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지편집부

방황하는 글쓰기

by 류완



고등학교 입학 후 교지편집부에 들어갔습니다. 친구들에게는 예쁘고 귀여운 선배가 있다는 핑계를 둘러댔습니다. 뭔가 반듯하고 모범생 스타일의 동아리에 들어간다는 것이 당시 내 모습과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진심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어린 시절의 허세였을지도 모릅니다. 아무튼 나는 우연히, 그리고 의도치 않게 글을 쓰는 동아리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사실은 글을 잘 쓰고 싶었습니다.


작가의 꿈을 꾸었던 건 아니었지만 글을 더 잘 쓰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모든 수업이 대학 입시에 맞춰 있다 보니 따로 작문과 관련된 취미 활동을 배울 만한 과정이 없었습니다. 교지편집부는 학교 신문사 같은 곳인지라 글을 쓰고 싶어 하는 학생들뿐 아니라 언론 과정을 꿈꾸는 학생들도 지원했습니다. 작문 및 교정 관련 시험을 보고 면접을 본 후 무려 7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습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제 인생에서 스스로 선택한 첫 번째 결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교지편집부 위원이 되었습니다. 뿌듯하기도 했지만, 글을 쓸 수 있다는 기대감이 더 크게 다가왔습니다. 그러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다음 순서를 찾아내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동아리 활동은 소극적이었고 그저 모임 시간에 맞춰 머릿수 맞추기에만 급급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찾아내야 하는 나이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등학교 3년 동안 단 한 번도 스스로 내 글을 쓰지 못했습니다. 그저 원고 마감에 맞춰 여기저기서 짜깁기 한 글을 내거나 선배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습니다. 당연히 수준 미달의 글이 쏟아져 나왔고 나의 글쓰기는 조금도 성장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3년을 보내고 편집부 활동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고등학교 3년을 돌아보면 나름 파란만장한 시간이었다고 자부합니다. 밴드 활동도 하면서 친구들과 즐거운 추억도 많이 쌓았습니다. 후회하지 않을 만큼 열심히 놀았습니다. 유일하게 후회되는 일이 편집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착하고 좋은 선배와 동기들은 성실하지 못했던 내 모습을 나무라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 각자 자기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했던 시절이었습니다. 아마도 다른 친구들도 각자의 이유로 힘든 시간을 보냈으리라 생각해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의지를 채우지 못했습니다. 잘못해도 괜찮고, 실수해도 괜찮고, 불안하거나 흔들려도 괜찮을 나이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도전하지 않은 내 모습은 여전히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그때는 누구나 부끄럽고 조잡한 글을 쓰는 시기입니다. 그래도 괜찮을 나이입니다. 그런 시절을 그냥 보내고 났으니 마음과 생각의 크기는 전혀 성장하기 못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지 않았지만, 고등학교에서는 뜻밖의 환경이 마련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교지편집부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글 쓰는 학생이라는 이미지만 채웠습니다. 친구들은 내가 글을 잘 쓰는 줄 알고 종종 연애편지의 대필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남의 이야기라고 신나게 적어주기도 했지만 친구들이 아무리 좋은 평가를 내려 준다 하더라도 내 이름으로 스스로 평가받지 못하는 글쓰기는 그 자리를 빙빙 돌게 만 만들었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일기 쓰기는 계속 이어졌습니다. 일기는 좋은 글쓰기 연습입니다. 그러나 결국 타인과 소통하려면 누군가에게 나의 이름으로 쓴 글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자신을 숨기는 혼자만의 글쓰기는 글을 통해 소통하는 능력을 키우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누구보다 일기를 오래 썼다고 자부하지만 나의 글쓰기는 초등학교 5학년 수준에서 조금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 중, 고등학교 6년 동안 스스로 자신의 글과 생각을 드러내지 못한 결과입니다. 못하는 모습은 감추고 잘하는 것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남몰래 쓰는 일기장에는 내 진심이 담겨 있었지만 나는 내 진심을 다른 친구들과 나누지 못했습니다.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던 나의 글쓰기는 대학을 가서도 전혀 늘지 않았습니다. 대학원에서 만난 지도교수님의 혹독한 비판과 꾸지람 속에서 조금씩 문제점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잔인한 비판, 초등학생 수준이라는 말을 듣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내 글에는 내 모습, 내 생각이 없었습니다. 누구나 알고 있고 누구나 쓸 수 있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결국 제대로 된 글을 쓰기 위해 가면을 버리고 내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을 처음부터 다시 밟아야 했습니다.






얼마 전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났습니다. 다들 잘 살고 있는 모습에 부러움과 대견함을 함께 느꼈습니다. 친구 중, 한 명은 지금 대형 뮤지컬 무대 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이 친구는 시험 날만 되면 학교를 빠지는 날이 많았습니다. 평소에는 같이 놀다가도 시험 날만 되면 그 친구의 자리는 비어 있었습니다.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에게 시험 날의 비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친구는 시험 날이면 이른 아침에만 상영하는 영화를 보기 위해 학교를 빠졌다는 이야기였습니다. 그 시절에는 영화감독을 꿈꾸었지만, 지금은 무대 감독을 하고 있다는 싱거우면서도 드라마틱한 이야기에 자리에 모인 친구들은 흠뻑 빠져들었습니다.


시험을 보지 않는 친구를 걱정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친구는 영화를 좋아해 학교를 빠졌다는 영화 같은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살았습니다. 돌아보면 나는 딱히 정해진 목표가 없었습니다. 목표가 없는 건 괜찮습니다. 목표를 이루는 사람은 매우 적을 뿐 아니라, 목표가 분명하다 하더라도 반드시 멋진 인생을 산다고 확신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성실히 부딪힐 용기는 필요했습니다. 누가 뭐라 하든 자신의 이야기를 당당히 적어 낼 수 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의 부족함은 누구의 탓이라 원망할 수도 없습니다. 손톱만큼의 자존심을 지키고자 주변의 눈치만 살피면서 진심을 숨긴 나의 소심함 때문입니다.


지금도 가끔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용기 있게 글을 쓰고 담담히 평가받을 수 있는 마음을 키워내고 싶습니다. 풋풋한 어린 시절에 그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건 축복과 같은 일입니다. 글쓰기는 인생을 많이 닮았습니다. 실패할수록 단단해지고 많이 경험할수록 자유롭고 놀라운 창조물을 구상할 수 있습니다.


도전에 정해진 시간은 없다고 합니다. 늦었다고 생각했을 때가 가장 빠를 때라고도 하지요. 저도 늦은 시기에 새로운 글쓰기를 도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도전의 끝이 없는 것처럼 시작도 정해진 시간은 없습니다. 어리다는 핑계로 하고 싶은 일을 미루지 마십시오. 빠를수록 좋은 것도 있습니다. 실패와 좌절이 그렇습니다. 그만큼 더 멀리, 그리고 더 높이 성장할 수 있을지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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