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떠올려봐요.
중년을 넘어서면서 꼰대라 불리는 세대가 되었으니 젊은이들의 상당수는 나를 미워할 겁니다.
아저씨 냄새난다고 어린아이들도 싫어할 겁니다.
요즘 막내딸이 제게 비슷한 말을 합니다.
아빠는 아저씨여서 자기 생각을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너는 나를 아는가?'라고 철학적인 대답을 해주고 싶었지만
꾹꾹 참아내며 딸을 이해하기 위한 수련에 들어갑니다.
회사의 이사님 한 분은 요즘 젊은이들이 나라를 망친다고 합니다.
청년들에게는 꼰대 아저씨였다가 70대 어르신 앞에서는 요즘 젊은이로 변신합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나라 망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친구들과의 모임에서 한 친구가 제게 물어봅니다.
"요즘 교회는 왜 그러냐?"
생각해보니 모인 친구들 중에 기독교인은 저 혼자였습니다.
뜬금없는 질문에 미안하다고 대답했습니다.
친구가 나를 미워해서 그런 질문을 한 건 아닐 겁니다.
하지만 특정 종교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사람이기 때문에 미워하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본에는 혐한이라는 정서가 있지요.
가까운 중국, 대만 사람들 중에도 한국인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동양인이기 때문에 미워하는 인종차별에도 나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자, 이 정도만 세어봐도 전 세계에서 최소 10억 명 정도는 나를 미워하고 있을 것 같습니다.
내 이름도 모르고 나를 한 번도 만나지 않았음에도 나는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고 있습니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할 순간입니다.
나도 이들을 미워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당신들이 먼저 나를 미워했으니 나도 미워할 권리가 있다며 당당히 미워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차분히 마음을 다스리고 처음 생각으로 돌아가 봅니다.
누군가 미운 그 사람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마음을 다잡습니다.
'내 존재를 모르는데도 나를 미워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나를 알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그는 내게 의미 있는 존재가 아닐까?'
마음을 열고 미움의 빗장을 풀어냅니다.
그가 쉽게 좋아지지는 않을지라도 미워하는 것이 얼마나 쓸데없는 일인가 생각합니다.
그리고 나 역시 존재하는지 조차 모르는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니다.
어르신들은 그 힘든 시절을 잘 견디어 오신 분들입니다.
새로운 시대를 살아갈 우리 아들 딸들에게는 두려워 하지 말라고 응원을 남겨주어야겠습니다.
성경에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치는데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더욱 쉬운 일 아니겠습니까?
사는 곳이 다르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미워하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되겠지요.
누군가를 미워하는 감정이 매일 파도처럼 밀려옵니다.
그 감정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지는 자신을 깨닫습니다.
그러나 파도도 모래알을 쓸고 밀려날 때가 있듯이
매일 조금씩 내 안에 쌓이는 미움이라는 감정을 밀어내 봅니다.
그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 날은 없겠지요?
하지만 미워하는 나를 미워하는 내가 그날을 살아갑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그렇게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p. s.
브런치를 시작하고 거의 매일 들어왔는데 뜻하지 않은 일이 있어 열흘이 넘어 들어온 것 같습니다.
2년 만에 맞이하는 게으름이네요.
브런치를 하는 동안 쓰는 만큼 열심히 읽어왔는데 사람 사는 일이 뜻대로 되지를 않네요.
인사 남기는 마음으로 삶의 고백을 적어봤습니다.
앞으로는 하얗게 불태우는 마음으로 글을 쓰겠습니다.
그리고 읽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