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마 끝

by 류완




처마 끝으로 햇살이 내려앉았다

눈부신 하늘 아래 그늘이 짙게 깔렸다


햇살에 몸을 맡길 수 없어

담장 밑으로 숨어들었다


초록의 잎이야 하늘을 머금고

자기 색을 더한다지만

그늘로 숨어버린 감정은

좀처럼 알 길이 없다


다행이다

하늘이 맑을수록

그림자는 짙어진다






하늘이 좋은 날,

사진을 찍으면 명암이 강해지고

그늘은 더 깊이 느껴집니다.

내 몸이 가린 햇살도 짙은 그림자가 되어 땅 위에 새겨집니다.


따가운 햇살을 피해 처마 밑으로 들어갑니다.

나의 그림자를 다른 그늘로 가려야 시원함을 느낍니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게 빛나고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짙은 그늘 속에 묻어버린 나의 그림자

하지만 내가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는 나의 분신입니다.


'우리는 누구나 그림자가 있다.'

심리학자 칼 구스타프 융의 말입니다.

그림자는 의식하지 못하는 내면의 어두운 부분,

무의식에 존재하는 또 다른 나의 모습입니다.

그림자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면에서 끊임없이 나를 자극합니다.

그림자는 피하지 않고 마주할 때 나를 삼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내가 외면하는 나의 나약한 부분을 제대로 바라보라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내 그림자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맑은 하늘에 내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날 때면

처마 밑으로 들어가 그림자를 가리고 싶습니다.


언제쯤 내 그림자를 마주하는 날이 올까요?

아직은 부끄러운 인생이지만

언젠가 당당하게 그늘에서 나와 햇살에 온 몸을 비추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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