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눈물은 너무 무거워서 엎드려 울 수밖에 없다.
_눈물의 중력, 신철규
얼룩말을 좋아했다. 그냥 말과는 다르게 검정 줄무늬가 매력적이었다. 야생의 세계에서 착시효과로 살아남는 얼룩말이 멋있어 보였다. 당나귀의 친척쯤 되는 얼룩말은 사람에게 쉽게 길들여지는 말과는 달랐다. 온순함 보다는 생존 본능이 강해서 성격이 좀 더 공격적이라는 것을 '동물의 세계'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엄마 저 옷 사줘."
얼룩말 상하바지 세트 만 원
주는 대로 입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욕심을 냈다.
회색 바탕에 얼룩말이 자유롭게 흩어져 날뛰고 있는 그림이 아름다웠다. 얼룩말 생김새도 모두 달랐는데 그중에서도 오른쪽 주머니 밑에 그려진 얼룩말이 제일 멋있었다. 엄마는 시장 바닥에서 내가 입고 있던 옷을 바로 벗기고 얼룩말을 입혔다. 시원하고 통풍이 잘 되는 옷을 골랐다며 엄마가 칭찬해 주셨다. 나는 얼룩말과 한 몸이 되었고 최고로 기쁜 날이었다. 집에 가기 전에 미용실에 들렀다. 의자에 앉아 졸고 있었는데 깨어보니 숏컷이 되어 있었다.
"거기, 이 줄에 서라."
다음 날은 국민학교 1학년 입학식이었다. 나는 돌멩이를 내려놓고 선생님 말씀에 따라 그 줄에 섰다. 옆을 보니 머리카락이 길거나 땋았고 무지개 색에 치마를 입은 아이들이 많은 줄이었다. 내 줄은 모두 숏컷이라서 그런가 보다 하고 잠자코 있었다. 교실로 이동해 선생님께서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하셨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니 여자가 남자가?"
"... 여자요?"
아이들이 박장대소했다. 충격적이었다. 나는 그런 질문을 처음 받았다. 선생님도 웃으시며 내 옆자리에 남자아이를 앉히셨다. 그 아이는 나를 보며 자꾸 웃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수업시간에도 힐끔거리며 웃고 쉬는 시간에도 어디 안 가고 내 옆에 꼭 붙어 있었다. 나는 종이 접기를 하거나 그림에 색칠을 했다.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게 있기도 했다. 수업종이 쳤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반바지에 허전함이 느껴졌다.
"어.. 내 얼룩말"
내가 사랑한 그 얼룩말이 사라졌다.
나는 그날 8살 인생 최대의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공책이 눈물로 얼룩졌다. 그 모양이 꼭 얼룩말 같았다.
(8살은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해인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음 날 엄마는 나를 데리고 미용실을 다시 갔다. 숏컷에 파마를 추가했다.
그 아이는 잘려나간 내 얼룩말을 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