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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언 Dec 08. 2021

고졸이 경쟁력 입니다.


SNS를 여럿 운영중이다. 플로리스트라는 그럴듯한 이름 뒤에 숨은 또 하나의 동일한 이름, 자영업자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마케팅을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나를 드러내는 재주도 없고 괜시리 나만 빼고 다 잘 사는 것 같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시시때때로 새로운 소식을 올려야 하는 것이 귀찮기 그지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어 망하지 않으려면 해야지. 그런데 이게 하다보니 어느정도 요령이 생기기 시작했다. SNS의 특성에 따라 해야할 것과 하고 싶은 것 그리고 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을 나누니 힘도 덜 들고 소통하는 재미도 갖게 되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는 업무적인 사진과 내용들만 올린다. 그러니 댓글도 없고 크게 소통이라 할 만한 것도 없다. 대신 작업 사진들을 따박따박 올리니 그걸 가만히 보아줄 분들만 와서 확인을 하는 눈치다. 이건 이렇게 가늘고 길게, 오랜시간을 해오고 있다. 요즘 재미를 붙인 것은 플로리스트로서 작업하는 모습들을 영상으로 찍어 유튜브에 올리는 일이다.

영상을 찍고 편집한다는 일이 워낙 고되고 품이 많이 들어가는 터라 포기하고 싶은 고비들도 많았지만 지금은 2주에 한번이든 한달에 한번이든 그냥 되는대로 나의 이야기를 올리고 있다. 워낙 구독자가 적어서 그런지 이런 업로드 시간 차에도 그닥 불만의 글은 달리지 않는다.

영상에는 꽃과 나, 그리고 함께 작업하는 플로리스트 스탭들의 모습만 담긴다. 홍보와 관련된 것은 가급적 지양하려 한다. 주변에선 업체 홍보도 하고 이걸 활용해서 마케팅 자료로도 쓰라고 하지만 싫다. 일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부캐 처럼 활용하는 것이다. 나의 채널을 홍보용으로 쓰게 된다면 매일매일 구독자나 시청시간을 확인하게 되고, 업로드가 늦어지면 밤을 세워 편집해야만 하고, 그럼 결국 화병나서 하지 못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금의 정도가 딱 좋다.

영상에는 나의 이야기, 플로리스트로서의 애환등을 자막으로 풀어낸다. 그래서일까 댓글을 통해 플로리스트에 대한 궁금점 등을 자주 받는다. 댓글은 짧은 것도 있지만 나의 여느 SNS에 비해 장문의 질문을 받는 경우들이 많다. 이중엔 단연 어떻게 하면 플로리스트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한 것이 압도적인데, 질문자들은 자신의 가정사나 처한 환경등 지극히 개인적인 내용들까지도 알려온다. 이 일에 대한 절박함이나 진심에서 일 것이다. 이 경우 나 역시 장문의 답글을 달지 않을 수 없다. 일종의 상담 창구가 열리는 것이다.

가장 많은, 공통된 고민은 관련학과를 나오지 않아도 되는지 이다. 그럼! 당연하다. 나는 관련학과를 아니, 대학 자체를 나오지 않았다. 영국에서 꽃과 관련된 교육을 단기간 받긴 했지만 학력 인정과는 거리가 먼 곳이다. 그전에 공대에 살짝 발을 담근 적은 있지만 일년을 하고 자퇴를 했으니 공식적으로는 고졸이다. 이런 답글을 달면 대부분 의아하다는, 아니면 의심 섞인 댓글이 달려온다. 정말 그래도 되는지,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되는지 재차 확인을 한다. 우리나라의 평균 학력이 대졸인가. 암튼 이렇게 되면 왜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되는지, 이 일에서는 학력이 중요하지 않음을 다시금 설명 해야만 한다.

종종 중 고등학교에서 직업에 대한 설명회에 참여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학생들의 진로 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하는 취지이다. 이를 기획하시는 선생님께서 미리 나의 약력이나 이력서를 요청하시는 경우가 있는데 어쩔 수 없이 학력 란은 텅 비게 마련이다. 그러면 아니나 다를까 이내 곧 연락이 온다. ‘저기요. 선생님(선생님은 모두를 선생님이라 부른다.) 대학란이 빠져 있는데요.’

이런 경우도 간혹 있다. 역시나 직업 체험에 대한 행사 등에서 사회자가 나를 소개할 때 고졸이라는 학력 컴플렉스를 극복하고 플로리스트가 되었다거나, (나는 학력에 컴플렉스도 없고 극복한적도 없다.) 나에 대한 이력 확인 없이 학생들에게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 가야지 이분 처럼 플로리스트 될 수 있다고 (선생님, 저는 대학을 나오지 않았습니다만) 말 하는 것이다. 서로가 당황스런 일이다.

솔직히 대학에 대한 미련이 전혀 없었던건 아니다. 꽃을 하는데 있어 분명 학력은 필수적인 요소는 아니지만 한국 사회에서 전공과 대학에 대한 인식은 그림자 처럼 따라 다니기 때문이다. 누구나 쉽게 전공이 뭐였어요, 실례지만 어느 학교 졸업하셨어요 라고 서로에게 묻는다. (음, 실례이면 묻지 말아야 하는거 아닐까.) 그때마다 머뭇거리는 것이 싫었고 특히나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면 내가 고졸이라서 그런가라는 엉뚱한 쪽으로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컴플렉스라기 보다는 미련이다. 시작은 했지만 완료하지 못한 일, 잠시 썸만 타다 어정쩡하게 헤어진 사람 같은 것 말이다. 이것은 마치 인력처럼 작용해서 나는 학력과 대학 졸업장이라는 크나 큰 항성 주위를 도는 자그마한 행성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꽤나 긴 시간 대학 설명회를 하는 곳이 있으면 기웃거리거나 편입을 알아 보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 수록 학력의 주위를 공전하는 주기와 궤도는 멀어져 이것이 끌어당기는 힘에는 전혀 영향을 받지 않게 되었다.

이렇게 된 이유는 두 말할 것도 없이 나의 일에선 학력이 절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주변에서 학력의 한계를 극복했다고 하면 그들 입장에선 그럴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대졸이 평균인데 고졸이 연설자로 나왔다면 그게 극복의 이유가 되긴 하겠지. 이젠 한걸음 더 나아가 이 현상을 즐긴다. 대학 나오지 않아도 하고 싶은 일 하면서 그럭저럭 잘 살 수 있어요. 내가 그 증거예요. 증거.

조금 재수는 없지만 움츠려들 이유도 없지.

흔히 마케팅에서 ‘차별화’라는 단어를 자주 쓴다. 상대방과는 다른 자신 만의 독보적인 차이점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플로리스트를 하면서 내가 가진 차별점은 고졸 그리고 남자라는 점이다. 그 누구도 쉽게 갖지 못할 차별점 아니겠어? 

긴 시간 동안 어쩌면 나를 가장 편치 못하게 했던 이 두 가지가 지금은 나의 가장 큰 경쟁력이 되었다니. 참 오래 살고 볼 일이고, 일은 오래 하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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