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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Feb 02. 2022

상처



면도를 하다가 입 주변에 상처가 생겼습니다.

통증은 별로 없었는데 살짝 걸리적거리는 기분이 불쾌하면서도 계속 손이 가게 만듭니다.

한 이틀 그렇게 상처를 매만졌더니 물집이 잡히면서 상처는 더 크게 부풀어 올랐습니다.





흔히 말하는 손독이 올라왔습니다.

입을 벌리면 통증이 밀려와 음식을 삼키기가 어려워졌습니다.

가만히 놔두었어야 했는데, 쓸데없는 손길이 일을 크게 만들었습니다.

밥은 먹어야 하고 말은 해야 하는데 입을 벌릴 때마다 통증이 밀려옵니다.

자고 나면 내일은 괜찮아지겠지 싶어 잠을 청해 보지만 쓰라린 기운에 잠도 잘 들지 못합니다.

피곤한 아침을 맞이하고 나면 괜찮아지기는 커녕 어제보다 더 큰 고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지나고 나니 편안하게 입을 벌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불과 사 나흘 정도 지속된 고통이었지만 3년은 아픈 것 같았습니다.

다시는 쓸데없는 호기심에 상처를 어루만지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합니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요? 






인간의 몹쓸 호기심은 쓸데없이 상처를 덧나게 만듭니다.

가만히 두어야 할 때를 모르고 들 쑤셔서 상처를 내고 피를 봐야 직성이 풀립니다.


꼭 나에게만 있는 상처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타인에게 보이는 작은 흉터 하나까지도 지나치지 못하고 건드리고 들쑤십니다.

고약한 심보는 그가 고통을 느끼고 흐느껴 우는 모습을 보고야 맙니다.

그제야 그게 그렇게 아픈가 싶어 민망한 마음이 들면 좋은 사람입니다.

대부분 그러든가 말든가 신경 쓰지 않습니다.

내 고통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그렇게 타인의 고통에 무책임합니다.


작은 흉터 하나쯤은 내버려 두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싫어하는 사람이라도 말입니다.

때론 눈 감고 넘겨주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아픔은 멈추지 않고 누군가에게 전염됩니다.

서로에게 상처 주는데 망설임이 없는 세상은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니 나도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면서 살았습니다.

후회하는 마음을 알아챘을 땐, 이미 사람들은 떠나고 난 뒤였습니다.

잘못했다고 뉘우쳐본들 다시 돌아오는 이는 없었습니다.

관계는 만들기도 어렵지만 회복하기는 더욱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내 마음에도 작은 흉터가 남았습니다.

스스로 만든 흉터인데 자꾸만 거치적거립니다.

한 번 눈에 들어온 흉터는 습관적으로 열어봅니다.

길을 걸어도, 사람을 만나도, 혼자 있어도 내 안의 흉터가 어떤 상태인지 살피고 몰래 숨깁니다.


처음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그대로 두려고 합니다.

과거의 내 모습이 만들었던 흉터가 더 큰 상처가 되지 않도록 있는 그대로 두려고 합니다.

언젠가 내 안의 작은 흉터까지 사랑하게 된다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있는 흉터까지도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

평온한 마음으로 아무렇지 않은 날을 기다립니다.

내가 내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는 그날입니다.

나 만큼 타인의 아픔도 사랑할 수 있는 그날이 될 것입니다.


얼른 봄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아름다운 계절을 기다립니다.

따스한 햇살이 온몸을 적시는 날에는 누구든지 아름답게 보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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