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강장에서

단편 소설

by 류완


"문 앞에 점심 차려 놓았어. 엄마 일 하러 가니까 밥 먹고 내어 놔."


순영은 몇 가지 반찬과 따끈한 국물이 나란히 놓인 밥을 쟁반에 담아 딸의 방 문 앞에 내려 두었다.

그리고 식탁보를 찾아 얌전히 덮어 두었다.


"이제 정말 엄마 나간다. 밥 꼭 먹어. 응?"


대답이 없자 순영은 살며시 방문에 귀를 대보았다.

조용하던 방 안에서 바스락 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가슴을 쓸어내리는 순영.

그렇게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다.

정오의 햇살이 따갑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정돈되지 않은 머릿 결을 날린다.

서둘러 지하철 역을 향해 잰걸음을 옮긴다.

직장은 집에서 네 정거장이면 도착하는 가까운 거리지만

항상 시간에 쫓기며 열차에 몸을 싣는다.




순영은 매일 아침 늦게 시작하는 딸의 하루를 기다린다.

한 끼라도 따뜻하게 챙겨주고 싶은 마음에 출근 시간에 맞춰 음식을 문 앞에 두고 나온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어두컴컴한 집 거실은 나갈 때의 싸늘한 기운이 그대로 남아 있다.

그나마 깔끔하게 비워진 빈 그릇을 보고 나면 곤두섰던 하루의 긴장감이 녹아내린다.


저녁을 간단히 챙겨 먹은 순영은 씻고 난 후 남은 음식으로 딸의 저녁상을 차린다.

두 번째 차려진 밥상은 낮에 두었던 문 앞에 가지런히 내려놓고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닿고 조용히 기다린다.

한 참을 기다리면 딸의 방 문이 열리고 쟁반이 옮겨지는 소리가 들린다.

그제야 순영은 자리를 펴고 누워 잠을 청한다.

순영이 잠든 시간은 딸에게 자유를 주는 시간,

화장실을 이용하고 필요한 물건을 챙겨 들어가곤 한다.

그리고 엄마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다.


조금 일찍 일어난 순영은 혹시나 딸과 마주치지는 않을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방문을 열어 본다.

그러나 거실은 언제나 그렇듯 싸늘한 기운으로 순영을 맞이한다.

벌써 1년 하고도 6개월째, 순영과 딸의 숨바꼭질 같은 숨고 찾는 일상이 계속되고 있다.






순영은 이 모든 일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며 자책한다.

이혼 후, 홀로 키운 딸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때론 엄하게, 억척같이 키워냈다.

다행히 사춘기를 무사히 보낸 딸은 공부도 곧 잘해서 좋은 대학을 나왔고

번듯한 직장에 취직한 후 기대에 부푼 젊은 시절을 맞이하고 있었다.

딸은 순영에게 하나밖에 없는 자랑이었다.

모나지 않은 성격과 외모로 사람들에게는 사랑만 받을 거라 확신했다.


그러나 회사를 다니는 동안 순영의 딸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갔다.

말수도 적어지고 집에 오면 방안에 틀어 박혀 나오지를 않더니

하루는 집에 오자마자 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집어던지기 시작했다.

놀란 순영은 딸을 말리다 서로 부둥켜 넘어지고 말았다.


"왜? 왜? 무슨 일이야? 무슨 일인데 그래?"


방안에 쓰러져 엉엉 울기만 하던 딸은 대답은 안 하고 목 놓아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왜 그런지 말을 해야 알지. 무슨 일지 말을 해야 나도 같이 울던가 할 거 아니야!"


도무지 답답하고 미칠 것 같아 말 끝이 올라가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흐느껴 울던 딸은 그제야 자신이 처한 상황을 알려주었다.


"나, 나.... 회사에서, 왕따를 당하고 있어. 회사 사람들이 나를 피하고 괴롭혀. 미칠 것 같아.

뭐가 잘못된 건지 말이라도 해 주던가 그냥 나를 싫어해."

"왜? 네가 뭐 잘못한 일이 있는 거 아냐? 가서 말해 봐. 잘못했다고 하고 앞으로 잘한다고 해 봐."


순영은 딸의 단순한 투정인 줄 알았다. 회사 다니는 일이 다 힘드니 그렇게 말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 안 되었다.

유일한 희망,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마지막 희망마저 자신을 탓하자 딸은 더 크게 폭발하고 말았다.

엄마를 내 팽개치듯 방에서 쫓아내더니 문을 걸어 잠그고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처음엔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딸의 닫혀버린 시간은 한 해를 넘기고도 절 반이 흘렀다.

그 사이 회사에서는 해고 통보가 왔다.

자살을 시도하는 딸을 말리고 나서부터 순영은 딸에게 화조차 낼 수 없게 되었다.

숨죽여 지켜보면서 한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자체만으로 안도의 한 숨이 흘러나온다.





여느 날과 같이 딸의 식사와 짧은 인사를 문 앞에 내려놓고 출근을 위해 지하철로 향했다.

딸을 위해 남들보다 늦게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았다.

덕분에 조용한 출근을 맞이 할 수 있어서 마음의 평안을 찾곤 한다.

순영은 한산한 승강장에 두 다리를 모으고 안전 선 밖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오늘도 지워지지 않는 복잡한 마음을 흩트리기 위해 눈을 감고 감정을 정리한다.

열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이대로 고개를 숙인 채 두 걸음만 앞으로 걸으면 모든 것이 평온해 질까?

문득 이 저주 같은 삶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이 머리를 관통한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고개를 들고 한 발짝 반 앞으로 향했다.

순간 반대편 승강장에 걸린 광고 문구가 순영의 눈에 들어왔다.


'당신의 꿈을 이루는...'


하나의 궁금증이 순영의 걸음을 멈춰 서게 만들었다.

딸의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을까?

갑자기 용기 내서 물어보고 싶어졌다.

자신이 모르는 딸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리고 딸이 들어줄 수 있다면 자신의 꿈을 말해주고 싶어졌다.

언제부터인지 몰라도 나는 너의 좋은 엄마가 꿈이었다고......






왕따? 혹은 집단 따돌림이라고 하지요.

소설 속 이야기를 경험하시거나 가까이 들어 본 적이 있으신지요?

사실 소설 속의 이야기는 약간의 각색이 들어가긴 했지만

제가 10년 전 즈음 당사자에게 직접 들은 이야기입니다.




사무실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 왔습니다.


한 아주머니께서 지하철에서 사랑의 편지를 읽고 구석에 적힌 전화번호를 보고 무작정 전화를 걸었습니다.

무슨 일인지 묻기도 전에 자신이 처한 상황을 상세하게 설명하셨습니다.

너무도 정확하고 빠른 설명에 대본을 써서 읽고 계신 건 아닌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아주머니와 딸이 처한 상황은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방안에 틀어 박혀 나오지 않는 딸에게 같이 죽자고 문 밖에서 소리친 적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따로 마음을 전할 재주도 여유도 없어 좋은 글이라도 방 밑으로 넣어주고 싶은 마음에

승강장에 붙은 글을 손으로 적어 내려가다 전화번호를 보고 연락을 주셨습니다.

힘내시라고 말씀드리면서 주소라도 남겨주시면 책 한 권 보내드리겠다고 했지만

극구 사양하시면서 감사하다는 인사만 남긴 채 통화를 마쳤습니다.


일을 그만둘까? 생각하던 차에 걸려온 전화였습니다.

그리고 10년 더 같은 일을 하면서 20년째 글을 쓰고 있습니다.

힘이 들 때마다 그 아주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기분이 듭니다.

여전히 잘 읽고 있다고......


딸은 방에서 나왔을까요?

엄마와 딸의 관계는 회복되었을까요?


악은 평범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삶을 송두리째 뽑아 놓고도 편안하게 자신의 삶을 살아갑니다.

언젠가 그게 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습니다.

부끄러운 자화상일지 몰라도 언젠가는 이야기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랑하며 살기 어렵다면 적어도 상처는 주지 말고 살아가자고......

우리는 모두 유리그릇 같은 존재들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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