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이제 막 초등학교에 들어간 막내딸 혜원이는 어린이집을 다닐 때보다 신경 쓰이는 일이 많다. 스스로 하는 일이 늘어날 것만 같았는데 학교 준비물, 숙제를 함께 챙겨야하고 행사가 있는 날이면 선생님 못지않게 학부모 또한 긴장감이 들긴 마찬가지다.
드디어 혜원이의 첫 번째 운동회가 열리는 날이다.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친구들과 수다를 떨다가도 엄마가 딴청을 한다 싶으면 학부모석으로 달려와 안긴다. 아직 영락없는 어린 아이다. 초등학교는 이러면 안된다고 얼른 반 친구들에게 가라고 했더니 섭섭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그래도 금새 친구들과 히히덕 거리며 떠드는 모습에 마음이 놓인다. 혜원이 반의 달리기가 시작되었다. 네 명씩 짝을 지어 달리고 1등은 손목에 도장을 찍어준다. 나 때도 그랬던 것 같은데...... 손목에 진하게 새겨진 1등 도장을 자랑스럽게 보여주고 싶어서 하루 종을 허리춤에 손목을 올리고 다녔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렇게 중학교 시절 나의 전쟁 같은 달리기 추억으로 살며시 빠져들었다.
나는 달리기를 곧 잘하는 아이였다. 언제나 반에서 일 등이었고 나보다 앞 서 달리는 아이는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중학교에 진학하자 학교 육상부가 만들어졌고 나는 내 의사와 상관없이 떠밀려 육상부에 들어가 있었다. 학년에서 가장 잘 달리기 때문이었다. 매일 방과 후 한두 시간씩 남아서 육상부 훈련을 했는데 재미도 있었지만 학교 이름이 붙은 유니폼을 입고 운동장을 돌고 있으면, 하교하는 친구들이 쳐다봐주는 기분 또한 남달랐다.
그러나 나에게 도전은 새로운 좌절을 맛보게 해 주었다. 한 번도 진적이 없었던 나는 구청 대회에서 5위를 하고 결선에 오르지 못했고 예선 한 경기만에 집으로 돌아와야 했다. 신생팀이라 친구, 선, 후배 모두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가을 대회 때는 종목을 바꿔 400미터에 출전해 준우승을 했지만 서울 대표를 뽑는 대회에서는 예선 탈락하고 말았다. 항상 앞에서 달리던 나에게 선수로써 맞이하는 시합은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앞에 달리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봐야 했고 기록보다 내 등수를 확인하는 일이 먼저가 되었다.
3학년이 되자 우리는 학교의 기대주가 되었다. 목표는 전국체전 출전, 그러나 중학교 입학 후 키도 몸도 자라지 않으면서 기록이 거의 늘지 않았다. 그렇게 절망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다부지고 키가 큰 친구 한 명이 전학을 왔다. 다른 학교에서 운동신경이 좋은 학생을 특기생으로 데려온 것이다. 전학생의 몸이 보여주는 것처럼 그 친구는 단 번에 우리 육상부의 에이스가 되었고 혼자 전국체전 출전권까지 따냈다. 나는 팀의 주장이었지만 그렇게 잊혀갔다. 나는 조금씩 달리기를 멈췄고 그 친구는 육상부가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다. 그리고 나는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하면서 운동과는 담을 쌓았다.
그렇게 달리기는 내 삶에서 사라졌다. 그 이후로 달려본 기억이 없다. 버스를 잡거나 횡단보도의 끊어져 가는 신호를 붙잡기 위해 달려본 기억이 있지만 빠르게 전력을 다해 달려본 일이 없다. 달리기는 이제 내 삶과는 관계없는 멀고 먼 과거의 흔적으로 남았다. 그렇게 씁쓸한 추억에서 빠져나오기도 전에 혜원이가 달려와 내 손을 잡아당긴다.
"엄마, 얼른 일어나."
"아니 왜 그래?"
"엄마 나와서 달리래. 아니 달려야 해."
학부모 계주 시합인가 보다. 반 별로 한 명씩 학부모가 출전해서 학년 별 대결을 한다고 한다. 나는 씁쓸한 추억에 빠져 우렁찬 마이크 소리도 듣지 못하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런데 내 딸 혜원이는 엄마가 중학교 때 달리기를 잘했다는 아빠의 부풀린 이야기를 믿고 친구들에게 우리 엄마가 나갈 거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쳤던 것 같다. 우리 반 대표는 이미 내가 아니면 안 되었다.
뻘 쭘하게 나가 학년 숫자가 새겨진 등 번호를 입고 대기 순 번에 앉았다. 반 순서로 달리니 마지막 반인 내가 마지막 주자가 되었다. 한 때는 달리기에 자신 있었던 시절이 있었는데 지금 나는 달리지 않는 삶을 살고 있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나의 달리기는 중 3 때의 기억에서 멈춰서 있다. 결국 선수들의 대결이 아닌 학부모 달리기 시합까지 밀려 나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불안하고 떨린다.
'내가 못 달리면 어떡하지? 혜원이가 실망하면 어떻게 하지? 아니 1학년 아이들 모두가 실망할 텐데.'
"탕!"
출발을 알리는 소리와 함께 여섯 명의 학부모가 달리기 시작했다. 엉키고 넘어지기도 하고 멋지게 달리는 학부모도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나와 함께 달릴 경쟁자들을 살펴봤다. 세상에 아빠가 한 분 나와 계시네. 이거 반칙 아닌가? 다른 분들도 모두 키가 크고 나보다 빨라 보였다. 주눅이 들었다. 혜원이를 보니 열심히 1학년 학부모를 응원하고 있다. 미안하다는 말이 마음에서 터져 나왔다. 어쩌면 다행이랄까? 업치락 뒤치락하던 결과는 내 앞 주자가 넘어지는 바람에 1학년이 꼴등으로 밀려났고 마지막으로 나에게 바턴이 넘어왔다.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몸을 이끌었다. 처음에는 몸이 풀리지 않은 듯 상체가 뒤로 젖혀지는 기분이 들었지만 이윽고 리듬을 타기 시작한 다리는 기차 바퀴가 움직이듯 패턴을 찾아갔다. 조금씩 상체가 앞으로 숙여지면서 속도가 붙기 시작했다. 30미터즘 달렸을까? 이젠 내 의지가 아닌 내 몸이 나를 당기고 있다. 속도가 제어되지 않는 기분으로 한 명씩 제치기 시작했다. 그렇게 3등까지 차지하자 1학년 벤치는 모두 일어나서 함성을 외쳤다. 마지막 주자라 라인 끝까지 조금 더 달릴 수 있다. 앞에 두 명의 등 번호가 보인다. 4학년, 5학년, 조금씩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 때마다 이상 야릇한 쾌감이 두 뺨을 스쳐 지나간다.
'역전해 보이겠어!'
달린다. 달린다. 또 달린다. 내 다리는 아직 달릴 수 있다. 피니쉬 직전, 4학년 대표 아빠를 역전하고 2위로 골인했다. 1등은 못했지만 1학년 아이들이 달려들어 나를 에워쌌다. 학부모 계주의 주인공은 1등을 한 5학년이 아닌 1학년, 그중에서도 나, 혜원이의 엄마였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20년 동안 봉인해 둔 두 다리를 풀어낸 것처럼 반가운 친구를 만난 기분이 들었다. 혜원이는 엄마가 걱정되었는지 알 수 없는 위로를 더한다.
"엄마. 괜찮아. 우리 2등도 잘한 거야 엄마 대단했어."
'알아. 알아. 엄마도 알아. 엄마 대단했어. 그때 그 시절도, 그리고 지금도.'
엄마가 그렇습니다.
가정에서는 2등 같은 꼴찌로 살고 있지는 않나요?
사내아이들은 조금만 크면 엄마 알기를 우습게 알지요.
눈에 띄는 일이 아니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일하는 엄마들이 많다고 하지만 여전히 꿈을 접고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 많습니다.
꿈을 좇아 일하는 엄마는 더더욱 찾기 힘들지요.
일하는 엄마들 조차 아이 학원비 보태기 위해 꿈과 상관없는 일에 매진해야 하니까요.
아내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또 엄마로서 살아가는 모든 이웃들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써 보았습니다.
엄마는 대단한 존재입니다. 그 삶은 더욱 그렇고요.
타인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존재,
엄마라는 이름 밖에는 떠오르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