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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an 02. 2022

소원이 있나요?



'소원성취'


새해가 되면 '복 많이 받으시라'는 인사와 함께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입니다. 소원은 어떤 일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간절하지만 확신할 수 없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소원의 크기가 딱히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바라는 소원이 건전한 희망인지 과한 욕심인지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나이가 들수록 소원에 대한 고백이 서툴러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릴 때는 그때그때의 감정과 소망을 솔직하게 고백하곤 했습니다. 장난감, 여자 친구, 두둑한 세배 돈 정도를 소원이라고 빌었습니다. 돌아보면 쑥스러운 고백이지만 그래도 그 마음에 거짓은 없었으니 그저 순진했다고 그 시절의 부족한 정서를 포장해봅니다. 


나이가 들면서 소원이 욕심의 크기를 보여주는 것 같아 섣불리 진심을 담지 않습니다. 각색하고 감춘 뒤, 다른 대답을 고르곤 합니다. 건강, 평화, 통일, 사랑 같은 건전한 대답으로 대충 얼버무리지만 마음속에는 다른 꿍꿍이가 있을지 모르지요. 10년 전 즈음엔 정말 로또 1등이 소원이었습니다. 간절하게 빌고 빌었지만 매주 로또를 사는 일 자체가 되게 귀찮은 일임을 깨닫고는 한 달 만에 접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최근까지 나에게 소원은 없었습니다.





마흔을 넘길 무렵이었던 것 같습니다.


소원이 무의미하다고 느끼게 된 시절이 말입니다. 잘 살고, 유명해지고, 잘나고 싶은 마음은 태어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가지고 살게 될 욕망이라 생각했는데 언젠가부터 그런 마음 자체가 사라진 자신을 알아채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40을 불혹(不惑)이라 부르는 걸까요? 그러나 공자가 말한 불혹이 스스로 유혹을 떨쳐낸 삶의 고백이라면 나는 스스로 텅 비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 시점의 고백입니다. 자신을 버리는 삶을 살지도 않았고 수도사의 삶을 꿈꾸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아무것도 없이 텅 비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고 그 속에 무언가를 채우고 싶은 욕구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 시간이 길어지면서 우울증에 대해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2년 정도 고민과 고백을 반복하다 작년부터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불면증과 우울증을 약물로 치료한 지 이제 열 달 정도 지났습니다. 딱히 드라마틱하게 나아진 건 아니지만 공황장애 증상은 거의 사라졌습니다. 숨을 쉴 수가 없어 가슴을 부여잡고 뒹굴던 날이 사라졌습니다. 손이 저리고 화끈거리는 증상도 사라졌습니다.


힘들면 병원 가시기를 추천드립니다. 제가 이 세계로 들어와 보고 나니 비슷한 사람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른 방법으로 불안을 잠재우려다 더 망치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우울과 불안의 세계로 들어오는 이유는 저마다 제각각이지만 극복하는 과정에는 일정한 방향이 있음을 깨닫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게 느껴지지만 길을 세우고 걷고 있기에 목표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아직 다른 문제가 남았습니다. 약물로도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텅 비어있는 나 자신을 채우는 일입니다. 


인생의 절반을 넘기면서 조금씩 소망이나 소원을 소비하며 살았습니다. 이것도 버리고 저것도 버리다 보니 몸뚱이 하나만 남았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맞는 거라 생각했습니다. 인생이라는 것이 연륜이 쌓일수록 무소유, 무념무상, 모든 것이 헛되다는 사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빈 공간을 아무것도 채우지 않다 보니 존재에 대한 회의가 들기 시작했습니다. 삶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수록 죽음에 대한 거리감이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인생에 변화를 주어야 함을 느꼈습니다. 그러나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반 평생 남의 이름으로 글을 쓰고 살았으니 글을 쓰면 쓸수록 자신을 잃어가는 감정만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내 이름으로 글을 써 보자고 결심했습니다. 1년 하고도 반년 전,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이유였습니다.


고민할 것도 없이 작가명은 내 이름입니다. 평범한 이름이 아니라 이럴 땐 정말 좋습니다. 나를 나타내기에 이보다 좋은 이름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저런 삶의 고백을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칼럼만 쓰던 중년이 시도 쓰고, 에세이도 쓰고, 상상력을 동원해 소설도 써 봤습니다. 호응해 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흥이 차오를 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싸늘하게 식어버린 감성만 남았습니다. 그렇게 타올랐다 식어가는 과정을 반복하면서 지금까지 글을 쓰고 있습니다.


많지는 않았지만 두세 번의 공모전에 참여하기도 했습니다. 기대하지도 않았지만 막상 떨어지고 나면 실망감이 밀려옵니다. 이게 이런 감정이구나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허무한 감정이었지만 조금 더 시간이 흐르고 나니 꿈틀거리는 마음의 흔들림이 느껴졌습니다. 약간의 분노와 흥분감? 이걸 뭐라고 해야 하나 싶을 때 다른 작가님의 글을 읽다 무릎을 탁 쳤습니다.  


실패! 그렇습니다. 실패에 대한 감정이었습니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실패의 감정인지 모르겠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도전도 하지 않다 보니 실패를 느껴 볼 일도 없었습니다. 묘한 흥분감이 밀려들어 왔습니다. 내가 도전을 했었다는 사실 때문이었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지만 속으로는 간절했었던 것 같습니다. 스스로 아니라고 밀어내고 난 뒤에도 어지간히 신경이 쓰였던 걸 보면 나는 글쓰기에 대한 도전에 진심이었습니다. 그리고 실패를 받아 든 결과에 가슴이 뛰었습니다.






소원이 생겼습니다. 10년 만에 당찬 소원 하나 담아 봅니다. 거짓 없이 내 삶의 고백과 상상력만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겠다는 소원입니다. 책으로 나오면 좋고, 당선돼도 좋습니다. 그러나 실패하면 더 좋습니다. 나는 그 순간에 더 빠르게 뛰는 심장 소리를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씩 자신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채워가고 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습니다. 불혹을 지나는 나이이지만 이제 나를 유혹하는 것이 있다면 외면하지 않기로 다짐합니다. 스피노자는 욕망이 인간의 본질이라 말했습니다. 욕망이 나를 삼키지 않는다면 그 욕망은 나를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소원이 있나요? 비슷한 감정으로 당신의 소원 성취를 기원합니다. 함께 꿈꾸고 도전하기를 바랍니다. 더불어 실패하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나와 같아서 반갑고, 인생을 자신의 방식대로 채워가는 당신이 더욱 기대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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