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함께 멈춰버린 사춘기
성장하지 못했던 시절의 고백
전학을 다닐 때마다 교실에서 가장 먼저 만나는 친구는 조금은 불량하거나 나에게 알 수 없는 불만으로 가득한 친구였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즘에는 친구에게 맞아 수업시간 내내 엎드려 엉엉 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한 학기 후에는 정반대의 상황을 경험했습니다. 자주 놀리는 친구에게 순간의 분노를 참지 못하고 주먹을 날렸는데 친구의 입안이 살짝 찢어지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입안에서 피를 쏟기 시작한 친구는 겁이 났는지 울지도 소리치지도 못하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멍하니 두리번거렸습니다. 담임 선생님께서 상황을 처리하셨고 저는 적당한 훈계를 받았습니다. 모든 일이 끝났을 거라 기대했지만 그날 밤 상황은 더욱 크게 번지고 말았습니다. 친구의 할머니께서 집으로 찾아오셨고, 부모님께 언성을 높이며 항의하셨습니다.
부모님은 비교적 엄한 분들이셨습니다. 난생처음 경험하는 큰 사건 앞에서 무척이나 겁을 먹고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단지 이 상황이 빨리 끝나기만을 바랬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부모님은 제게 아무런 꾸중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며칠이 흐른 뒤에 어머니는 저의 손을 잡고 친구의 집을 찾아가셨습니다. 친구의 부모님에게 과일바구니와 함께 봉투를 건네셨고 친구에게는 저를 대신해서 직접 사과의 말을 전하셨습니다.
“미안해. 하지만 먼저 때린 사람이 진 거란다. 맞았지만 너는 참았기 때문에 네가 더 훌륭한 행동을 한 거란다.”
제가 아이를 낳고 부모가 되고 난 후에야 그 봉투 안에 어머니께서 탈탈 털어 넣은 15만 원의 돈이 들어 있었다는 고백을 듣게 되었습니다. 1980년대 중반의 이야기이니 당시에는 꽤 적지 않은 돈이었으리라 예상할 수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의 말씀은 친구가 아닌 제게 하고 싶었던 말씀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참지 못했던 내 혈기와 분노에 대한 다그침이 아니었을지......
잦은 전학으로 따돌림을 당연하게 받아들여야 했던 어린 초등학생은 난생처음 써 본 동시로 담임 선생님을 놀라게 했습니다. 선생님의 칭찬은 영화의 반전과 같은 변화를 이끌어주었습니다. 수업 시간의 칭찬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제 글을 학기말 교내 신문의 가장 큰 지면에 내 이름과 함께 실어 주셨고, 글 잘 쓰는 아이로 친구들에게 알려졌습니다. 조금씩 내게 말을 걸어주는 친구들이 늘었고, 조심스럽게 친구들과의 대화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단답형으로 대화하던 수준에서 쉬는 시간 내내 이야기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6학년 즈음엔 교실보다 운동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부쩍 늘었습니다. 친구들의 권유로 축구에, 야구에 다양한 놀이도 즐기며 마음껏 뛰어놀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보기보다 운동을 잘한다며 칭찬해 주었지만 내가 운동을 잘할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란 건 누구보다 나 자신이었습니다. 교실 안, 내게 주어진 책상이라는 공간 안에서 벗어나기를 싫어했던 내가 빠르게 달리고 골을 넣고 있다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한편으로는 스스로 가두어 지냈던 지난 시간들이 아깝게 느껴졌습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무난하고 즐거운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친구들도 제법 사귀면서 다양한 클럽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학생이 되었습니다.
이날 이후로 글쓰기는 내 인생 첫 번째의 취미가 되었습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6학년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밤늦은 시간 은은한 스탠드 불빛 아래서 하루를 기록하는 재미에 빠져들었습니다. 아무런 형식이 없었습니다. 단 한 줄로 하루의 감정을 표현하는가 하면, 두 페이지가 넘어가는 날도 있었습니다. 암호문 같은 이상한 문자가 적혀 있거나, 그림이 그려져 있기도 했습니다. 그림은 세상에서 제일 못 그리는 실력이지만 내 일기장 속의 세계에서는 아무런 상관없었습니다. 그렇게 나의 사춘기 시절은 글이 주는 위로와 쾌감 속에서 모든 것을 풀어냈습니다. 아무도 알지 못하는 나만의 글쓰기, 흔히 일기라고 말하지만 나에게는 비밀스러운 나만의 공간을 만들어가는 작업이었습니다.
일기는 즐거웠습니다. 공부하려고 교과서를 펴는 일은 괴로웠지만 잠들기 전 일기장을 펴는 일은 재밌었습니다. 이따금 이전에 썼던 내용을 돌아보면 새벽의 한가운데에서 정신이 번쩍 들기도 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에는 혼자만의 즐거움으로 가득한 시간이었습니다. 글쓰기는 나에게 비밀스러운 쾌감을 선물해 주었습니다.
즐거움이라 말하지만 진실은 사춘기 소년의 정제되지 않은 감정이었습니다. 단어는 조잡했고 욕설과 비속어가 난무했으며, 감정의 기복이 산만하게 펼쳐졌습니다. 누군가 몰래 내 일기장을 읽는다면 정신과 치료를 추천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시절에는 그런 말들이 즐거움을 주었습니다.
나의 청소년 시절에 sns가 존재하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깁니다. 그때는 존중보다 비난이, 긍정보다 부정이, 차분함 보다 혼돈이 나를 지배했습니다. 흔히 말하는 중2병이라는 것이 어떤 건지 내 과거를 훑어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한 때의 치기 어린 생각이라 할지라도 부정적인 언어들로 채워진 일기는 좋은 글쓰기라 할 수 없습니다. 솔직함 말고는 나에게 도움 되는 부분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고의 틀을 넓혀주거나 타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지 못했고 좋은 감정마저 무너뜨리게 만들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솔직한 표현이라는 가면 뒤에 숨겨진 거짓입니다. 나는 그 친구를 싫어하지 않지만 질투라는 감정에 휘말려 미워하는 말들을 쏟아 냅니다. 진짜 감정이 아니었던 거죠. 결국 돌아보면 진실의 탈을 쓴 거짓된 이야기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을 뿐입니다. 한 번 시작된 거짓말은 더 큰 거짓말을 불러옵니다. 혼자만의 이야기 속에는 스스로에 대한 반성은 없으며 오로지 타인을 정죄하고 부정하는 말 만 가득했습니다.
나의 사춘기는 은밀한 세상 속에서 방황하기 시작했고 분노와 혈기만 성장했습니다. 학교나 교회에서는 얌전하고 성실한 학생이었지만 내 머릿속에서 나오는 문장들은 온통 혼동의 도가니였습니다. 지킬박사와 하이드가 내 모습이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러한 감정에 브레이크를 걸어 주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시절 내 주변에는 그런 등대 같은 사람이 없었습니다.
부족할 때는 누군가에게 의지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마음을 품어 본 적이 없었습니다. 혼자만의 세상에서 나만이 최고였고 세상은 내 일기장에 기록된 대로 돌아가기만 바랬습니다. 하지만 생각처럼 흘러가는 일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당연히 터져 나오기 직전의 불만이 마음을 채웠고 이어지는 기록들 역시 그런 마음을 담았습니다.
성인이 되어 인문학을 전공하고 잠시 학생들을 가르치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그때, 나의 사춘기 시절 글쓰기의 한 가지 문제점을 깨달았습니다. 글을 쓰는 건 좋아했지만 읽는 건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더 어린 시절에는 책이라는 책은 모두 찾아 읽는 독서광이었지만 중학교에 올라가서부터 한 권의 책도 읽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교과서와 문제집 말고는 종이로 된 활자를 읽어 본 기억이 없습니다. 물론 책을 사서 읽을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았고 요즘처럼 학교나 지역 도서관이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이기도 했지만 책을 좋아하던 소년이 책을 전혀 읽지 않는 청소년으로 자란 모습은 지금 생각해도 어색합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등대가 되어 줄 사람은 없었을지라도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아야 했습니다. 많은 이야기들이 책 속에 있고 책을 통해서 다른 사람의 생각과 교감을 할 수 있습니다. 독서를 통해 생각을 넓혀가면서 일기를 썼다면 머릿속에서 떠오르는 대로 적어내기 전에 스스로 돌아보는 글을 썼을지도 모릅니다. 나만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사고의 틀을 넓히는 글쓰기가 이어졌을 거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시절의 내 글은 누구도 이해할 수 없는 휘발성 감정의 덩어리였습니다. 훌륭한 작가들의 멋진 이야기를 읽고 뜨겁게 타오르는 감동과 아무도 모르게 소비해버리는 불꽃같은 기분은 만들어 내는 이야기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독서는 글쓰기의 가장 좋은 친구입니다. 마음에 맞는 책을 읽다 보면 글을 쓰고 싶어 안달이 날 때도 있습니다. 이런 글을 쓰고 싶고 나도 이와 비슷한 감동을 나누고 싶어 집니다. 그런 생각들이 모이면 모일수록 내가 쓰는 말과 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어납니다. 글로 소통할 수 있고 영향력을 끼칠 수 있습니다. 글을 통해 큰 힘을 발휘한 사람들이 그러합니다.
윌리엄 케인의 저서 '위대한 작가는 어떻게 쓰는가'에는 모방이 창작을 이끄는 중요한 모티브라고 말합니다. 천재적인 작가도 혼자만의 힘으로 온전한 글을 만들어 내지 못했음을 이야기합니다. 혼자만의 세상에서 만들어내는 글은 성장할 수 없습니다. 나의 사춘기는 사방이 꽉 막힌 밀실 같은 곳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소통은 전혀 없었습니다. 혼자만의 이야기가 내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조금도 노력하지 않았던 나 자신을 알고 있기에 시절을 탓하기조차 부끄럽습니다. 이런 자신을 알게 되기까지 제법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되고 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불혹의 나이를 지나며 좌절과 불안의 시간을 관통하면서 조금씩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습니다. 새롭게 배운 감정들이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이제야 비로소 제대로 사는 방법을 발견한 것 같습니다. 무너지고 또 무너지는 경험 속에서 얻은 소중한 감정입니다.
그 시절에 배웠더라면 지금 나의 글은 어떤 모습일까요? 아쉽지만 시간은 흘렀습니다. 나는 이제 내가 깨달은 길을 향해 앞으로 걸어가야 합니다. 다만 새로운 시절의 문 앞에 서 있는 청춘들에게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부끄러운 고백을 남깁니다. 외롭게 홀로 걷지 말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대화하며 앞으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타인의 생각을 읽고, 교감하며, 내 생각의 폭을 넓히는 것, 성장의 비밀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지만 우리가 잘하지 않는 것에 숨겨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