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일주일 전 어머니는 소설가가 되겠다는 아들을 위해
적금을 깨고 최신형 노트북을 보내주셨다.
마땅치 않아하시는 아버지와 다르게 어머니는 아들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해주신다.
근처 전자제품 업체에서 글쓰기 좋은 노트북을 달라고 하셨다는데
쓸데없이 크고 화려한 노트북이 집으로 배송되었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아쉬운 적금을 깨셨다는 이야기에
아들의 마음에도 실금이 그어지는 기분이다.
글만 쓰는 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불필요한 고사양 노트북이다.
살짝 바가지를 쓰신 것 같아 고민이 되면서도 새 것이 주는 기쁨은 남다르다.
지난 칠순 때 변변한 생신 선물도 못 해드린 자식으로서
반짝반짝 빛나는 노트북을 보고 있지니 가슴 한쪽이 아린다.
집에서 두고 보기 뭐해서 들쳐 메고 동네 카페로 향했다.
제법 최신형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들어온 남자
드립 커피 한 잔을 주문한 후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켠다.
시급 9천 원에 커피와 브런치를 만들다 보면 저런 손님이 부러울 때가 있다.
편안한 공간에서 타인의 접대를 받으며 여유 있는 시간을 허락받을 수 있는 삶,
항상 느끼지만 정말 부러운 삶이다.
그가 부럽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진하게 커피를 내렸다.
그의 하루가 조금은 씁쓸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며칠 전 결혼 20주년이라고 아내가 통장에 50만 원을 넣어 주었다.
매달 5만 원씩 모아 둔 돈으로 100만 원이 생겼다는데
여행 가기에는 부족하니 사이좋게 나눠서 필요한 게 있으면 사자고 한다.
나는 괜찮으니 필요한데 쓰라고 해도 요지 부동 돌려받으려 하지 않는다.
고맙다는 말이 나오질 않는다.
나는 아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왠지 나 자신을 더욱 비참하게 만드는 숫자 50,
그냥 식사나 하자는 나의 제안이 부끄러울 뿐이다.
막상 없던 돈이 생겼는데 사고 싶은 것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일단 커피 한 잔이나 근사하게 마셔보기로 했다.
평소에 눈에 띄던 집 근처 커피숍으로 향했다.
오늘은 가격표 상관없이 마시고 싶은 걸로 마실 테다.
무언가 글을 써 내려가는 것 같더니
신문 기사를 끄적이고 있다.
일을 하러 온 건지 더운 날씨에 에어컨이나 쏘이러 온 건지 모르겠다.
요즘 같은 시대에 저렇게 여유로운 사람들은 어떤 하루를 보내려나 궁금해진다.
코인이나 주식으로 대박을 치고 인생의 하프타임을 휴식으로 온전히 채우고 있는 건 아닌지,
아니면 부모님이 물려주신 부동산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있어서
여유롭게 흐르는 시간을 즐기는가 싶기도 하고......
부러움은 시기심으로 변한다.
그래 오늘은 당신,
내 하루를 의기소침하게 만드는 당신에게 책임을 묻겠다.
글을 쓴다고 큰 소리를 친 후 1년이 흘렀다.
회사를 그만두고 컴퓨터 앞에 앉아 이런저런 소설을 적어 보았지만
대부분 공모전은 낙방이었고 나의 글에 관심을 보여주는 출판사는 어디에도 없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나는 지금 삶에 대한 이유를 하나씩 적어보고 있다.
가족들은 아무도 나에게 무어라 하질 않는다.
처음엔 편안했는데 이제는 그 상황이 머릿속을 잡고 흔든다.
내가 실패했다고 욕이라도 해 주면 좀 더 나아지려나?
아내는 혹여나 내가 상심하고 포기할까 봐 눈치를 보고 있다.
착한 사람과 결혼했다는 자부심은 무너진 지 오래다.
아내의 안타까운 눈빛은 사랑이라기보다 연민으로 다가온다.
차라리 악처였다면 부부싸움이라도 하고 집을 나가기라도 했을 텐데......
소크라테스도 악처를 만나 사유의 깊이를 더하지 않았는가!
친구들은 아내 이야기를 할 때마다 다 가진 놈이라고 나를 놀리곤 했다.
'여보게 친구 나는 지금 너의 성공을 갖고 싶다고.'
케냐 AA에 얼음을 담고 그가 앉은자리에 가져다주었다.
비교적 상냥한 표정으로 감사를 표하지만 그는 알까?
저 커피 한 알을 생산하기 위해 아프리카의 어린아이들이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세상은 참 공정하지 않다.
누구에게는 편안한 휴식이 자유롭게 제공되지만
세상 어딘가에서는 뙤약볕에서 쉴 새 없이 일을 해야만 하루 먹을 음식을 구하는 아이들이 있다.
5만 원 조금 넘는 하루 일당을 벌기 위해 일하고 있는 내 신세도 팍팍함이 묻어 난다.
조금 있으면 점심시간인데 나의 식단은 항상 그렇듯 편의점 메뉴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유쾌하지 않은 시간이다.
월급을 모아 일주일에 한 번 치킨에 맥주 한 잔 할 수 있다는 기대로 살아갈 뿐이다.
주말이여 어서 오기를......
인터넷을 뒤적이다 후원을 요청하는 광고를 열어 보았다.
매월 3만 원이면 해마다 40명의 어린이를 영양실조에서 구할 수 있다고 한다.
커피 한 잔에 샌드위치 먹고 49만 원이 남았다.
자동이체를 해 두면 16개월 동안 나는 640명의 어린이를
영양실조에서 구할 수 있다는 산술적 계산이 나온다.
그래 커피 한 잔 마셨으니 나를 위한 하루는 보냈고
근사한 노트북도 생겼으니 나는 어디서든지 글을 쓸 수 있다.
어차피 망한 인생이라 생각했던 요즘,
삶의 방향이라도 바꿔보기로 하자.
나에게 주어진 돈으로 16개월의 시간을 벌어 보기로 한다.
그동안 살아서 글을 써 보는 거다.
글은 망해도 아이들은 구했으니 보람찬 시간 아니겠는가?
그러고도 만원이 남네? 이번 주에 한 번 더 커피를 마실 수 있겠다.
너무 쓰다. 다음에는 캐러멜 마끼아또를 마셔야지.
한 시간 남짓 조용한 구석의 테이블에서 시간을 보낸 남성은
커피가 조금 남은 잔을 카운터에 밀어 넣고는 수고하시라는 인사와 함께 카페 문을 나섰다.
너무 쓰게 내렸나 싶어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처음 들어왔을 때는 부러운 모습이었는데
하릴없이 보낸 시간을 감상하고 있자니 불쌍해 보이기도 한다.
홀로 마시는 커피 한 잔이 외롭게 느껴진다.
카페 주인도 아니고 아르바이트하는 입장에서
다시 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지만
또다시 찾아온다면 달달한 커피를 주문했으면 좋겠다.
그의 삶이 어떠하든지 간에 외롭지는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만 빼고 세상 모두 다 잘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상대적 박탈감이라고 하지요.
신문에 오르내리는 부동산, 주식, 여타의 투자로 인한 대박의 소식은
내 삶에 대해 진지하게 묻게 만듭니다.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가?
왜인지 결혼한 이후로 내 삶에 대한 자신감이 내리막을 걷고 있는 기분입니다.
딱히 문제가 많은 삶도 아니고 그렇다고 사업에 실패한 인생도 아닌데 말입니다.
인생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믿고 살면서도 중년이라는 시간을 거스르는 동안
나는 남들과 비교하는데 프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보이는 모습은 내 삶의 1%나 담고 있을까 싶습니다.
진짜 나의 삶, 행복, 고민, 불만, 기대, 희망 같은 것들은 내 모습을 아무리 둘러봐도
쉽게 알아챌 수 없습니다. 나 또한 그런데 다른 이들의 모습은 더욱 알기 어렵습니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박수받을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엉망이어도 괜찮고, 가진 것이 없어도 괜찮고, 혼자여도 괜찮으니
그저 살아내는 용기에 손뼉 쳐 줄 수 있는 세상이기를 기대합니다.
나에게도,
당신에게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