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얼굴이
나무 끝에 걸렸다
차가운 바람
나뭇가지를 흔들면
이제 떠오른다고
무심한 마음에 기척을 남긴다
떨어질 리 없는데
불안이 마음을 잡는다
오르다 만 것처럼
괜스레 신경이 쓰인다
희미하게 드러낸
너의 절반
하늘 높이 오를 때면
어둠이 짙게 깔리겠지
보내기 아쉬운 하루
잠시 등을 기대고
머물러 너를 향한다
하늘 끝에 닿아도
괜찮지 않을까?
어둠이 짙을수록
너의 얼굴은 밝게 빛날 테니까
오래된 책 한 권을 뒤적여 보았습니다.
빅터 프랭클, '죽음의 수용소에서'
유태인 포로수용소에서 빅터 프랭클이 견디고 견딜 수 있었던 힘은 희망입니다.
언젠가 이 곳을 나갈 수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자신을 붙들었습니다.
수용소 밖이 아닌 자신이 서 있는 그 자리에서 희망을 찾았습니다.
죽음만이 짙게 깔린 그곳에서 남몰래 희망을 품고 영혼을 비추었습니다.
희망이 사라진 곳에서 희망 찾기,
이 불가능한 미션을 가능하게 만든 사람에게 세상은 어떤 모습으로 보였을까요?
한 때는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는 희망 때문에 살아남았던 걸까?
살아남았기 때문에 그가 찾은 희망을 만날 수 있었던 걸까?
영화 같은 그의 스토리가 쉽게 와 닿지 않던 시절의 생각이었습니다.
좌절이 파도처럼 밀려오면 인생의 끝까지 어둠밖에 보이질 않습니다.
희망이 없는 삶,
지금 이 순간에도 절망의 수용소를 걷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지 않으려 해도 때때로 스스로 나 자신을 밀어 넣을 때가 있습니다.
희망이란 존재하는 걸까?
끝없는 질문이 이어지는 어느 날,
어깨를 툭 치는 누군가의 손길에 정신을 가다듬습니다.
그의 표정이 말해줍니다.
괜찮다고, 그래도 된다고, 잘하고 있다고 말해줍니다.
생각지도 못했던 위로,
희망은 기대하지 않았던 시간을 타고 찾아옵니다.
어스름한 저녁 나무 끝에 걸린 반달을 만났습니다.
저리 낮게 떠있는 달을 본 적이 있었나 싶어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아직 자신의 시간이 아님을 스스로 아는 듯 어색한 표정으로 인사를 건넵니다.
시간이 흐르면 어둠이 무겁게 내려앉습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깊은 밤,
달빛이 가장 빛나는 시간입니다.
달은 스스로 빛나지 않습니다.
저녁노을이 짙게 깔리면 마주하는 태양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 자신의 밝기를 더합니다.
스스로 희망을 찾으려 할 때는 찾을 수 없었던 빛입니다.
희망은 만남, 그리고 이어지는 관계 속에서 피어납니다.
도스토옙스키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 '내가 세상에서 한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내 고통이 가치 없게 되는 것이다.'
수용소에는 남을 위해 희생한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과 친해진 후 나는 도스토옙스키의 이 말을 자주 머릿속에 떠올렸다. 수용소에서 그들이 했던 행동, 그들이 겪었던 시련과 죽음은 하나의 사실, 즉 마지막 남은 내면의 자유를 결코 빼앗을 수 없다는 사실을 증언해 준다. 그들의 시련은 가치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고통을 참고 견뎌 낸 것은 순수한 내적 성취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삶을 의미 있고 목적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빼앗기지 않는 영혼의 자유이다.
빅터 프랭클 - '죽음의 수용소' 중에서
죽음의 수용소에도 자신의 삶을 나누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에 시선을 모으면
긍정의 에너지는 놀라운 힘을 발휘합니다.
홀로 어둠을 맞이하는 시간, 나를 향해 비추는 달빛에 미소가 번집니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올리는 따스한 시간입니다.
부디 내 기도가 당신에게도 희망이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의 빛이 나에게 희망이 되었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