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지금은 모든 에너지가 원자력과 태양열에 의존하고 있지만 한 때는 나무와 석유로 화력을 일으키고 운동 에너지로 전환하던 시대가 있었어요."
서기 2999년, 나는 지금 작은 돔으로 지어진 교실에 모여 아이들에게 오래전 지구의 생태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 대 전쟁 이후 지구의 대부분이 불타버렸고, 산소가 사라지기 전 얼라이브 존이라 불리는 생존실에 들어간 소수의 선택받은 이들만 살아남았다. 이곳에서 나는 아이들에게 지구의 역사를 가르치면서 연구원으로 참여하고 있다.
인류가 마지막으로 벌였던 전쟁은 처참한 폐허만을 남기고 모든 생명을 앗아 갔다. 전쟁은 인류를 위협하는 전염병의 근원지를 태워버리기 위한 불순한 의도에서 시작되었다. 그 작은 위협이 전 세계에 숨겨져 있던 모든 무기 체계를 가동시켰다. 살아남기 위한 전쟁은 의도치 않게 지구라는 거대한 무기를 터뜨리고 말았다. 태평양 연안을 중심으로 대 지진이 일어남과 동시에 전 세계 화산대가 연쇄 폭발을 일으켰다. 지구는 3년 넘게 불타올랐고 화산재로 뒤덮인 대기는 빠르게 오염되었다. 오존층이 파괴되고 산소 농도가 떨어져 사람이 살 수 없는 환경으로 변했다. 사막화가 진행되면서 바다까지 말라버렸고 지구는 화성처럼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되었다.
전쟁의 파국을 예견하던 몇몇 국가에서 얼라이브 존을 개발하여 극소수의 사람들을 이주시켰고 수 만 명의 선택받은 소수만이 인류라는 이름으로 생존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지구를 파괴한 원자력 에너지로 산소를 공급하며 그곳에서 정수된 물을 공급받아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자원이라 불리는 것은 허허벌판으로 변해버린 지구와 여전히 빛나고 있는 태양 에너지, 그리고 생존을 위해 싸워나가는 소수의 인류뿐이다. 말라버린 바다는 깊은 협곡으로 변했고 얼라이브 존을 제외한 그 어느 곳에서도 생명의 가능성을 찾을 수 없었다.
한정된 자원에서 삶을 이어나가는 것 자체가 투쟁이었다. 권력에 대한 증오나 인류 역사에 대한 비판보다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한 방식을 연구하고 노력하는 사람들만이 남았다. 살아남은 이들에게 더 이상의 싸움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살아남았다는 자체가 선택받은 이들에게 분쟁은 사치이자 금기로 여겨졌다.
인류라는 이름을 이어가기 위해서 할 수 있는 한 모든 체제를 바꿔야 했다. 모든 물자를 공평하게 나누어야 하며 한 사람의 생명도 버릴 수 없는 인적 자원이 되었다. 노동력 자체도 그러하지만 모든 것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능력은 소중한 자원이 되었다. 그렇게 고도로 발전된 과학 기술과 빈약한 자원이 주는 원시적인 삶이 뒤섞인 혼란한 세상이 만들어졌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 투쟁은 그 끝을 모른 채 수 백 년 동안 이어지고 있다.
지금은 서기 2999년, 지구는 새로운 밀레니엄을 앞두고 있다. 더불어 인류는 얼라이브 존에서의 삶에 적응하면서 그 영역을 점차 넓혀나갔다. 인구수를 조절하면서 생존에 필요한 여러 가지 수단을 만들어 냈고 느리지만 아주 조금씩 삶의 영역을 개척해 나갔다. 그러나 여전히 지구의 대부분은 황폐한 폐허만 남은 채 생명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아무리 후대에 지식과 기술을 전달한다 할 지라도 그 능력을 피워낼 자원이 생산되지 않는 한 과거의 아름다운 지구는 꿈같은 이야기일 뿐이다.
인류가 쌓아 놓은 방대한 서적들도 데이터로 된 자료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타버렸고 몇 가지 이야기들만 구전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이들은 인류의 생존을 위해 특별한 교육을 받는다. 과학 기술 중심으로 학습을 받으며 멈춰버린 지구를 살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지식이 전달된다. 하지만 생존과 관련이 적은 인문학이나 철학은 대게 잊히거나 대 전쟁 초기에 사라져 버렸다.
탐험대는 얼라이브 존을 떠나 지구 곳곳을 탐험한다. 특별한 전자파 반응이 보이거나 생명의 흔적이 보이면 베이스캠프를 차리고 발굴 작업에 들어간다. 그러나 한정된 에너지와 물과 식량이 떨어지기 전에 돌아와야 한다. 여름에는 대기 온도가 70도에 다다르고 겨울에는 반대로 영하 70도에 이르기 때문에 탐험대의 탐험 기간은 봄과 가을에만 떠날 수 있다.
봄과 가을 탐험대가 떠나고 돌아오는 계절은 모두에게 작은 희망이 부풀어 오르는 기간이다. 영상으로 보았던 과거 지구의 봄과 가을이 너무 아름답기도 했거니와 가끔씩 새로운 물건을 찾아냈다는 보고가 들어오면 모두 그 물건의 용도와 사용 가능성을 저울질하며 작은 희망을 피워 나갔다.
이번 탐험대는 제법 중요한 지형을 발견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지구 대 폭발 당시 화산이 폭발한 지역에 마그마로 순식간에 뒤덮인 몇몇 건물이 형태가 보존된 채로 발견되었다. 발굴 작업을 통해 당시 생활 도구 몇 점을 수거했다.
사람의 화석 또한 발굴되었는데 어른으로 보이는 유골이 어린아이를 안고 있는 형태의 화석이 보고되었다. 아마도 부모가 아이를 안고 용암에 파 묻힌 게 아닌가 의심해 본다. 지금과는 달리 그 당시에는 모성애라는 것이 있어서 생존이 아닌 사랑이라는 감정으로 혈통을 보호하려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한다. 아마 이 화석의 아이도 그렇게 보호받은 것이 아닌가 싶다.
화석을 발굴하는 도중, 두 사람 품 안에서 반쯤 타버린 문서 한 권이 발견되었다. 왜 두 사람이 책을 품에 안았는지는 모르겠지만 중요한 문서로 보여 본부로 수거한 뒤 문서의 복구 작업에 들어갔다. 문서는 매우 중요한 자료로서 인류의 미래를 위한 핵심 자원으로 분류된다. 지구의 대부분이 불타면서 문서로 된 자원은 거의 남지 않았다. 당시 생존했던 이들의 지식을 구전으로 이해해야 했던 우리는 조금씩 그 지식이 변형되거나 오류를 범하기도 한다. 새로운 환경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생명이 존재하던 시대를 오래전 신화 속 이야기처럼 이해하게 되었고 지금은 우리만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적용해서 살고 있다.
긴급히 정보 분석팀이 만들어졌다. 나와 함께 네 명의 전문 연구원이 모집되었고 복원 기술을 통한 해독 작업에 들어갔다. 문서의 내용을 100% 해독하진 못했지만 책의 제목이 '성냥팔이 소녀'임을 알아냈다. 우리가 가진 자료를 통해 성냥은 열 에너지를 내는 아주 오래된 도구로 확인되었다. 성냥팔이 소녀는 이 물건을 재화의 수단으로 사용하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성냥으로 열 에너지를 얻으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성냥은 추위를 견디기 어려운 매우 극소량의 에너지로 결국 소녀는 얼어 죽고 말았다는 결론으로 분석을 마쳤다.
분석된 내용을 토대로 토론이 열렸다. A연구원이 문제점을 지적한다.
"저는 단순한 에너지 부족에 대한 이야기가 문서로 기록이 되었는지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이게 기록으로 보존 될 만큼 중요한 이야기일까요?"
"제가 보기엔 어린아이가 보호받지 못하고 추위를 견디어 내야 했던 당시 계급 사회에 대한 비판 의식이 담긴 문서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연구원 B의 의견이다. 연구원 C는 다른 의견을 보탠다.
"문제는 왜 이 문서를 두 사람이 남기려고 했는가입니다. 소중한 문서라는 의미일 텐데 그 핵심 코드를 알 수가 없네요."
연구팀장은 연구원들의 의견을 존중하는 듯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의견을 더한다.
"아무튼 대 전쟁 이전에도 사람들은 생존에 어려움이 많았음을 알 수 있을 것 같군요."
"어쩌면 우리는 지금 인류 역사상 사람이 살아가기에 가장 좋은 세상에서 살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네요."
문서의 내용과 토론에 깊이 빠져들었던 나는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무심결에 뱉어내고 말았다. 잠시 정적이 흐르는 동안 섣부른 의견이 아니었나 의심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럴지도 모르겠네요."
연구팀장의 동의는 긴 침묵을 끊어냈다. 연구원들은 옅은 미소를 띠기도 하고 다른 의견을 말하기도 했지만 전체적으로 내 의견에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그럴 만도 하다. 모두의 생명이 평등하고 소중한 시대에서 아주 작은 과거의 흔적만 발견해도 모두가 이토록 기뻐하는 세상이 이 전에 과연 존재했을까? 과거 인류의 삶에 대한 문서를 발견하면 할수록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렇다. 우리는 지금 성냥보다 더 큰 에너지를 생산하고 생존을 위한 기초 식량까지 만들어 공평하게 분배하고 있다. 추위와 더위를 막아주는 얼라이브 존은 성냥팔이 소녀에게 없던 안전한 거주 환경이다. 어쩌면 우리는 지금의 환경이 21세기 대 전쟁 이전의 지구보다 더 나은 생활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연구원 B가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소녀가 죽어가는 것을 그저 방관하고 있었을까요? 성냥을 사주지 않는 이유는 에너지로서 그만한 가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할 지라도 아이가 죽고 나서야 애도를 하는 이들의 행동을 쉽게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어쩌면 야만의 시대였을지도 모르겠네요. 사람들은 결국 그렇게 적자생존의 시대를 방관하다가 대 전쟁의 시대로 이끌고 갔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는 토론의 마지막까지 적극적으로 의견을 보탰다. 우리는 문서를 통해 한 사람의 생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리고 우리가 사는 시대에 대한 믿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희망을 발견했다. 이제 기나긴 겨울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봄이 되면 우리는 다시 탐험에 나설 것이다. 지구의 중력이 미약하게나마 남아 있는 한 지구는 다시 생명을 피워 내리라 믿고 있다. 희망이 있는 한 탐험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땅 어딘가에서 꺼지지 않은 생명의 불씨를 찾을 때까지......
지금까지 몇 편의 단편소설을 써봤습니다. 그간 써 놓은 게 아까워서 브런치 북으로 내 볼까 해서 조금씩 생각날 때마다 이런저런 내용으로 소설을 적어두었습니다. 이번엔 평범한 내용의 SF 소설을 써보려고 썼다 지우 다를 반복하면서 이야기 하나를 완성했습니다. 디스토피아의 지구를 표현하는 소설이었죠.
지루한 이야기지만 나름 이런저런 의미를 담아 보았습니다. 환경, 생명, 인류애와 평화 같은 의미들을 복합적으로 그려보았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생각이 여러 번 바뀌는 감정을 경험했습니다. 과연 미래는 살만한 세상일지, 디스토피아의 세상일지...... 역시 소설은 결론을 내리는 것이 가장 어려운 것 같습니다.
조금씩 내용이 길어지면서 흐름이 벗어기도 했습니다. 새로운 시도는 항상 어렵습니다. 하지만 소설은 문장력보다 상상력이 더 큰 힘을 발휘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 같은 아마추어에게 더 매력이 당기는 것 같네요. 써 두고는 여러 차례 글의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처음 써 두었던 내용은 온데간데없고 새로운 글 하나가 만들어졌습니다. 초고는 이렇게 완전히 새로운 글로 바뀌었습니다.
헤밍웨이가 이런 기분이었을까요? 아무튼 대 작가의 마음을 아주 조금이라도 공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히 성공한 글쓰기였다 생각하렵니다. 지루하지만 재밌게 읽어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름다운 이 땅의 미래를 꿈꾸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