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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Oct 30. 2021

저수 (低首)




붉게 물든 곡식

그 속에

땡볕도 폭풍도

함께 담겼다


힘든 계절을

이겨 내고도

고개 숙여

머리를 내린 자리


붉은 꼬리의 잠자리

힘겨운 날갯짓이

잠시 쉬었다 가는 곳


겸손하기에 머리 숙였다

말하지 마시라


아무것도 얻은 바 없음에도

한결같이 내어주는 계절

가을은 겸손이 아닌

사랑이다







'저수(低首)'

'고개를 숚이다'라는 의미의 한자어입니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속담도 있지요.

겸손함을 의미하는 속담입니다.


가을은 익을수록 무게를 만들어 냅니다.

사과도, 배도, 밤도, 도토리와 은행까지

하늘하늘한 바람에도 가볍게 흔들리던 작은 열매들은

가장 무거운 시간을 지나 땅으로 내려앉습니다.


가을은 아낌없이 주는 계절입니다.

풍성한 열매, 아름다운 색과 시원한 날씨까지

인간이 아무리 세상을 망쳐도 줄 것은 기어코 내어주고 마는 계절,

그래서 겸손이 아니라 사랑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계절이 끝나기 전에 그 사랑의 배우려 합니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 

이 땅이 그러하듯 나 역시 얻은 바 없어도 나누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사랑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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