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스트에 적합한 성격? 그런게 있을까. 항간에 떠도는 직업 안내 등의 글을 보면 그런게 있긴 하나 보다. 우선 꽃을 좋아해야 하고, 대인 업무가 많으므로 밝고 상냥하며 친절한 성격이어야 블라블라.
망했다.
나는 이런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먼저, 꽃 자체를 좋아한다기 보다는 꽃으로 무언갈 만드는 것을 좋아한다. 무슨 차이가 있냐고 하겠지만, 꽃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들판에 혹은 길가에 핀 꽃들 마저도 보며 환호하고 사진을 찍는다. 나는 그런 꽃에는 눈길 조차 가지 않는다. 왜? 그걸로는 아무것도 만들 수 없으니까. 그리고 환자가 좋아서 의사가 된 사람을 없을 것이다. 환자를 고쳐주기 위해서 의사가 되었겠지. 그 정도 뉘앙스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건 이렇다 치고. 성격 역시 그리 관대한 편은 못된다. 공황장애를 겪은 후론 이 부분이 더욱 확고(?)해 진 것 같다. 수 많은 사람과 관계를 맺고 그들 모두로 부터 인정을 받으려 하니 도통 피곤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은 적절히 나를 지킬 수 있는 최소한의 인간관계가 좋다. 그런 면에서 플로리스트로 일 하는 중에 가장 힘이 든 점이 무어냐면 바로 사람을 만나는 일, 그 중에서도 손님을 대하는 일이다.
나는 두루 편히 만나는 성격은 못된다. 집돌이라 할 순 없지만 외출을 하더라도 혼자 혹은 가장 가까운 이 단 한명과만 함께 하는 것이 좋다. 누군가를 만날 때도 세명이상 모일 일은 굳이 가지 않게 된다. 각자의 이야기를 목높여 하게 되는 분위기가 싫기 때문이다. 한 사람만 만나, 오직 그 사람의 이야기에만 집중하는 편이 좋다. 그러니 인간관계는 당연히 매우 좁을 수 밖에 없지. 뭐, 이렇게 태어났고 이렇게 살아 왔기 때문에 불편은 전혀 없다. 외로움도 타지 않아서 남들은 자취생활의 어려움을 불꺼진 차가운 방에 비유하곤 하지만 나는 오히려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불꺼진 차가운 방에 들어서던 순간을 가장 좋아했다. 이제부터는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는 나의 공간이다 하고 말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성격 파탄자 같긴 한데, 솔직히 한국 사회의 기준에서 보자면 응당 사회성이 부족한 축에는 낄 만하다. 그러니 손님이 오는 것이 편할리 있겠어.
사실 이 점은 여타 대면 접객을 하는 보통의 자영업자라면 공통적으로 감내하는 부분이 아닐까 한다. 손님을 만족 시킨다는 것은 생각 보다 쉬운 일이 아니다. 쉐프, 헤어드레서, 파티쉐, 플로리스트. 모두 그럴듯한 이름들이지만 이들 모두는 식당, 미용실, 빵집 그리고 꽃집을 운영하는 자영업자들이고 매일을 손님들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고군분투 중일 것이다. 손님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선 선행 되어야 하는 몇 가지의 조건이 있다. 그 중 단연 첫째는 가격이다. 손님은 합리적인 가격으로 원하는 바를 얻을 때 만족 도가 높아진다. 여기서 꽃의 가장 큰 문제가 발생한다. 꽃은 공산품 처럼 정해진 ‘소비자가’가 없다. 같은 꽃이라도 누가 만들었는지, 어디에서 만들었는지에 따라 가격이 다르고, 도매가격 또한 꽃시장이 열릴 때마다 다르니 애초에 기준이 되는 금액도 매번 바뀌게 된다. 상황이 이러하니 손님과는 뜻하지 않게 기싸움을 할 수 밖에 없다. 특히나 가격을 깎고자 하는 입장에선 상품에 대한 흠을 잡을 수 밖에 없고 이런 경우라면 이 일을 하고 싶지 않은 자괴감으로 까지 이어지기도 한다. 이렇게 소모되는 에너지는 결코 적은 것이 아니다. 꼭 나와 같은 성격이 아니더라도 오랜 시간 접객 업무를 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을 해줄 것이라 기대한다.
이런 이유로 서로 간의 오해가 없게 가격은 모두 정액제로 하여 우리의 SNS 등의 잘 보이는 곳에 공지를 했다. 들어가는 꽃의 양 또한 레시피 처럼 정리를 해서 어느 꽃 몇 송이 몇 송이, 언제 만들더라도 같은 양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처음엔 불편해 하던 고객들도 이내 이 방식에 익숙해 져서 마치 메뉴를 고르듯 온라인 상의 정보만 보고서도 주문을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꼭 만나서 사겠다는 사람들은 우리를 떠났을 것이다. 하지만 어쩌겠어 모두를 안고 갈 수는 없는 일이니. 레슨을 주로 하게 되면서 이런 편의는 더욱 도드라졌다. 수업의 내용, 금액 등을 역시 모두 공개하고 수업의 모습들도 모두 사진으로 담아 거의 매일 SNS에 올렸다. 그러니 수강 전에 찾아와서 꼭 보겠다는 사람들은 확연히 줄게 되었다. 그리고 웨딩 플라워를 하는 지금은 이러한 방식은 이제 더욱 공고해 졌다고 할 수 있다. 처음엔 물론 쉽지 않았지만 웨딩을 하는 건수가 많아지면서 자연스레 적정한 금액선이 책정되었고 많은 사진들과 함께 SNS에 보기 쉽게 공지를 했다. 그러니 확연히 직접 찾아오는 횟수는 물론 전화로 문의를 하는 횟수들도 줄었다. 지금은 대부분 우리의 SNS에 링크된 채팅앱을 통해 문자로 계약을 한다. 혹자는 그래도 사람 간에 정이란게 있지 그렇게 얼굴 한번 안 하고, 목소리 한번 안 듣고 어떻게 거래를 해 라고 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방식이 자리를 잡는 동안 느낀 점이 뭐냐면, 손님들 또한 직접 찾아오는 것도, 전화를 하는 것도 불편해 한다는 것이다. 안 올 수 있으면 안 오고, 안 물을 수 있으면 안 묻는 것이 어쩌면 지금 시대의 편의이자 예의가 된 것 같다. 그리고 모든 것을 다 떠나, 손님 응대에 대한 에너지 소비가 없으니 오히려 서비스의 질이 높아지는 것 같다. 나의 인간관계 처럼 좁고 깊게, 나 좋다고 오는 분께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은 이 일이 훨씬 나에게 맞추어 바뀌어져 있다. 공간도 더 이상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있을 이유가 없으니 집 근처의 싸고 넓은 곳으로 옮겼다. 작업실에는 필요할 때만 걸어서 출근을 한다. 잘 정비된 개천 길을 따라 천천히 걸어 십 분여 만에 도착하는 출근길이 더 없이 좋다. 바쁜 일이 없는 날이면 작업실 근처의 카페에서 글을 쓰거나 읽고 SNS를 관리한다. 아이의 학교 또한 작업실 근처라 아이 역시 일찍 마치는 날이면 나의 작업실로 걸어와 함께 시간을 보낸다. 이 정도면 진정한 워라밸을 넘어 워라블 그러니까 일과 라이프의 블랜딩이 이루어졌다고나 할까.
생각컨데 특정한 직업에 적합한 성격은 글쎄, 있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직업을 위해 성격을 바꿀 수도 없고 성격 때문에 원하는 직업을 포기하는 것도 옳은 방법은 아닐 수 있다.
성격은 바꾸기 어려우니 그리고 굳이 바꿔야할 이유도 없으니 차라리 그 직업이 가지고 있는 오래된 불편함을 바꿔보면 어떨까.
나는 워낙 사람 만나는 것을 불편해 하고 게다가 게으르기 까지 한 성격이라 어떻게 하면 사람을 만나지 않아도 되면서 짧고 그리고 편하게 일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해 왔다. 물론 떳떳할 것 없는 고민이긴 하지만 결국 이러한 고민이 일의 효율을 높이고 플로리스트라는 이름을 오랜동안 유지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누군가의 조언처럼 성격을 바꿔야 한다면 화딱질 나서 진즉에 때려 치웠을지도 몰라.
너무나 마음에 드는 옷을 샀는데 내 몸에 맞지 않다면 몸을 바꿔야 할까 옷을 바꿔야 할까. 당연히 몸에 맞도록 리폼을 하면 되지. 물론 적지 않은 품과 시간을 필요로 하겠지만 적당히 자르고 기워서 내 몸에 딱 맞도록 바꾸는 것. 오히려 그러는 동안 일에 대한 애착은 더욱 커질 것이고, 이는 마치 리폼이 잘 된 옷 처럼 더 편하게, 더 오래 함께 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