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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완 Jun 20. 2023

길 위에서





무던히도 걸었습니다


단단히 다져 놓은 흙 길

발자국조차 남지 않는

가벼운 걸음은

푸른 하늘과

시원한 바람 덕분입니다


오늘도 그 길을 걷습니다

참 오래도 걸었습니다


발끝을 따라 걷다 보면

이 길의 끝이 어디인지

헤아리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길은

끝이 있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아채는 순간마다

이어지는 고민은

마음을 어지럽힙니다


누구에게도 물어볼 수 없어

스스로 질문을 던집니다

잘 살고 있느냐고

하지만 아직은 대답할 수 없습니다


나는 지금

새로운 길의 출발점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수능 1세대였습니다.

당시 언어 영역에는 듣기 평가가 있었습니다.

영어와 다르게 국어 듣기 평가는 단 한 번만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뿔싸'


답안지에 수험번호와 이름을 미리 적다가 듣기 1번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1번의 답은 비워 두고 2번부터 문제를 풀었습니다.

나머지 문제를 다 풀고 나서 한참 동안 1번 문제를 생각했습니다.


답이 있겠습니까?

20%의 확률로 찍어야 할 뿐입니다.

내 인생은 확률을 거스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1번은 틀렸고 기대했던 만큼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습니다.






인생은 생각보다 더 어렵습니다.

20%의 확률이라도 있다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인생은 객관식이 아닙니다.

맞고 틀리고도 아닌 선택의 연속입니다.

매일 새로운 선택을 하지만 모두 정답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후회로 범벅인 삶을 살고도 눈을 떠 보면 새로운 선택이 내 앞에 놓여 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선택들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분명 경험을 통해 레벨 업했으리라 기대하지만 쌓여 있는 건 더 큰 자괴감뿐입니다.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눈앞에 펼쳐진 새로운 길이 도전을 유혹합니다.

알아요.

이 길 끝에도 생각처럼 달콤한 열매가 기다리진 않을 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또다시 한 걸음 내딛습니다.

새로운 출발이 주는 달콤한 유혹은 이제 없습니다.

그저 실패가 창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다고나 할까요?


날이 더우면 시원한 가을을 꿈꿉니다.

추운 겨울에는 따스한 봄 햇살이 그립습니다.

계절마다 떠오르는 다른 색의 욕망이 내 삶을 풍부하게 합니다.

인생은 다음 계절의 그림을 상상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축복이 아닐까요?

이 길의 끝에서, 또 다른 길의 출발점에서 떠오른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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