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기다립니다

단편소설

by 류완



"우리 여기서 헤어지자."

"왜요? 내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요?"

"딱히 무슨 잘못이 있어서는 아니야."

"그럼 뭐가 문젠데요. 지금까지 잘 지냈잖아요."

"관계라는 게 그래. 나도 어쩔 수 없어. 안그래도 우리 조금씩 멀어졌잖아. 너도 느끼고 있었지?"

"저는 몰랐어요. 늦게 오는 당신, 그저 일이 많거나, 만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그래, 바로 그거야. 너는 나를 너무 몰라. 그걸 이유라고 하자."

"아니 왜요? 나는 아직 당신을 사랑하는데 어떻게 이 마음을 지우라고요."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이 돼. 너도 다른 곳에서 다른 친구를 만나면 나를 잊게 될거야."

"아니요. 저는 그럴 수 없어요. 저는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운명처럼 이끌려 내 영혼을 당신에게 맡겼어요. 당신과 함께하지 못한다면 저는 제 자신일 수 없어요."

"약한 소리하지마. 너도 너 자신을 위해 나를 좋아했을 뿐이잖아."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그렇지 않아요. 저는 당신을 위해서 목숨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말도 안돼는 말을..... 누가 그 말을 믿어줄 수 있겠어?"

"왜 저를 믿지 못하는데요. 저는 그저 당신만 곁에 있으면 되는 걸요. 유일한 내 소망을, 내 사랑을 버리라고 하신다면, 저는 따를 수 없어요. 부탁이에요. 헤어지는 것 말고 다 할께요. 제발 당신 곁에서 당신만 바라보며 살게 해 주세요. 네?"


제제는 자신을 떠나려는 그를 애타게 붙잡아 본다.

인적이 드문 음습한 공원 밴치에서 나누는 대화는 고요함 속에서도 긴장감이 흐른다.


"미안. 난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이제 갈께. 구차하게 따라오지 말고 여기에 있어."

"여기에 있으면요. 여기에 있으면 다시 올 거에요? 마음이 바뀌면 여기로 다시 날 찾아 올거냐구요?"

"제제, 이제 그만해. 부탁이야. 날 더 비참하게 만들지마."

"네, 당신을 힘들게 하지 않을께요. 다만 당신이 마음을 바꾸고 돌아올 수 있다면 저는 여기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당신을 기다릴 수 있어요."

"그럴리가. 어둠이 내리고 추위가 찾아오면 너는 너의 길을 가겠지. 그리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날거야. 너가 지금처럼 마음대로 사랑할 누군가를 찾아서......"

"오, 제발, 제가 그럴 수 없다는 건 누구보다 당신이 더 잘 알잖아요."

"이 세상에 영원한 사랑이란 없어. 나중에 너도 다른 누군가의 곁에 기대어 한 때 너를 아프게 했다는 사람이 있었음을 고백하면서 저주라도 하라고."

"아니에요. 안그럴꺼에요. 정말이에요. 나에게 당신을 미워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거에요."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그에게 제제는 마지막일지도 모를 고백을 남긴다.


"당신을 기다릴께요.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당신을 향한 변하지 않는 사랑 그것 뿐이에요."

"제발 그만, 더 이상은 나도 힘들다. 이만 갈께. 잘 지내길 바라."





제제는 뒤돌아 걸어가는 그의 뒷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본다. 한 번만 돌아봐 주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그러나 그는 이 길의 끝에 닿을 때까지 걸음의 속도조차 줄이지 않았다. 텅 빈 공간안에 홀로 같힌 것만 같았다. 나즈막히 그의 이름을 불러보지만 그의 그림자도 남지 않았다.


어둠이 깔리기 시작하자 서늘한 기운이 발끝을 타고 오른다. 어느샌가 눈물이 고이더니 흐느끼지 않아도 흐르는 눈물은 중력을 따라 턱밑으로 타고 내린다. 슬픔이 집어 삼킬것 같은 두려운 마음이 들자 행복했던 시절로 시간을 되돌려 본다.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을 머릿속에 담는다. 그가 얼마나 사랑스러웠는지, 그리고 자신을 얼마나 사랑했었는지......


제제는 자신이 버려졌음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음을 바꾸고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가냘픈 희망이 제제의 몸을 부여잡는다. 잠시 후면 그가 이 길 끝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를 것이라 기대한다. 온통 어둠밖에 남지 않은 이별의 현장에 주저 앉아 다시 못 볼 그의 모습을 가슴에 새긴다.






"예 신고 받고 출동했구요. 지금 확인했습니다. 연락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이네요. 이틀 째 이러고 있다는 신고가 맞나봐요."

"아이고, 주인이 여기에 두고 갔나보다. 며칠은 못먹은 얼굴이네."


동물 보호센터 직원 A는 안타까운 표정으로 제제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저항하거나 피하지 않는 것을 보니 기력이 다한 것처럼 보였다. 조심스럽게 제제를 안아주었다. 가슴에 편안히 기대는 것을 보니 사람이 무척이나 그리웠던 것 같다.


"일단 센터로 옮겨서 치료부터 해야겠어요."


직원 B는 A를 재촉한다. 아무래도 제제의 상태가 매우 위험해 보이는 모양이다.


"괜찮아. 이제 우리가 널 보호해줄께. 치료받고 잘 먹으면 괜찮아질꺼야."


아무런 저항없이 캐리어에 들어가는 제제를 바라보면서 직원 B는 위로의 말을 건넨다. 꾀 오랜동안 일을 하면서도 이런 경우는 흔치 않았다. 강아지가 버려진 곳에 남아 하염없이 주인을 기다린 것이다. 이동하는 동안 두 직원은 제제를 걱정하는 마음을 나눈다.


"이 아이 살 수 있겠죠?"

"사는게 문제가 아니야."

"왜요?"

"저렇게 주인에게 충성심이 강한 아이들은 다른 주인을 만나기 어려운 경우가 더러 있거든."

"그럼 어떻게 하죠?"

"더 사랑해 줄 수밖에...... 저 녀석이 상처받은 만큼 더 사랑해 주는 수밖에 없어."


제제는 보호소를 향하는 동안 불안한 눈빛을 지우지 않았다.

사랑했던 주인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와 이별의 현장에서 멀어진다는 두려움이 교차하는 것 같았다.







작년 한 해, 유기된 동물의 수는 약 13만 마리,

동물을 키우는 가족이 늘어나는 만큼 버려지는 숫자도 늘고 있습니다.

사정이야 있을 수 있겠지요.

사람도 살기 힘든 세상에서 모든 애완 동물이 행복할 수 없음을 이해해보려 합니다.


그러나 버려지는 사랑은 너무나 잔인합니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도 이별은 있을지언정

버려지는 사랑은 범죄에 가깝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버리고, 자식이 부모를 버리는 일이 드물게 일어나지만

우리는 이를 사회적 문제라 생각하고 안타깝게 여깁니다.


그러나 사랑을 받고 싶어 가족이 되었던 동물이

아무도 몰래 버려지는 일은 크게 주목받지 못합니다.

그들이 말을 하지 못해서 일수도 있겠지만

세상을 너무 사람들 중심으로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돌아봅니다.

인류보다 더 많은 생명이 이 땅에 함께 살아가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사랑이라는 말에는 무수히 많은 단어들이 숨어 있습니다.

그 안에 노력, 관심, 인내, 미소 같은 말들이 교집합 처럼 얽혀 있습니다.

그 중에서 책임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꺼내어 봅니다.

사랑하기로 했다면 너무 쉽게 포기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그 상대가 사람이던 사람이 아니던지 말입니다.



'넌 네가 길들인 것에 언제까지나 책임을 져야 하는 거야.'

- 생택쥐페리 '어린왕자' 중에서









keyword
이전 18화다시 돌아간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