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기
아이와 함께 살아가는 일은 늘 요구와 응답의 연속이다. 용돈을 올려 달라, 수영장을 다니게 해 달라, 새 옷을 사 달라. 그 모든 부탁은 사실 들어줄 수 있다. 하지만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집안의 규칙은 지켜지지 않고, 해야 할 일은 늘 미뤄진다. 결국 나는 잔소리를 하고, 화를 내고, 또다시 같은 상황을 반복한다. 글을 쓰는 일 또한 쉽지 않다.
그럴 때마다 나는 집을 나선다. 산책은 나의 작은 도피처다. 길 위에서는 아무도 나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발걸음에 맞춰 바람이 불고, 나무가 어디로든 흔들려도 괜찮다. 하늘은 묵묵히 나를 감싸고 그 속에서 나는 잠시 엄마라는 역할을 내려놓는다. 그냥 한 사람으로서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산책은 생각을 비우는 시간이다. 아이를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어떻게 마음을 전해야 할지 답을 찾지 못할 때, 길 위에서 그 답을 얻고자 했다. 하지만 산책 끝에 얻게 된 건, 오히려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음으로써 다시 아이를 마주할 힘을 얻는다.
돌아오는 길, 나는 여전히 엄마이고, 여전히 화가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책이 내게 주는 것은 작은 여유다. 그 여유가 쌓여 내가 조금 더 성숙한 엄마이기를, 좋은 어른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