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완 Jun 10. 2021

잊어질 수 있는 권리는 있는가?



산책이 생활이 된 이후,

힘든 일이 쌓일 때마다 집 앞 공원을 향합니다.


좋은 일이 있을 때보다 힘든 일이 있을 때 걸음의 힘을 더 크게 느낍니다.

마음을 털어내기에 이보다 좋은 시간이 없습니다.

우울이라는 친구는 어깨에 내려앉은 두툼한 먼지 같습니다.

가만히 앉아 한숨만 내 쉴 때는 떨어질 기미가 전혀 없더니

터덜터덜 걸으며 어깨를 들썩이면 조금씩 털어지는 기분이 느껴집니다.


하루는 아내와 집 근처 하천을 걸고 있었습니다.

힘든 일이 잔뜩 어깨를 누르니 걸음은 느려지고 계속 뒤처져 걷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숨이 차고 지치는 느낌이 들어 잠시 쉬어가자고 말했습니다.

하천이 보이는 벤치에 앉아 한 숨을 크게 내 쉬고 나니 마음이 조금 편해졌습니다.

그리고 건너편에 보이는 높게 솟은 나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 나무 너무 멋있지 않아?"

"어디?"

"저 앞에 하늘 위로 가지를 높게 뻗은 나무 있잖아."

"그러네, 정말 크다."

"내가 죽으면 화장해서 저 나무 밑에 뿌려졌으면 좋겠다.

무덤도 없이 나는 자연으로 돌아가 나무와 함께 자랄 수 있으면 좋겠어"

마음속 생각이 불쑥 튀어나왔습니다.


뭔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아내의 표정이 좋지 않습니다.

"왜 그런 말을 해?"

"왜 사람들은 죽고 나면 자신의 무덤을 남겨서 남아 있는 이들에게 기억되려고 하는 걸까?

나는 내가 죽고 나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냥 그대로 잊혀서 사라지면 좋겠어."

"그게 지금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이야?"

"왜 그렇게 민감하게 받아들여. 그냥 마음속 쌓인 감정을 덜어내는 것뿐인데."


아내는 살짝 화가 난 표정으로 깊이 있는 대답을 남겼습니다.

"마음이 힘들다고 너무 쉽게 이야기하지는 마요. 

사랑하는 사람에게 자기 마음대로 잊으라 마라 할 수는 없어."

우울증을 겪는 남편의 마음을 생각해서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살며시 짜증이 섞인 목소리였습니다. 

그리고 남긴 한 마디는 하루 종일, 아니 며칠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는 대답이 되었습니다.


'나에게 잊어질 수 있는 권리란 있을까?'


잊힐 권리란 말이 있습니다.  

sns나 온라인 상의 개인 정보를 삭제할 수 있는 권리를 의미합니다.

일본의 어느 절벽 자살하는 사람이 너무 많은 곳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당신 컴퓨터에 하드 디스크는 다 지워졌습니까?"

혹시나 내가 죽고 나서 알려지기 싫은 자료나 정보가 드러나지 않도록 처리하고 오라는 문구입니다.


쇤베르거의 저서 '잊혀질 권리'에는 망각이 기억보다 앞선 시대에서

기록과 보관이 용이한 시대를 거쳐 기억이 망각을 앞선 시대로 역전될 거라 설명합니다.

디지털은 무한 복제가 가능하기 때문에 개인의 권리가 침해될 수 있는 현상을 막아야 한다고 합니다.

잊어질 권리는 죽음에 국한된 권리가 아닙니다.

도리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권리입니다.

개인 정보, 사진, 동영상 등이 무차별 적으로 복제되어 재 생산되는 세상에서

개인의 잊어질 권리는 주목받을 만한 요구입니다.


죽음 이후의 잊어질 권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 기억해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다면 잊어지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겠지요.

생각난 대로 내뱉은 말이지만 나는 내 삶이 아무것도 남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내가 남아 있는 이들에게 기억되는 것이 불 필요하다고 생각 들었습니다.

종교적인 관점에서도 그렇습니다. 

내가 믿는 종교는 죽음 이후의 세계가 있을지언정

이 땅 위에 내가 남길 것은 하나도 없다고 합니다.

그렇게 잊어지고 사라져야겠다는 생각을 마음에 담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아내의 한 마디는 나의 좁은 생각이 놓친 부분을 채워 주었습니다.

세상에는 단 한 사람일지언정 날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랑하기로, 사랑받기로 결심한 이후 나는 나의 권리를 그와 일정 부분 나누게 되었습니다.

성서에 나오는 히브리어 '야다'는 알다, 상관하다, 관계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종종 신과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단어로 사용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설명할 때 사용되기도 합니다.

서로 그렇게 연결이 된 이후에는 삶과 죽음을 함께 나누는 

긴밀한 관계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신과 인간의 관계를 사랑으로 설명하는 기독교에서

사랑은 결국 영원을 공유하는 관계로 끊어질 수 없다고 설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잊어지기를 꿈꿉니다.

이미 충분히 사랑받았고 나는 만족할 만한 삶을 살았기에 존재에 대한 아쉬움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깊이 사랑하고 사랑받는 이들에게 조차 그 아쉬움을 지우라고 말할 수는 없겠지요.

나는 누군가를 사랑하는 순간 잊어질 수 있는 권리를 그들과 나누었습니다.

어차피 인간의 역사는 한 세기 이내로 기록되지 않은 이름은 잊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굳이 잊어 달라 조를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마음이 오가는 짧은 순간이 아닌 서로의 삶 전체를 나누는 것이라 생각됩니다.

돌아보면 나 역시 사랑하는 이들을 지우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그렇게 나보다 앞서 떠나간 이들을 기억하며 사랑할 것입니다.

마음은 힘들겠지만 그렇게 사라져간 이들을 그리워하며 잊지 못할 것을 확신합니다.


인생은 어쩌면 떠나간 이보다 남겨진 이에게 더욱 잔인합니다.

남겨진 이들의 아픔이 걱정된다면 더욱 사랑하기로,

좋은 기억을 더 많이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기로......

그렇게 합시다.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그냥 그렇게 살아갑시다.


사랑은 어차피 아무런 이유가 없는 것이기에......











매거진의 이전글 열의 한 명을 이해하는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