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눈을 뜨자 따스한 햇빛과 두통이 동시에 머릿 속으로 밀려 들어왔다. 여기가 어딘가 싶어 뒤척이는 몸 위로 포근한 이불이 덮여 있었다. 여전히 몽롱하고 머리가 무거워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다. 몸을 돌려 옆으로 돌아 누웠더니 오래 된 책상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의 방, 창 밖으로 파도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바닷가 근처의 집은 분명해 보인다.
이불을 살며시 들춰 보니 어제 입었던 옷이 아니었다. 누군가 친절히 옷을 갈아 입혀주었나 보다. 천천히 몸을 일으켜 앉아 머리를 움켜 쥐었다. 밀려오는 두통, 아마도 숙취 때문이리라. 어젯 밤의 기억을 짜 내보려 하지만 드문드문 조각난 기억들이 시간의 순서에 맞춰 배열되지 않고 뒤죽박죽 섞여 버린 기분이다.
얼마나 마셨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필름이 끊기기 직전 내 모습을 추적해 보니 바닷가 작은 포차에서 이제 문을 닫아야 한다며 나가 달라는 주인과의 실갱이가 떠오른다. 떠밀려 밖으로 나온 것 같았고 나는 바닷가 어딘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던 장면이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스쳐 지나간다. 어두 컴컴한 바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데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파도를 보려고 일어나 앞으로 나아갔던 것 같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물이 들어오는 바다로 걸어 들어가는 내 모습이 어제 밤 기억의 마지막이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이 방에서 깨어났다.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의문이 가시기도 전에 갑자기 방 문이 열렸다.
'드르륵'
시골 집의 작은 방은 문 여는 소리가 독특하다.
나이 지긋이 드신 어르신이 주전자와 컵을 내려 두시며 말을 거셨다.
"괜찮나? 물 한잔 마시고 정신 차리면 밥먹으러 오게나."
거실이랄게 따로 없는 시골 집, 대청 마루 비슷한 곳에 상이 차려져 있었다.
처음 보는 어르신이 아침 식사를 차려주셨다.
"늦었네 그려. 벌써 점심 시간이라네."
시계를 확인하니 12시 십 분 전, 아침이 아닌 점심 상이었다.
처음 뵙는 어르신께 신세지는 것도 죄송한 데 늦은 시간까지 일어나지 않는 젊은이를 기다려 주신 마음 씀씀이가 감사했다. 진심어린 마음을 담아 사죄와 질문을 드렸다.
"죄송합니다. 제가 뜻하지 않게 신세를 지게 되었네요. 혹시 어르신께서 저를 데리고 오셨나요?"
어르신은 따끈한 밥 한 공기를 내가 앉은 자리에 밀어 넣으시고는 이야기를 어어가셨다.
"말도 말어. 한 밤 중에 바다로 걸어들어가는 자네를 보고 있었는데 말야. 허리까지 물이 차오르는데 나오질 않는 거야. 바다에서 자네를 건져오는 건 힘들지 않았는데 흠뻑 젖은 자네를 집에까지 끌고 오는게 더 힘들었다네."
이후로는 젖은 옷을 벗기고 아들이 입던 옷으로 갈아 입히는데 마침 딱 맞은 사이즈에 깜짝 놀라셨다는 말씀까지 깨알같은 설명을 이어가셨다. 편안한 잠자리 모두 어르신의 작품이었다. 낯선 곳에서 만난 뜻밖의 친절, 나는 목숨을 건진 게 아니라 대접을 받고 있었다. 불과 열 두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서 말이다.
"그런데 젊은이. 왜 거기로 들어갔는지 물어봐도 돼나?"
"잘 모르겠어요. 퇴근 후 택시를 타고 무작정 가까운 바닷가로 가 달라고 했거든요. 포기하려고 내려온 건 아닌데 바다를 보는 순간 이젠 더 살아가기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냥 끝까지 가면 뭐가 나올까 궁금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저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네요."
힘겹게 내 삶의 고백을 풀어 냈을 때 어르신이 물었다.
"반찬은 맛이 괜찮고?"
"네, 정말 맛있습니다."
이윽고 이어진 침묵, 천천히 일어나 빈 그릇을 정리하는 내게 나즈막한 목소리로 삶에 대한 정의를 내려 주었다.
"인생은 살아가는게 아냐. 살아 내는 거지. 살았으면 그걸로 된 걸세."
뜻밖의 응원에 마음이 녹아내리 듯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이후로 어르신과의 대화는 편하게 이어졌다.
"그런데 어르신은 무슨 일로 그 시간에 나와 계셨어요?"
"그냥, 잠이 안 와. 그 시간이 되면..... 잠이 안오면 나와서 물이 들어오는 걸 바라 보다 들어와 자곤 하지. 자네를 봐서 다행이네. 안그러면 지금 설거지가 아니라 송장치룰 뻔 했잖아."
"그러네요. 하하. 감사합니다. 어르신."
옷은 세탁이 다 되면 집으로 보내 주신다며 주소를 적어 두라고 하신다.
착불로 보낼테니 그 때까지는 살아 있으라는 농담까지 건네주셨다.
아들이 입던 외출복에 신발까지 내어 주셨다.
옷 받으면 그 상자에 다시 돌려 보내 달라고 하셨다.
어르신은 문 앞까지 나와 배웅을 해 주셨다.
정중히 인사를 드리고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좋은 분을 만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만남이지만 그 만남이 아니었다면 나는 다시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지 못했을지도 모르니까.
버스 정류장에서 터미널로 향하는 시골 버스를 기다리는데 할머니 한 분이 정류장으로 향하신다.
한 참을 내 모습을 살피시더니 아는 사람처럼 말씀을 거신다.
"현우냐? 니 현우 맞제?"
시골에서는 젊은 사람이 귀하긴 귀한 것 같다.
아무나 보고 지인과 헷갈릴 수 있는 걸 보면 말이다.
"아닙니다. 저는 서울에서 사는 재민이라고 해요. 곽재민. 여긴 잠시 놀러 왔습니다."
치매끼가 있는 노인인가 싶어 살짝 긴장감이 들었다.
괜히 이름까지 밝힌 건 아닌가 싶어 불안한 마음이 감돌았다.
다행히 이어지는 할머니의 말씀에 마음이 놓였다.
"그러제? 설마 현우겄어? 현우가 어찌 여길 오겄냐?"
잠시 이어지는 침묵, 궁금증이 들어 할머니에게 여쭈어 보았다.
"현우라는 분이 여기 살았었나 보죠?"
"응, 그럼. 저기 회색 벽돌 집 보이지? 그 집 아들이여. 1년 전에 죽었지 아마. 바다에 빠져서."
빨간 벽돌 집, 내가 하룻 밤 머물렀던 그 집이었다.
잠시 충격에 빠져 말을 잊지 못하는 순간 할머니는 불안한 마음에 확인하는 한 방을 날리셨다.
"난 그 애가 자주 입던 옷을 입고 있길래 현운줄 알았지 뭐여. 미안혀."
마지막 단편 소설이 될 것 같습니다.
브런치 생활이 길어지면서 글 쓰는 방향이 매 번 바뀌는데 적응하기에 벅찰 때가 있습니다.
다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습니다.
단편 소설은 쓸 때는 즐겁지만 퇴고의 과정이 제법 힘이 듭니다.
처음 멋대로 문장을 지어낼 때와 발행 버튼을 누를 때의 내용은 완전히 뒤바껴 있을 때가 많거든요.
이번 글도 첫 문장을 써 두고는 세 달이 넘어 완성했습니다.
도입부분과 마지막 부분을 먼저 써 두고는 중간 부분을 짜 맞추어 글을 완성했습니다.
이전에는 그렇게 쓰지 않았는데 새롭게 바뀐 글쓰기가 어색하고 맘에 들지 않네요.
부족함만 늘어가는 것 같아 단편 쓰기를 멈추기로 했습니다.
창작이라는 작업이 무한정 쏟아져 나오는 비단주머니 같은 건 아닌가 봅니다.
마지막 소설이니만큼 내 이야기도 숨겨 두었습니다.
좌절, 아픔, 포기, 그리고 구원의 이야기까지 비유와 은유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
어느 부분 하나 내 이야기가 아닌 부분이 없습니다.
여러분은 이 소설의 주인공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구원 받은 이는 누구일까요?
제 마음에는 따로 정해 둔 답이 있지만 알려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글이야 뭐, 해석하는 사람 마음이니까요.
살아 있으니 그거면 충분합니다.
당신도 평안에 이르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