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평짜리 원룸
혼자 지내기에는 제법 넓은 방이다. 쾌쾌한 냄새가 며칠째 머리를 아프게 한다. 한 때는 청소도 하고 환기도 했었는데 언제부턴가 냄새에 익숙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정리되지 않은 채로 살아가고 있다. 방구석에 구겨진 채로 말려있는 이부자리는 한 달 넘게 먼지 한 번 털지 않았고 창문 안쪽으로 내려진 블라인드는 일주일 넘게 방 안으로 들어오는 빛을 차단하고 있다.
오래된 노트북 하나가 유일한 친구였다. 고스톱이나 치면서 가끔 만나는 반가운 상대에게 인사를 남기기도 했지만 대부분 욕설을 주고받을 뿐, 라인을 넘어서는 친구는 없다. 그 마저도 인터넷이 끊기면서 더 이상 접속하지 못하게 되었고 노트북의 전원을 켜는 일도 줄어들었다.
방 한쪽 구석으로 핸드폰을 가져가면 와이파이 신호 하나가 겨우 잡힌다. 비밀 번호를 걸어 놓지 않은 마음 착한 어느 방 주인이 고마울 따름이지만 이마저도 가끔씩 신호가 사라지는 걸 보면 집에 없을 땐 꼬박꼬박 전원을 내리는 성실한 사람인 것 같다. 덕분에 나도 가끔은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스치곤 한다.
사업을 정리한 지 5년이 흘렀다. 1년 뒤에는 아내와 이혼을 했고, 아들은 6개월 전, 마지막으로 찾아온 뒤 연락이 끊겼다. 아들은 그날 무언가 작심한 듯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 참 동안 나에게 퍼부었다. 마지막이라며 봉투 하나를 내려놓고는 집을 나갔다. 봉투 안에는 현금 10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며칠 뒤 정말로 아들의 전화번호가 바뀐 걸 알고 나서야 그때 퍼부은 말이 대충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었다.
냉장고에는 즉석 밥 두 개와 라면 하나 그리고 썩은 내가 나는 오래된 김치 한 통 만이 남았다. 아들이 남기고 간 봉투에는 이제 3만 2천 원이 남아 있다. 나름 성실히 절약하면서 쓰다 보니 6개월을 버틸 수 있었다. 술이 문제다. 술만 안 마시면 이 돈으로 한 달은 버틸 것 같다. 만원으로 패트 병에 담긴 소주 2병을 샀는데 거의 다 마시고 두어 잔 마실 양만 남았다. 소주 때문이라도 장은 봐야 할 것 같다. 다행이랄까? 아무 일도 하지 않고 단칸방에서 버티는 생활에 익숙해지다 보니 생존의 기술이 늘어나는 것 같다. 능력이 안되면 죽어야 하는데 나는 아직까지 죽을 준비가 안 된 듯하다.
죽기에는 아직 아쉬움이 남는 일들이 있다. 유일한 혈육이라고 하나뿐인 아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어린 시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에게 퍼부은 저주 같은 질책들이 그대로 나에게 돌아오는 것 같다. 허구한 날 이어졌던 전쟁 같은 부부 싸움 속에서도 아이는 잘 버텨주었다. 모나지 않게 성실한 어른으로 성장해 준 것만으로도 제 할 일 다 한 아이다. 그래도 하나밖에 없는 아비라고 마지막까지 노력해준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다. 직업을 구해 보라고 구해 준 깔끔한 정장이 한쪽 벽에 걸려 있고, 보일러가 끊긴 방에서 얼어 죽을까 봐 보내준 전기장판은 여전히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마트를 다녀온 지 보름이 넘은 것 같다. 이젠 정말 마지막일까 싶어 3만 2천 원을 들고 장을 보러 가기 위해 일어섰다. 무슨 심산일까? 아무 생각 없이 아들이 사준 깔끔한 정장을 입어 보았다. 혹시 용기가 나면 마트 사장에게 일자리를 부탁해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매무새가 제법 보기에 좋다. 헝클어진 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상의를 벗어젖히고 욕실로 향했다. 쪼그리고 앉아 차가운 물에 머리를 감고 오래된 면도기로 수염을 정리했다. 머리는 대충 털어 말린 후 가지런히 빗어 넘겼다. 다시 옷을 차려 입고 먼지 쌓인 오래된 구두를 꺼내 신었다. 손바닥으로 대충 털어내고 문을 나섰다.
보름만의 나들이다. 해가 저물어가는 걸로 보아하니 퇴근 무렵인 듯싶다. 한참을 걸어 큰길까지 나왔는데 사람들의 발길이 뜸하다. 전염병 때문에 사람들이 없는 건가 싶었다. 그러나 골목을 돌아 새로운 길을 만날 때마다 텅 빈 거리만 나온다.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18시 38분이라고 적혀 있는 숫자는 퇴근 시간 무렵임을 알려주었다.
오늘이 유독 사람들이 없는 날이겠거니 스스로 위안을 삼고 잘 가던 동네 마트를 찾았다. 불이 꺼져있고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트 입구에 적힌 안내문을 보고 나서야 사람들이 없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추석 연휴 3일간 쉽니다.'
허탈함이 발끝으로 흐른다.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발걸음을 옮겼다.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가격은 조금 더 비싸지만 환하게 켜져 있는 간판이 위로가 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의 인사가 낯설게 느껴진다. 몇 가지 먹거리와 소주 두 병을 바구니에 담았다. 왠지 아깝다. 1.8리터 페트 소주 한 병 값으로 500미리 두 병을 사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오늘이 추석이란다. 특별히 마셔줘야 하지 않겠나? 조상님들 뵐 면목은 없지만 말이다.
계산을 마치고 봉지를 들고 나서는데 친절한 아르바이트생은 또다시 인사를 남긴다.
"안녕히 가세요."
그래 가야지. 집으로.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짧은 외출은 싱겁게 끝났다. 집으로 들어와 문이 굳게 닫히자 묘한 편안함이 느껴진다. 사온 먹거리는 방바닥에 던져 놓고 철퍼덕 주저앉았다. 힘겹게 입고 나간 옷을 30분도 안되어 벗어버리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은 그대로 입은 채 음식물을 바닥에 하나하나 펼쳐 놓고 아무 생각 없이 세 번 절을 했다. 그리고 소주 두 병을 그대로 마시고 쓰러졌다.
아들이 보고 싶다. 그리움이 깊어지니 가슴은 더욱 먹먹하다. 그냥 잘못했다고, 그리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다. 그 목소리가 목구멍을 뚫고 나오면 아들에게 상처가 될까 봐 힘껏 넥타이를 졸랐다. 말하지 말라고, 마음으로만 간직하라고, 그래야만 아들이 행복할 거라 생각했다.
정신이 몽롱하다. 쓰러져 바닥에 닿은 왼쪽 뺨으로 축축한 감촉이 느껴진다. 눈물일까? 아니면 토해낸 내 위장 속 자존심일까? 눈이 감긴다. 다시 뜰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아니 뜨지 않아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꿈이라도 오래 꿀 수 있다면 이대로 깊이 잠들어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오늘은 제법 멋지게 차려입은 하루였으니까.
"자네가 보기엔 어때?"
"정확한 소견은 국과수의 의견을 들어 봐야겠지만 아마도 자살이겠죠?"
"음, 아무래도 알코올 반응도 나왔고 정장까지 입은 걸 보면 자살이 유력해 보이긴 하네."
"네 일단 유족에게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너무 확실하게 대답하진 말고 의심 사항 있으면 부검 신청하셔도 된다고 말해."
"에이 이건 90% 자살이에요. 넥타이에 목이 조른 흔적도 있는 걸요?"
"아니야. 아직 정확히 어디에 매달렸는지 확인이 안돼. 평소 혈압약을 복용한 걸로 봐서는 과음에 의한 심장마비라고 볼 수도 있어."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면도까지 했는데 스스로 죽음을 준비한 게 아닐까요? 마지막으로 제사까지 준비한 것 같은데."
"이것 봐, 죽은 지 보름이 지났어. 함부로 단정하지 말라고. 외롭다고 모두 다 죽으려고 하진 않아."
"이 정도 외로움이라면 죽음 외에는 다른 희망이 있을까요?"
"사자(死者)가 마지막 순간에 어떤 기분이었을지 네가 어떻게 알아?"
"아니 그냥 그럴 것 같다고요. 사체가 비교적 평온해 보여서요."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야. 우리는 증거만 찾으면 돼. 고독사가 모두 자살은 아니야. 심장마비일 가능성도 있으니 국과수에 의뢰해 봐."
"이거나 저거나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요."
"적어도 유족에게는 의미가 있지. 아무리 관계가 끊어진 가족이라도 죽음의 이유는 살아있는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니까."
굳어버린 토사물을 정리하기 위해 청소 업체 직원들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짧게 묵념을 하고 청소 도구를 꺼내 작업을 시작한다. 외롭게 남겨져 있던 시간은 길지만 흔적을 지워내는 시간은 쏜살같이 흐른다. 반나절도 안되어 방은 시큼한 소독약 냄새로 채워졌고 깔끔하게 정돈되었다. 고인이 발견된 지 만 하루 만에 방은 다른 사람을 맞이할 준비를 끝마쳤다.
고독사 (孤獨死)
주변 사람들과 단절된 채 아무도 모르게 삶을 마감하는 죽음을 의미합니다.
고령화 사회로 진입하면서 독거노인, 혹은 1인 가구가 빠르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과 관계를 끊은 채 홀로 살아가는 이들 또한 늘어가고 있습니다.
끊어진 관계는 서로의 안부를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사회와 가족으로부터 외면받은 이들은 자신의 죽음 조차 누구에게 알릴 길이 없습니다.
고독사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그러나 정확한 고독사의 수치를 제시하지 못합니다.
오랜 시간 방치된 시신은 죽음의 원인조차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로 변하기 때문입니다.
대략 1년에 500명에서 1천 명 사이로 집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이상이라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더욱 그 숫자가 늘어날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노년의 고독사뿐 아니라 삶의 의욕을 잃은 청년들의 외로운 죽음도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분명 잘 사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한반도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독사는 풍요 뒤편의 어두운 그늘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서로 대화하지 않는 사회, 가족이 붕괴된 현실, 빈부 격차에 따른 자존감 상실
그리고 혐오가 혐오를 낳은 사회 풍토가 외로움을 가중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마음 깊은 곳을 훑어보면 그렇지 않은 마음을 찾을 수 있습니다.
두렵고, 외롭고, 자신감을 잃다 보니 스스로 벽을 쌓을 뿐
우리는 언제나 대화하고 싶고, 만나고 싶고, 사랑을 갈구합니다.
고독이 삶에 힘이 되기도 하지요.
하지만 고독하게 죽어가는 삶은 누구도 원치 않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가두지 않기를 바랍니다.
절망이 깊을수록 대화의 창이 열리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가족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누구에게든 기댈 수 있습니다.
말이 어렵다면, 글이라도 나누기를 희망합니다.
외로우면 외롭다고, 누군가 함께 있으면 좋겠다고 적어보세요.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죽음이지만 적어도 고독이 죽음의 이유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