아, 그건 안돼요. 대신 죽을 사람은 살아날 사람의 생애를 아는 사람만이 선택받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의 가족이나 아이의 친한 친구 같은 경우만 되겠지요."
"그렇군요. 그럼 더욱 쉽지 않겠네요."
불현듯 스치는 생각에 질문 하나가 더해졌다.
"그런데......"
"네, 말씀하세요."
"조금 전에 저에게 가족들의 이야기를 다 하셨잖아요?"
"네, 그랬지요."
"그렇다면 저도 대신 죽을 대상이 되는 겁니까?"
"왜요? 겁이 나시나요?"
"아니요. 저처럼 그냥 이야기를 듣기만 했을 뿐, 아무 연고도 없는 사람이 대신 죽을 수 있나 해서요."
남성은 선뜻 대답하지 않더니 살며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쳐다본 후 이렇게 답을 이어갔다.
"그건 오늘 밤 아이의 생이 끊길 때가 되면 알게 되겠지요."
그리고 남성은 무던한 표정으로 돌아보지도 않은 채 병원으로 들어가 버렸다.
생명의 가치는 누구나 똑같다고 하지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극악무도한 사람의 생명이 인류애를 남긴 사람과 같은 무게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답을 구하기 어려운 대답 앞에서 짧은 이야기를 담아 보았습니다.
이따끔 내 목숨이 하찮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누군가 정말 살고 싶어 하는 사람과 생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고민해 본 적이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답은 뻔했습니다.
죽음이 내 눈앞에 펼쳐질 때 내 모습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될 것입니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가장 솔직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약간은 호러블 한 내용이지만, 삶과 죽음에 대한 우리의 욕망을 짧게 표현해 보았습니다.
주인공의 이름 클로이는 애정 하는 배우 아만다 사이프리드 주연의 영화
'클로이'에서 가져왔지만 소설의 내용과는 아무 상관없습니다.
그냥 겁나 좋아하는 할리우드 스타라 주인공으로 삼았습니다.
이럴 땐 사람의 가치가 누구에게나 동일할 수 없음을 살포시 깨닫습니다.
지구 반대편의 한 남성이 자신을 이리도 좋아하는지 모른 채
그녀는 이름 없는 소설 속의 주인공으로 끌려왔습니다.
모르지요. 어쩌면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작가의 트릭에 속아
아만다 사이프리드가 위험에 빠졌음을 직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보자면 이 소설 속 아버지의 결정은 이미 정해진 것 같습니다.
그의 능력이 거짓이든, 진실이든 상관없이 말입니다.
오늘도 우리는 소중한 누군가를 마음에 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최선을 다한다 하더라도 누구나 행복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도리어 내 모습으로 인해 상처를 받는 이들이 많습니다.
때론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가족일 수도, 사랑하는 사람일 수도, 혹은 나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그 누구도 이 세상 사람 모두를 사랑할 수는 없겠지요?
사랑 앞에서 겸손해지는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한없이 나를 낮출 때 비로소 누군가를 살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